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Young Sep 20. 2024

등산, 더운데 왜 가는가?

나는 이렇게 등산에 푹 빠진 줄 몰랐다. 

2024.09.20

언제부터 등산 좋아했는가? 나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확실한 거 30대가 되었을 때쯤인 것 같았다. 나이를 많이 먹으면 등산이라는 취미를 갖게 될 것이다라고 다들 많이 하던데, 부정하기 싫지만 맞는 것 같다. 


"아니 님이 우리 엄마 같아요. 우리 엄마도 날씨가 좋으면 등산 간대요. 산 올라가면 좋대요. 거기 가서 또 꽃사진을 엄청나게 많이 찍으셔요. 딱 님이잖아요 지금!"

우리 동료가 그랬다. 나는 그의 엄마와 비슷한 취미와 패턴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가지고 나는 늙었다는 사실을 증명한 거였다. 그의 취미는 내 늙음을 이용해 나를 놀리는 거였다. 근데 뭐 어쩌겠어 늙었다는 사실이 어떻게든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나는 그보다 항상 나이가 더 많다는 것도 변함이 없을 것이고...


베트남에 있었을 때 나는 산에 올라간 적이 없었다. 아, 정확히 말하면 딱 한 번이었다. 푸이엔 이라는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러 왔을 때 한국 의사 선생님에 따라 해가 가장 뜨거운 12시, 나는 산에 올라갔다가 병원에 갈 뻔했다. 지리적 특성상 산을 자주 볼 수 있는 기회도 없었고, 걸어서 산정상까지 올라간다는 생각마저도 하지 않았지. 대학생 때 한국문화 수업에서 한국 사람이 등산 좋아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다. 나랑 상관없는 일이고, 나 또한 등산 같은 거 절대로 안 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깜짝 놀랐다. 도심에도 산이 보인다는 게 참 신기했다. 한국 면적의 70%가 산이라고 예전에 배운 적이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 몰랐지 사실.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했다. 끝. 거기 한번 올라가 봐야지 생각도 안 했었다. 그 힘든 걸 왜 하냐고? 

한국에는 보통 대학교들이 산속에 있거나 근처에 있어서 교수님들이 제자를 데리고 등산을 자주 간다는 이야기를 선배들한테 들었는데 그게 참 걱정이었다. 그 산에? 내가? 거기까지 올라간다고? 상상도 못 했다. 다행(?)인데도 대학원 생활 2년 동안 학과 가을 답사 때 교수님 덕에 첫 등산을 하게 되었고, 등산이 있다면 나는 없고, 내가 있다면 등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20대 중 후반이었다. 

등산을 싫어하는 이유 또 하나가 나는 지구력이 약한 편이다. 힘이 세지만 지구력이 완전... 운동할 때도 PT선생님이 그러셨다. 날 보고 지구력을 계속 키워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등산도 힘보다 지구력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진 내가, 그냥 시작하기 전에 진작 포기했다. 


그러다가 30대가 들어가서, 광교 쪽으로 이사 왔다. 우리 집에서 호수공원으로 걸어갈 수 있고, 집 근처에 작은 언덕들이 좀 있었다. 등산을 싫어하지만 걷기가 좋아해서 시간이 있을 때 나가서 자주 걸어갔다. 언덕도 올라갔고 호수공원까지 왔다 갔다 했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탓인가? 사계절의 자연을 바라보면서 사진에 담으라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고, 언덕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멋진 자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턴가 평야보다 좀 더 높이 올라가서 더 아름다운 자연을 만킥하고 넓은 세상을 한눈에 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게 바로 등산이지 말이다. 

처음에 등산을 좀 좋아하는 친구와 같이 가기로 했다. 초보자라서 아주 귀여운 수준으로 시작하려고 했다. 높은 산 대신 300 미터 미만 산, 그리고 되도록이면 둘레길 위주로 먼저 갔다. 나보다 친구가 지구력 좋아서 힘든 줄 모르나 봐... 계속 계속 올라가는데 안색이나 숨소리에 편함이 없었다. 나는 죽을 줄만 알았는데 말이다. 우리가 동네 산부터 시작해 남한산성, 광교산 형제봉, 민둥산까지 갔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산에 들어가서 자연의 힘을 얻어 힐링되기도 하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등산을 자주 가는 건가 싶다.

근데, 나한테 고민 하나가 있다. 친구가 그렇게 빨리 올라가는데 나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래서, 친구와 등산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눈치를 보게 된 것 같았다. 우리 원래 속도를 서로 맞출 수 없는 건데, 억지로 가자고 해서 친구가 고생한 것 같아서 한 동안 괴로웠다. 그러다 나는 독립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혼자 등산 가기 시작했다...

혼자 산에 들어가는 게 안 무섭냐고 다들 물어보는데, 당연히 무섭지! 상상력이 아주 풍부한 내가 얼마나 더 상상했겠어? 산에 올라가는데 갑자기 실종되거나... 멧돼지 갑자기 나타나 나를 잡아먹는다든가... 아니면 잘못되다가 넘어졌는데 사람이 없어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온갖 스틸러 영화를 구성해 봤다. 세상 걱정을 다 하면서 살았지만 결국 마음을 먹어해 보기로 했다.


혼자 등산의 첫 목적지는 광교산이었다. 친구랑 같이 갔을 때 정상까지 올라가지 못해서 이번에 나 혼자서 정상까지 찍고 내려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3월 초봄 어느 주말이었다. 물과 간식을 가방에 넣고 광교역에서 아침 8시에 출발했다. "나는 내 속도대로 간다" 생각하면서 올라갔다. 힘들면 잠시 쉬고,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고, 어느새 정상까지 올라갔다. 짜릿했다! 나는 못하는 게 아니라 노력과 끈기가 부족했을 뿐, 이제는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다는 그 자부심이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참 넓고 참 복잡하고 바빴다. 정상을 찍었으니 내려가야 하는데 지도를 보니까 무슨 봉이 있던데, 오 무슨 성지도 있던데... 카카오맵 지도에 따라 그날에 다 찍고 왔다. 그다음에 이틀 동안 누워 있었다 몸살 때문에! 

두 번째 혼자 등산의 목적지는 청계산이다.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 사람이면 한 번쯤은 다 청계산 올라간 사람들이었다. 그 말은 즉슨 난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현실과 달랐다. 광교산보다 더 힘들었고 중간중간에 몇 번이나 포기하고 내려갈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많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긴 했었다. 이번에는 몸살이 나지 않았고 다음 날에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등산에 막 특화된 느낌이 아니고, 지구력이 엄청나게 향상된 것도 아닌데, 그저 뭔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는 기분이다. 


이제는 혼자 등산을 즐기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 때도 충주호를 바라보는 악어봉에 올라갔다. 주말에 날씨가 괜찮으면 근처 산이 뭐가 있는지 검색하고 떠나곤 한다. 내 지구력이 여전히 약하고, 속도도 여전히 느리지만, 등산을 통해 얻은 고통과 아픔을 이제 견딜 만한다. 그 고생 끝에 나를 기다리는 보람이 무엇인지도 이제 잘 알고 있고, 더 욕심이 생겼다. 


악어봉에서 찍었던 악어들 ^^

이제는 산을 지나갈 때마다 "와 엄청 높구나!"라는 생각보다 "와 이 산 높이 어느 정도 되지? 여기 등산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먼저다. 

그리고 등산하다 포기하려고 했을 때

"그 고된 직장생활을 잘 해내는데 그깟 산이 뭐라고? 포기는 안 되지!"

라는 마음으로 버티고 산에 올라간다.  


  

작가의 이전글 한국에서 n번째 추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