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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즁 필름 Aug 20. 2017

들었을 법한, 들어보지 못한

영화 <더 테이블> 리뷰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본 영화 시사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번 리뷰 영화는 '김종관 감독'의 영화 <더 테이블>입니다. 김종관 감독은 이미 <최악의 하루> 영화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데요. 그때 당시 제가 들었던 GV에서 신작을 작업 중인데 개봉이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최악의 하루를 보신 분들이면 알겠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극장에서 인기 있는 서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고, 매우 잔잔하고 다른 것보다도 감독의 감성을 나타내는 것에 집중되어있지요.


그러던 중에 브런치에서 <더 테이블>의 시사회 초청 메일을 받았을 때 참 기뻤습니다. 일단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린 다는 것이 기뻤고, 또 누구보다 먼저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쓸 수 있음에 기뻤어요. 몰랐는데 영화관에 도착해서 보니 그날 VIP 시사회도 같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보니 역시나 무대인사가 있었습니다. 지난번 택시운전사 시사회에도 무대인사가 있었지만 카메라를 못 들고 갔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멀리서나마 출연진과 감독님을 본 것에 만족해야 했지요. 자, 이제 그럼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영화 <더 테이블>은 한 카페의 한 테이블에 머물다간 네 개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네 개의 인연은 지금은 스타 배우가 되어버린 유진과 전 남자 친구 창석의 이야기. 하룻밤 사랑 이후 반년이란 시간 뒤에 만나게 된 경진과 민호. 위장결혼을 하기 위해 모인 가짜 모녀 은희와 숙자. 결혼을 앞두고 서로 사랑하지만 엇갈려야 했었던 혜경과 운철의 이야기입니다.


각각 에피소드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자 배우들이 나오게 되는데요. 순서대로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이 출연합니다. 김종관 감독이 의외로 영화계의 영향력이 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호화 캐스팅인데요. 시작 전에 들어보니, 영화를 작업하는 시간은 총 1주일 남짓이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아마 자신의 에피소드 말고 다른 에피소드들 촬영에 올 필요도 없었을 거 같고요. 영화라는 게 이렇게도 만들어질 수 있구나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종관 감독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 소회는 김종관 감독의 브런치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한번 들러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럼 제 리뷰 시작할게요. 포스터 아래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포스터만 봐도 영화 너무 보고싶다.

스타 배우, 그리고 전남친.

 영화의 시작은 카페의 문이 열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된 무대가 되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그날 하루가 지나면 시들어 버릴 작은 꽃을 준비한다. 투명하고 깨끗한 컵 위에 꽃. 그리고 그 꽃이 있을 테이블을 닦아내어 준비하는 모습. 그것은 마치 영화감독이 자신이 영화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담아내는 것으로 보였다. 오늘 이 테이블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서 주된 주최자이지만 가장 거리가 먼 방관자이기도 한 카페의 주인. 그렇게 테이블의 사연은 시작한다.


처음 카페에 들어온 것은 검은색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유진(정유미)이다. 한눈에 보아도 과하게 가린 모습을 보니 얼굴이 알려진 사람. 조심스럽게 꽃이 놓인 테이블에 앉아서 일행을 기다리는 유진. 그리고 그 일행이 뒤이어 들어온다. 그의 전 남자 친구 창석(정준원).

처음엔 생긋 웃으며 좋아했지만..

전에 사랑했던 연인을 만나게 되면, 할 수 없이 전해오는 떨림이 있다.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맞닿았던 살. 사랑한다며 이야기했었던 수많았던 속삭임들. 헤어질 때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세월이 흘러가면 오히려 좋았던 추억이 살며시 나쁜 기억들을 감춘다. 둘의 만남은 그런 감정의 교환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추억은 창석에 의해 조금씩 조각나더니 이내 부서진다.


처음 카페 밖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팬들이 사인을 요청했을 때는 그래도 참 괜찮았다. 그렇지만 창석은 옛 여자 친구 유진이 아니라 그냥 스타 배우 앞에 있는 사람처럼 계속 행동한다. 성형을 했는지 은연중에 물어보더니, 코를 만지고 나서도 눈치 없는 소리를 한다. 가장 최악은 증권가 찌라시를 듣고 그대로 당사자 앞에서 읊어주기 까지. 유진은 점점 기분이 상하고, 보고 있던 나도 상했다. 관객석은 창석의 행동에 분개하는 많은 사람들의 탄식으로 가득해진다.

좋단다. 아이고..

그 자리까지 발걸음을 옮겼을 유진의 마음이 털썩 가라앉는 소리가 들린다. "뭘 알아?"라고 물어보는 그녀의 말속엔 이미 수많은 상처들이 보인다. 사랑했던 사람에서 그저 다른 위치의 사람이 되어버린 둘. 둘의 만남을 보고 있던 창석의 직장동료의 비웃음처럼, 어쩌면 배우가 만인에게 보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는 그 둘의 이야기.


하룻밤 사랑. 그 이후 반년.

 절대로 상대방을 못 보는 경진(정은채)과 시종일관 상대방만을 보는 민호(전성우). 그들의 대화는 사실 그렇게 내용이 없었다가도 갑작스럽게 좁혀지는 둘의 사이가 마치 흥미로운 춤을 보고 있는 듯하다. 꽤나 오랜만에 만난 것"으로 보이는 둘은 이직 얘기, 여행 간 얘기를 나누다. 갑작스럽게 경진이 "한 번이라도 연락이 올 줄 알았어요", "좋은 곳에 가면 사진이라도 한 장 보낼 줄 알았어요" 등의 말에서 그냥 보통의 만남은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부끄부끄하다.

경진에 집에 갔었다는 걸 보면, 둘은 이미 서로에 대해 알기보다는 다른 부분에서 서로를 더 많이 알았던 것이다. 그 후 갑자기 연락두절이 되고 여행을 떠나버린 민호에 대해서, 경진은 속이 상했었을 것이고, 거기에 기다려 달라는 둥. 이래저래 상황을 설명하기엔 내가 뭐라고.라고 생각했던 민호가 있다. 둘은 그렇게 엇갈려갔고, 다시 연락한 민호에게 경진은 시계를 건네며 더 이상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음을 시인한다.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말하는 경진

그렇게 끝날 것 같던 둘은 돌아서 일어서는 경진의 손을 잡으며 다시 시작된다. 아마 그 잡았던 손의 촉감은 수 개월 전 만나 하룻밤 사랑을 나눴던 그때의 향수를 진하게 뇌리에 스치게 했었던 것 같다. 아니 사실 애초에 상대방을 절대 잘 바라보지 못하는 경진은 연락을 받았던 순간부터 그 생각뿐이었을 것이고, 만나는 도중 다른 곳에는 절대 시선을 주지 않았던 민호도 그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내내 바라보는 민호.

여행 중에 메시지 보내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곳곳에 들를 때마다 선물을 사 왔던 민호는 자신이 파스타를 잘한다며 자기의 집으로 갈 것을 대담하게 고백한다. "서로 알아봐요" 대담하면서 솔직한 그 말에 경진은 역시나 응했고, 둘은 그 테이블을 떠난다. 앞의 이야기가 그 후로 절대로 만나지 못할 두 사람을 보았다면, 이번 에피소드는 그 후로도 계속해서 보게 될 것만 같은 이야기이다. 그것이 과연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위장결혼의 가짜 모녀.

 라테아트가 예쁘게 그려있는 커피에 설탕을 넣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사실 약간 당황하게 만든다. 이런 일에 익숙해 보이는 '은희'는 내가 알던 그 '은희'는 아니기 때문이다. 둘의 주제는 결혼사기를 하려는 은희(한예리)의 가짜 엄마를 대신해줄 숙자(김혜옥)와의 말 맞춤이었다. 캐나다에 사셨어요. 어떻게 헤어졌고, 어떻게 다시 만나고. "안 적으셔도 괜찮겠어요?"라는 물음까지는 둘의 대화의 진실은 없어 보였다.

전작 '최악의 하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은희의 눈빛

숙자는 그런 상대방에게 계속 물음을 던진다. 시골 유지예요? 자수성가한 사람인가? 보통 사기결혼을 하려는 사람들이 돈을 노린 다는 것에 얼마큼 자신이 참여가 빛나는 지를 확인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은희의 결혼은 진실된 결혼이었고, 원래는 돈 많은 사장을 작업하러 갔다가 그곳의 막내 사원과 눈이 맞아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으로 시작되어버린 관계는 너무 많은 거짓말 속에 꽃을 피우려 하고 있었고, 은희는 결국 결혼에서도 어머니에 대해, 친구들에 대해서 거짓을 말하려 한다. 정말로 좋아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더 보일 수 없었을 은희.

가짜 어머니 치곤 눈빛이 애틋해진다.

그러다 둘은 서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임을 알아차린다. 숙자는 딸을 잃었고, 은희는 어머니를 잃었다. 둘의 대화는 점점 친숙해지고, 잘 모르겠지만 점점 숙자의 말도 가벼워진다. 그러다 은희의 별명이 '거북이'라는 것을 말하게 되고, 숙자는 그 앞에서 "우리 느림보 거북이" 라면서 능청스럽게 연기한다. 거기에 또 자연스럽다며 칭찬해주는 은희. "커피가 달고 맛있었다"라는 숙자의 모습에서 달았던 것은 꼭 커피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둘은 비록 거짓됨으로 만났지만, 조금의 보인 진심의 틈이 점점 벌어져 보이는 느낌. 설탕을 넣어서 달았겠지만, 그래서 더 달콤한 거짓말 같았던 이야기.


결혼 앞의 지난 사랑.

 만나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테이블의 꽃잎들이 전부 뜯어져 있다. 그리고 혜경(임수정)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무엇인가 시작부터 둘의 이야기는 다를 것처럼 보인다. 둘의 대화에서 둘은 역시나 아직 서로에게 마음이 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두 번째 이야기와는 다르게 혜경은 계속해서 운철(연우진)을 응시하고, 운철은 그 눈빛을 피하거나 어쩔 줄 몰라한다. 최악의 하루에서의 운철과는 참 많이도 다르다.

운철만 차가 있다. 오히려 기다렸음을 알 수 있는 장면

자신이 결혼을 알리면서, 계절만 말하는 혜경. 그냥 그쯤이라고 말한다. 계속해서 결혼이 끝은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는 혜경의 도발이 눈에 띈다. 뉴욕에 다녀오는 예비신랑에 따라가지 않았음을 말하면서, 둘의 관계를 비정상적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2년 뒤까지만 나랑 만나." "아니면 결혼 전까지만 바람피자" 라면서 자꾸 운철에게 가까이 들어가려 한다.

자신도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싶겠지만.

중간에 있었던 말에서 보건대, 둘의 헤어짐의 선택은 운철이 했었던 모양이다. 결혼해서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은 운철은 결국에 혜경을 밀어내었고, 그렇게 혜경에게 선택의 기회는 없었던 듯. 하지만 둘의 만남에서는 그 선택의 우위가 조금 달라 보였다. 바람을 피우자며 정말로 뒤가 없을처럼 말하던 혜경은 차에 블랙박스가 있다며 차로 가자는 운철을 밀어냈고, 결국에 운철은 자신이 혜경과 자는 꿈을 꿨다는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 사실은 운철은 아마 정말로 혜경과 자고 싶었던 것. 사실은 만남 전에 꽃잎을 전부 뜯어놓았던 운철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건 마치 '나를 좋아한다 안 한다'를 세아리는 모습이 연상된다. 운철은 정말로 혜경의 제안에 선택의 고민을 했을 것이고, 그건 마음보다는 현실에 기댄 선택임을 알 수 있다.

웃으며 헤어지는 혜경에게 오히려 아쉬움이 없다.

혜경은 밀려버린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고 거침없이 제안하지만 그것에 있어 후회와 뒤끝이 없다. 오히려 첫선택이 없었음에 오히려 더 숨김없이 말할 수 있었던 혜경이 부담 없이 가벼운 움직임으로 보인다. 그 선택의 기로를 놓아준 건 혜경이었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운철에게 괴로운 선택이었을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운철을 만나러 오는 사이에 그 사람의 차를 가져온 혜경과 걸어서 우산을 가지고 온 운철의 현재 우위는 모두 혜경에게 있어 보인다. 운철의 우산 놀림이 씁쓸하다.

가야할 시간.


총평.

이 이야기는 김종관 감독의 감성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사람들이 펼치는 네 개의 인연들은 각자 다른 것들을 품고 있습니다. 둘의 짧은 만남의 대화에서 관객들은 그 공간에 없었던 둘을 상상하게 됩니다. 유진이 겪었을 스타 배우로의 괴로움. 가십. 그동안 자신이 사귀었었다며 둘의 관계를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을 창석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나서는 둘의 마음도 선히 보이는 듯합니다.


경진과 민호의 만남에서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뜨겁게 사랑했을지에 대해서 상상하게 되고, 은희의 위장결혼에서 첫 번째 결혼 때의 은희는 어땠을지. 사장에게 작업 걸다가 막내 사원과 눈이 맞아버린 그 은희의 사랑이 위태로운 떠오릅니다. 헤어진 연인에게 바람피울 것을 권유하는 혜경에게서 왜일까 지금의 신랑은 정말 멋지고 그럴 듯 함이 느껴지고, 아직 혜경을 잊지 못해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하고 있는 운철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렇듯 정말 내가 들었을 법한 이야기를 한 공간에서 풀어가지만, 사실 잘 그렇게 들어본 이야기는 아닌 이야기. 한 카페의 하나의 테이블에서 생각보다 사람들의 많은 깊고 깊은 사연들이 오고 갈 수 있다는 것. 그곳에서 마치 그 테이블을 준비하고, 그런 이야기들을 멀리서 지켜보는 카페의 주인은 마치 우리에게 이런 얘기가 한 곳에서 잘 이뤄질 수 있음을. 이런 1주일의 작업으로도 사람들에게 좋은 영화로 감성을 이끌어 낼 수 있음을.


마치 짧은 단편소설과 같은 이 영화는 관객에게 그런 짧음이 주는 여유를 독자나 관객 스스로의 삶과 이야기로 모자라거나 비워진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최악의 하루에 이어서 정말로 좋은 영화를 보고 나온 느낌. <더 테이블>입니다.


평점. 4.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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