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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즁 필름 Sep 17. 2016

<최악의 하루> 리뷰

당신은 어떤 거짓말 속에 살고 있나요?

오랜만에 올리는 리뷰입니다! 이번 리뷰 영화는 한예리 주연의 <최악의 하루>입니다. 독립영화 치고 엄청난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는 얘길 많이 들으셨죠? 그도 그럴 것이, 한예리라는 배우는 사실 독립영화에서는 굉장히 유명했다고 해요. 아마 모두가 보면 느끼는 정형화된 미인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풍겨 나오는 그 은은한 매력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최근에 방영되었던 화제의 드라마 <청춘시대>에서도 그 존재감이 대단했었지요. 아마 처음 일반 대중에게 주목받았던 것은 <육룡이 나르샤>에서의 척사광이 기억이 나네요.


그런 한예리 배우가 주인공 '은희'로 출연한 이 영화는 남산 근처에서 겪게 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정말로 <최악의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요. 과연 어떤 문제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래도 혹시 좋은 일은 없을까요. 유명한 소설 <운수 좋은 날>처럼 사실은 최악이지만 결국엔 좋은 날이었을까요. 아니면, 정말로 말 그대로의 최악의 하루를 보내게 될까요.


영화를 리뷰하기 전에 이 영화의 별점은 별점 4.5 / 5입니다. 굉장히 간단한 이야기 구조속에서 감독이 나타내고자 하는 많은 것들을 잘 녹여냈다고 평하고 싶어요. 왜 좋은 영화인지는 이제부터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포스터 아래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사실 이 장면이 영화속에서 나오길 기대했는데, 내 기억엔 나오지 않았다.

두 가지 결말. 두 가지 이야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영화안에 두가지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은희의 '현실의 시선'과 그리고 료헤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설의 시선'이 있다. 현실의 시선은 영화를 있는 그대로 생각한 것이고, 소설의 시선은 영화안에 있는 장치나 단서들을 과하게 확대해석 해보았다.


은희의 줄거리. (현실의 시선)

이건 은희를 주인공으로 하는 '현실의 시선'에서의 줄거리이다. 현실의 시선이 무엇인지는 뒤이어 있을 '료헤이 버전의 줄거리'로 얘기할 때 풀어볼까 한다. 그게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이고, 특히 감독이 의도적으로 깔아놓은 것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처음 소설가인 료헤이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어느 소설의 도입부와 같은 느낌. 그런 뒤 연기를 연습하는 은희를 바로 만날 수 있다. 별로 영혼 없는 그녀의 연기.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여배우인 듯하다. 지적받는 것을 보니 연기도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지 않다. 그러던 그녀는 일본인 소설가인 '료헤이'를 만나게 된다. 복잡한 서촌의 길을 알려주다가 같이 길을 잃어버리는 둘. 그렇지만 둘 사이엔 묘한 감정이 흐른다.

은희의 표정을 보라. 단번에 봐도 설레보여.

서로에게 각자를 소개하면서, '거짓말'을 만드는 직업이라고 소개한다. 소설가와 배우. 사실은 자신이 아닌 것을 끊임없이 생각해서 쓰거나 연기해야 하는 직업. 역시나 단순하게 길을 알려주는 것 치고는 더 많은 설렘이 있다. 하지만 은희는 남자 친구가 있었고, 그를 만나기로 한 모양. 헤어지는 둘은 둘만 아쉬운 것이 아니라 나도 아쉽다.

남자 친구(현오)를 만나보니, 은희가 많이 안타깝다. 이제 막 아침드라마에 나와서 연예인병에 걸러버렸다. 촬영장에서 겨우 빠져나왔다면서 우쭐대는 남자 친구는, 완전 밥맛이다. 마스크와 선글라스와 후드를 계속해서 벗기려는 은희. 하지만 '부띠끄 호텔'에서의 하룻밤을 강조하고, 오늘따라 예뻐 보인다는 이상한 끈적거린 말을 하던 그 배우님은, 끝끝내 말실수를 하고 만다. "유경아!" 빡치는 건 나나 은희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 그 일본 놈이랑 만나 은희야"라고 속으로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싸우고 나서 남산길을 내려가는 은희. 그러다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 최악의 하루를 장식하게 해줄 그놈(운철).

이희준 연기는 정말 쩔었다. 욕이 튀어나올만큼.

그놈은 현오가 자신을 외롭게 했을 때 만났었던, 그 당시 유부남인지 이혼남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은희가 올린 트윗 한 장을 사찰하듯 지켜보고, 그걸 보고 남산으로 왔다는 그놈. 나름 허우대 말끔해 보이는 인상에 생각보다 은희와의 감정이 애틋해 보인다. 은희 역시 그 남자와의 좋았던 남산 샛길에서의 추억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대도 잠시. 은희가 만난 남자들은 어떻게 다 이런 꼴일까. 상황을 보아하니, 이혼한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만난 모양이다.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상처 난 곳에 다시 소금을 뿌리는 말들을 계속해서 말한다. "전 잘 살 수 없어요. 잘 살아서도 안돼요" "미안해요" 은희는 참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이, 얼마나 사람을 미안하게 하는지 아세요?"


운철은 다시 잘해보려고 왔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뒤통수를 때리는 운철의 한마디. "저희 재결합하기로 했습니다. 행복해지지 않기로 했어요." 정말 기가 찬다. 저 남자의 행복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러면서 계속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 "솔직한 마음이 중요한 거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나오는 배경음악은 산울림의 '너의 의미'이다.

지금 얘가 뭐라는겨. 다채로운 감정이 흘러나오는 은희.

친구를 만나야 된다면서, 헤어지길 원하는 은희. 하지만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는 운철. 대충 둘러대면 그냥 헤어져주지, 끝까지 친구가 누구냐며 캐묻는다. 보통 찌질해 보이는 게 아니다. 그렇게 헤어진 뒤, 그래도 화난 마음을 누그러트린 은희는 현오와 다시 잘해보고자 마음을 먹는 듯하다. 하지만 통화 너머로 들려오는 현오의 말은 정말로 이건 뭔가 싶다.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라고 했다가, 아니 한동안. 잠시?라는 말을 하는 현오. 이 사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남자다. 상대역이 은경인데, 유경이라고 한건 네가 잘 못 들은 것 같다고 말하는 놈. 잘생긴 거 같긴 한데 가만히 보면 또라이 같다. 하긴 운철도 또라이다.


그래도 현오를 만나러 가는 길. 갑자기 은희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은희 앞에는 운철이 나타난다. "친구 만난 다더니?" 정말 우연히 만난 것일까, 아니면 뒤따라 온 것일까. 그럴 정신이 없다. 조금만 있으면 지금 현오를 만나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돌려보내야 한다. 댓바람부터 남산에 와서 내내 걸어 다닌 은희는 다리에 힘이 풀리지만, 이내 운철을 내려가라며 돌려보낸다.


현오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도대체 은희가 왜 만나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매니저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말을 하면서 전화통화를 받으러 잠시 나간 사이. 오 마이 갓. 운철이 돌아온다. 황급히 자리를 떠서 내려가는 은희. 하지만 둘 다 같이 은희를 향해 걸어간다.

와 보기만해도 뒷목에 풍오는 이 상황.

그 둘은 각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티비 안 보시나 봐. 저 몰라요?"

"작년부터 만나고 있었어요. 아- 올봄에 잠깐 만난 그 사람?"

"저도 작년부터에요."

"전 재작년부턴 데요."

그러면서 둘이 소주 한잔을 한단다. 둘이 소주 마시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눈앞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넌 그냥 거기 혼자서 땅 파고 뒈지는 게 낫겠다" 그래. 그게 낫겠다.


은희의 하루는 정말 길었다. 설렘을 주는 남자. 만나고 있지만 나에게 소홀한 남자 친구. 그리고 소금 뿌리려고 온 온 잠시 동안의 남자 사이에서, 갈 길을 잃고, 결국 남산에서 저녁을 맞이한다. 그리고 다시 료헤이를 만난다. 다시 만난 료헤이는 확실히 스치는 설렘이 있다.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어로 조곤조곤 말해주는 것도 좋고, 같이 걷는 것도 좋다. 그리고 그가 해주는 말은 소설의 글귀인지, 아니면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말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해피엔딩을 말하고 있다. 아마 은희와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딱 그만큼의 좋은 설렘을 안고, 영화는 끝난다.


료헤이의 줄거리. (소설의 시선)

앞서 은희의 시선은 영화 전반적으로 무리 없이 현실적인 시선을 따라서 왔다. 하지만 료헤이의 시선은 어떨까? 유독 료헤이의 시선에서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이 이야기는 은희의 최악의 하루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와 동시에 료헤이의 신작 소설(아마도 최악의 하루라는 제목이 아닐까)을 집필하는 과정으로도 풀이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해석은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배치해놓은 감독의 장치들은 역시나 맘에 걸린다.

영화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료헤이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마치 작가가 최초로 인트로를 작성하듯 나오는 배경 설명에 가깝다. 료헤이는 소설가이다. 그는 서촌 근처의 '류가헌'이라는 곳을 찾아 한국에 온다.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않는 그의 직업은 소설가. 그는 방황하면서 길을 잃는다. 그 흔한 스마트폰 하나 없이 한국에 와서 길을 잃는 사람이다.

여기가 도대체 어딘거야. 길을 잃은 료헤이.

그날 하루 동안 당하는 이야기는 현실적이고 그만큼 굴욕적이기까지 하다. 특히나 출판사 직원을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굴욕 포인트가 있는데,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출판기념회를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책은 반년 동안 백 권 정도밖에 나가지 않았고, 심지어 출판기념회에 온 아주머니들은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었다. 책은 주냐는 부분이 웃음 포인트. 생각해보면 애초에 출판사 직원이라는 사람은 잘못된 시간을 알려주고, 약속에도 늦었다. 특히나 료헤이를 곁에 두고 한국말 못 알아듣는다면서 그냥 말하라고 한다. 출판사 직원은 료헤이의 팬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팬이 아니어 보인다.


이런 료헤이가 당했던 일들이 단순하게 등장인물에게 최악의 하루를 선사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감독이 보기에, 혹은 그냥 극 중 인물인 료헤이가 보기에 제작자나 팬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느껴서 그렇게 그린 건 아닐까. 등장인물로의 료헤이와 만약 료헤이가 새로 집필에 대한 고뇌가 이 영화의 주제라면, 그런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심경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만약 은희가 료헤이의 또 다른 소설 속 주인공이라면, 더더욱이 한국에 대한 그런 부분들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해보면, 료헤이가 겪는 일들과 시선은 어찌 보면 감독 본인의 심경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면 사실 은희의 부분은 굉장히 사실적인 묘사가 많은데, 료헤이에 대해서 묘사할 때에는 굉장히 이질적이거나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영화를 볼 때에는 은희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만 집중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료헤이의 부분은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오히려 이 부분이 더 감독의 생각이 더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료헤이의 줄거리 중에 갑자기 비현실적이 되는 부분이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여기자와의 만남이 아닐까? 여기자는 극 중에 나오는 미모의 여인인데. 료헤이가 그 여기자를 보는 눈빛은 보통의 사람을 볼 때와는 살짝 다르다. 무엇인가 예뻐서 부담스러운 남자의 모습보다는 뭔가 무섭게 느끼고 있다. 그 점은 바로 여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나타난다. 여기자가 하는 말들은 사실 전부 다 이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출판기념회를 했었던 '어둠 속으로'라는 료헤이의 작품 속 이야기로 추정된다. 그 안의 캐릭터들이 이기심이 나타났던 것을 따지듯 료헤이에게 질문한다. 질문의 양상을 보면 이상한 지점들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소설 속의 인물의 묘사에 대해서도 묻지만, 그에 대한 료헤이의 대답은 결국엔 "그건 글일 뿐이다." 일 뿐. 왜 그런 식으로 대답했을까. 자신의 소설에 대한 너무나 깊은 질문이 불쾌했을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을까.


나는 그 여기자는 바로 그 '어둠 속으로'의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 중에 한 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 따지듯 물어보는 그 물음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무엇인가 두려움의 눈빛을 보내던 료헤이도 이해가 된다. 자신이 만근 캐릭터가 자기 자신에게 오히려 그렇게 왜 만들었는지, 무슨 이유인지에 대해서 묻는 것은 어찌 본다면 소름 돋는 일이다. 그래서 료헤이는 그 물음에 당황한다. 그런 물음에 있어서 많이 생각해본 소설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자신의 캐릭터나 극 중 인물들의 캐릭터를 바로 그것을 만들어낸 소설가에게 묻고 있으며, 소설가는 글은 그냥 글일 뿐이라며 쉽게 대답한다. 그것은 마치 소설가 자신의 생각 속에서 등장인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소설가의 고뇌에 가깝다. 그 이야기는 갑자기 중단되어 버리며, 여기자는 갑자기 사라지고, 료헤이 혼자만 남게 되었다.

결국에 은희를 찾아나선 료헤이. 둘의 표정이 참 좋다.

그리고 밤이 된 후 료헤이는 다시 은희를 찾아 나선다. 은희가 만약에 새로운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자신의 고뇌의 결과를 바로 소설 속의 등장인물인 은희에게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그 고뇌는 정말로 길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자와 인터뷰는 낮에 시작했었는데, 헤어지고 보니 바로 밤이 되었다. 그리고 은희를 만나서 설명한다. 자신은 항상 베드 엔딩만을 써온 소설가라고, 하지만 왜일까 이번 소설은 해피엔딩이 될 거 같다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영화의 시작에서 처럼 이 영화는 료헤이의 내레이션으로 끝이 나게 된다.


여기자와의 문답. 아니 료헤이의 안에서의 소설 속 인물에 대한 내적 갈등의 결론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그 안에서의 인물에 대한 소설가의 거짓이. 그 안의 인물을 실존적인 것으로 만들어놓고 고민하게 되었을 때의 소설가의 선택이 아닐까. 그래서 은희를 찾아간 것이 아닐까.


등장인물.

남겨진 두 남자.

이 영화가 현실적인 이야기이든 아니면 소설 속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액자구성의 영화이든 상관없다. 아마 감독은 여러 가지의 해석을 나오는 것을 즐기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머리를 아주 명료하게 하는 등장인물들이 있다. 바로 바람피운 운철과 지금 남자 친구 현오이다. 둘은 아주 행동부터 말하는 것까지 정말 또라이의 극치를 보여준다.

현오와 은희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준다.

일단 현오는 다른 여자가 있을 것이다. 오랜 기간 만나왔지만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한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연예인. 그만큼 발도 넓어졌을 것이고, 그만큼 은희보다 매혹적인 여성을 발견하기에 쉬웠을 것이다. 좀 돼먹은 놈이라면 그것과 상관없이 은희를 아끼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은희를 외롭게 만들기도 했고, 자고 싶을 때마다 날리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얘기인지 거기서 나오는 소릴지 모를 이상한 사랑고백과 연기지망생으로 보이는 은희를 하나하나 무시하는 그의 말투 속에서 사실 많은 부분을 눈치챌 수 있다. 그는 은희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오는 그래도 그냥 나쁜 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운철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은희가 외롭게 지내고 있을 때 운철과 로맨스는 사실 꽤나 달콤했다. 원래 그렇지 않은가. 바람피우는 것이 어떻게 보면 사실 더 설레고 좋을지도. 사실 운철의 첫 등장부터 굉장하다. 은희가 트위터에 올린 트윗 하나를 가지고 무작정 남산에 와서 은희를 찾을 정도니. 어떻게 보면 이렇게 물 불 안 가리는 스타일이 정말 위험하지 않나.

이렇게 좋았을 때도 있었는데.

그가 위험하다는 것은 또한 곳곳에서 나타난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은희를 믿지 못해서 결국 마지막의 대참사를 벌이는 빌미를 제공한다. 가라면 좀 가지. 그렇게 질척거려서 뭘 얻는가 싶다. 그리고 가장 큰 절정은 행복해지지 않기로 했다면서 부인과 재결합을 선언하고, 마음 가는 데로 해야 한다면서 자꾸 은희에게 선택권을 넘긴다. 그건 가정은 가정대로 가지고 있고, 그래도 네가 더 좋으니까 너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인지 부조 화격의 대사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앞으로 바라고 하고 싶은 것을 동일하게 놓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딱하기까지 하다.


료헤이.

위에 두 가지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냥 영화 속 인물로의 료헤이도 꽤나 매력적이다. 좋은 것을 과하지 않게 좋다고 이야기하고, 무던 무던 한 성격이다. 은희가 매력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은희의 평소 스타일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현오와 운철을 보고 있자면, 료헤이는 정말로 정상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굳이 둘을 또라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기들의 할 말만 끊임없이 말하고, 자신의 말만 맞다는 식이다. 내가 유명해졌으니까 네가 거기에 맞춰야 해. 나는 다른 여자와 재결합하지만 그래도 좋으니까 계속 만나야 해.

아름다운 은희와 담담하게 보는 료헤이.

나머지 남자들은 다 자기중심적인데, 료헤이만 결을 달리한다. 그녀가 안내하는 길이 이상하더라도 잘 따라간다. 그가 건네는 커피를 마시자는 것에서는 그 어떤 치근덕거림도 느낄 수 없다. 그에게 일어난 오늘의 일들은 모두 그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데, 그는 오늘 하루 어땠냐는 은희의 물음에도 태연한 듯 'Not Bad'라고 대답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일면 답답한 모습. 은희와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은희가 끌리는 것도 아마 그래서이지 않았을까.


은희.

사실 이 영화는 은희의 존재감으로 극을 계속 끌고 간다. 거의 대부분의 시선이 은희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은희는 생각보다 나쁜 여자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 끌리는 료헤이와 지금 사귀는 현오. 그리고 남자 친구와 만나던 사이에 잠시 만난 운철까지, 어떻게 생각해보면 세 명의 남자를 만나고 있는 셈이다. 아마 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모두들 많이 욕할만한 캐릭터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상하도록 그녀는 그녀가 나쁘게 보이지 않게 하는 매력을 가졌다. 영화에서 내내 나오는 '거짓말'이라는 키워드는 사실 은희가 하는 많은 행동들에서 기인한다. 내가 보기에 은희는 연기자로의 자질이 없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잘 못하기 때문이다. 은희는 현재 상황에 충실한 사람으로 보인다. 현오는 잘 생겨서 만나고, 운철은 나를 외롭게 하는 현오의 대체자로, 그리고 그 둘 모두에게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료헤이에게서 얻고 있다. 그때그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이 시키는 데로 행동하고, 그 행동은 거짓말은 아니다. 물론 진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고민되고, 자기가 하는 모든 행동을 거짓으로 생각할 수는 있더라도,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은희의 표정은 참 솔직하다.

그녀가 솔직한 사람이라는 것은 영화 곳곳에 나타나는데, 그녀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거나 기분일 때에는 함께 걷는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 않을 때에는 혼자 걷고 싶다고 얘기한다. 그렇게 그녀는 솔직하다. 그리고 상대방이 말하는 데에 계속 반응하며, 화가 나는 부분에서는 참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은희의 거짓말은 몇 가지 생각나는 말들이 있는데, 료헤이와 차를 마시던 중 현오에게서 온 문자메시지에 차가 막힌다며 하는 말과 현오를 만났을 때에 자신은 잘생긴 사람을 좋아한다며, 료헤이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거짓말을 고백하고야 만다. 사실은 일본인의 길을 안내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못한다. 그리고 잘생긴 남자를 좋아한다는 부분은 거짓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취향일 것이다. 운철과 함께 남산의 샛길을 걸을 때를 회상할 때 그녀는 "그때는 참 귀여웠는데"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은희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귀여운 남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은희의 걸음걸이를 보면, 항상 솔직하다. 속상할 때에는 속상하게 걷고, 신날 때에는 신나게 걷고 있다. 설렘이 있을 때는 설레게 걷는다. 한 껏 꾸미고 싶을 때에는 싶을 때는 머리를 풀고, 뭔가 복잡한 심경에 머리를 묶는다. 그래서 극초반 료헤이를 안내하는 그녀와 각기 다른 남자를 만날 때의 그녀는 같은 은희지만, 사실상 거의 다른 사람에 가깝다.

이때는 참 둘이 좋았을 텐데

은희는 그만큼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다. 지금 외로우면 새로운 사람을 찾고, 지금 그 사람이 끌리면 대놓고는 아니지만 호감을 나타낸다. 이 사람이 아니다 싶을 때에는 혼자 있고 싶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남자와 헤어짐에 있어서는 미숙하다. 그것도 아마 그녀의 솔직한 심정 때문일 것이다. 그녀도 헤어지지 못한 남자들에 대해서 마음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이 꼭 사랑이 아닐지라도. 다만 오늘 같은 '최악의 하루'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솔직하다는 생각은 또다시 다른 곳에서도 느낄 수가 있는데, 바로 그녀가 연기수업을 받는 독백을 하는 두 차례에서부터 느껴진다. 처음 그녀는 지적받을 정도로 영혼이 담기지 않은 연기를 했는데, 그날 최악의 하루를 겪고 난 뒤에 그 같은 연기를 그녀는 정말 멋지게 해낸다. 그만큼 그녀는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다.


그 외의 주절주절.

포스터 처럼

걷는 영화.

이 영화가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그건 처음부터 끝까지, 공통적으로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걷는다. 처음 료헤이와 은희가 만났던 서촌부터, 주무대가 되는 남산의 산책로까지.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산책로로 나서서 계속 걷고 싶을 만큼, 그만큼 걷는 것에 초점을 맞춘 영화이다. 앞서 은희는 자신이 호감 가는 사람과는 길을 천천히 잘 걷는다는 것을 말했다. 마지막엔 엄청 사이가 틀어진 운철과도, 남산에서의 걷는 추억이 있다. 감독은 이걸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면, 감독은 걷는 것 자체를 하나의 삶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리고 반려자를 같이 걷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저도 끝까지 가보지 않았어요. 그래도 괜찮으세요?"

극 중에 은희가 료헤이에게 걷자고 제안하는 대사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걷는 것 자체를 인생으로 대체해보면 사실 굉장히 철학적인 물음이 된다. 인생도 산책로도 사실은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는 부분이라 더 같이 걷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특히나 남산같이 끝없이 산책로로 연결되어 정말 끝을 알 수 없는 곳에서는.


한예리의 표정은 정말로 다채롭고 뭔가 속깊다.

한예리라는 배우.

이 영화는 사실상 한예리 원톱 영화다. 게다가 그녀는 그런 원톱의 역할을 정말 잘 해냈다. 극 중의 은희는 정말 표현해내기 어려운 캐릭터다. 왜냐하면 한 번에 세 남자의 다리를 걸치고 있는, 어찌 보면 정말 얄미운 캐릭터 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 한예리가 연기한 은희는 그렇게 나 빠보이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연민이 들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남자들이 전부 다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 한예리의 오묘한 매력이 바로 은희에게 그대로 이식되어서일 것이다.


현실일까, 소설일까.

결론적으로만 말하자면, 둘 다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분량 자체는 영화의 현실적인 부분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사실 위에서 언급했듯 영화 자체를 전부 료헤이의 소설이고, 나머지를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단서들이 있다. 하지만 감독은 의도적으로 어느 것이 옳다고 관객에게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이 해석도 저 해석도 맞게끔 하는 열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가 더 선호하는 식은 사실 이 이야기가 소설 속 이야기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쪽이 좀 더 내 취향이다.) 어느쪽으로 생각해도 매력적이며, 말이 된다. 원래 여러가지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면에서도 탁월하다.


극 중에서 가장 소설(거짓말) 같았던 장면.

당신은 어떤 거짓말 속에 살고 있나요?

마지막으로 내가 이 영화를 봤거나, 혹은 이 리뷰를 읽은 사람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극 중 거짓말을 지어내는 직업을 가진 료헤이와 거짓말을 하는 직업을 가진 은희가 나온다. 그리고 은희는 거짓말이라고 표현하는데,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씌워진 가면 같은 것이 있다. 사람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어떻게 보면 그 사람에 맞춰서 행동한다. 그녀는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사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원래 누구에게나 같은 사람은 없다. 이 사람과는 이렇게, 저 사람과는 저렇게 하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물론 그것에 대한 피로감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사실은 사람 모두가 가지고 있는 저 가면의 괴리에 대해 별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이 영화는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은희는 좋은 때는 좋게, 나쁠 때는 나쁘게 대한다. 최악의 하루를 보낸 은희에게 하루에도 수차례 뒤바뀐 자기 자신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굉장히 압축적으로 이뤄지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모두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한 번쯤은 그런 자기 자신이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거짓'에 대해서 초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최악의 하루는 아닌 듯. 옆에 보면

은희에게 오늘은 정말 최악의 하루였을까?

극 중에서 은희는 사실 굉장히 고된 하루였을 것이다. 남자 친구를 만나러 온 남산에서, 뜬금없는 외국인과의 만남으로 많이 걸었고, 한가롭게 올린 트윗 한 장에 전에 잠시 만났던 남자 운철이 찾아와 똥을 선사했다. 그리고 남자 친구인 현오는 예전 같지 않아졌고, 산 넘어 산이라더니 급기야 현오와 운철이 만나서 술을 먹네마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에 료헤이를 만났고, 그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산책을 한다. 료헤이는 해피엔딩과 같은 소설을 그녀를 보면서 연상해냈고, 그 둘의 결말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사실 인생에 있어서 이런 우연스럽지만 곤경에 처하는 일은 모두에게 발생할 수 있는 흔한 일이다. 물론 이렇게 꼭 남자문제로 나타나진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처할 수 있는 이런 일들 속에서도, 새로운 관계는 나타나고, 또 그 관계하나 덕택에 최악의 하루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걷다 보면 오르막 내리막이 있지만, 결국에 끝에 와서는 상쾌함과 좋은 풍경 같은 하루가 기다릴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 생각해보면 그리 최악의 하루는 아닌 셈이다.


마무리하며,

이 영화는 은희가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그런 일로 다가올 수도, 혹은 아주 심각한 일로도 다가올 수 있는데요. 감독은 그런 우연한 최악. 하지만 언제 가는 겪었어야 했던 일들을 단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몰아넣고, 어떻게 보면 은희를 그리고 넓게보면 등장인물 모두를 괴롭힙니다.

어쨌든 해피엔딩.

하지만 그 괴롭힘 속에서 은희는 더 나아갈 수 있었고,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이렇듯 인생은 진퇴양난의 고난 속에서도 전혀 몰랐던 우연 속에서 일어난 일로도 새로운 길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혹시나 요즘 최악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럴 땐 터벅터벅 걷거나, 그렇게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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