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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챠 Jul 02. 2023

내일도 살아 있을까

chacha



글쓰기 강의 중에 한 수강생이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어르신 이야기를 먼저 한 건 강의자인 나였다. 1938년생 할아버지를 인터뷰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꼭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사진까지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뿐 아니라, 가족사를 보여주는 자료를 모두 보관하고 있었다. 모아둔 사진을 자신의 뿌리라고 소개했던 말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어르신 사진을 모아 책으로 묶어드리는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되었는데, 어르신들과 작업을 할 때는 늘 조바심이 난다. 내가 느끼는 시간과 어르신이 느끼는 시간은 아무래도 다를 테니까. 


수강생은 할머니가 하는 표현을, 말투 그대로 담아서 보여주었는데 웃으며 말했지만 유쾌한 말은 아니었다.

"내가 자고 나면 내일은 죽겠지?" 

할머니가 자기 전에 주변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수강생의 말투대로라면 소풍 가기 전 날, 설레는 마음으로 잠드는 아이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잠에서 깬 할머니의 말도 인상 깊었다.

"나 오늘도 살아있네?"

오래 살면 할 수 있는 농담 같은 말. 오늘 인터넷에서 읽은 글이 겹쳐진다. 

버스에서 국악이 나왔는데 태평소 가락이 한참 이어지더니 그걸 듣던 할머니가 "이거 다 같이 저승 가는 버스야?"라고 하더라는 글이었다.

몇 년 전에 어르신 생애구술 작업을 하면서 어르신들끼리 하는 대화를 들으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표정관리가 안 됐다. 여행 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 하늘나라만 남았지,라는 대답이나 마을회관에 걸린 단체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 다 죽고 산 사람은 반도 안된다는 말을 무심하게 내뱉는 모습을 보면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또 한 어르신은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제 내 차례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처음에 그런 말을 들었을 땐 죽음이 농담처럼 나올 말인가, 했는데 지금은 나도 웃으며 받아친다.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피할 수 없는 일이니 즐겁게 받아들이면 어떤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무기력해지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유쾌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 

한동안 일이 몰아쳐서 허우적거리며 일했다. 그러다 비수기가 오면 몸이 쳐지고 기운이 쭉 빠진다. 계속 잠을 자거나 무엇인가에 집중하지 못하는 시기다. 무엇을 위해 일했는지 답을 찾지 못하고 삶이 무겁다고 느껴질 때 어르신의 말을 생각한다. 

나 오늘도 살아있네? 그럼 오늘도 살아야지.

'잘' 사는 거 말고, '오늘도' 살아가는 걸로 만족하면 어떤가.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는 거지. 그러다 심심해지거나 힘이 생기면 열심히 살아보기도 하고, 그럼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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