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 리프레시 휴가 계획은 언제부터?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아주 좋은 복지가 있다. 정규직 기준으로 3년 다니게 되면 1달 동안 유급 휴가인 리프레시 휴가가 자동으로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즉, 1달 동안 일을 하지 않아도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아주 꿀복지라는 말이다!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 리프레시 휴가란 나한테 아주 먼 미래처럼 느껴졌다. 3년이라는 기간이 참 길거든! 나도 그렇게 한 회사에서 길게 다닌 적도 없었고 말이다 (회사 다니다가 유학길 떠나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회사를 길게 다녀본 적이 없었다). 리프레시 휴가를 즐기려고 죽도록 퇴사하고 싶어도 꾹꾹 참고 다니는 동료들도 봤었다. 리프레시 휴가를 떠나고 돌아온 날에 마지막 출근이라며 작별인사를 한 동료도 있었고 그렇다...
아무튼, 나도 큰 기대가 없었지만 어느새 나한테도 리프레시 휴가가 생겼더라! 딱 3년 되었을 때 나는 일에 미쳐 바로 써야 한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사업이 셧다운 되어 팀이 해체되고, 나는 직군 전환을 하여 다시 본사 업무를 보게 되었다. 3년 동안 밤낮없이 노력하고 또 고생을 했지만 결국 셧다운이라는 결과를 받게 되니까 속상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해서 그때 바로 리프레시 휴가를 떠날까 잠깐 고민했었지만, 나의 그 모든 감정을 억눌려서 다시 본사로 복귀해서 새로운 직군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조금만 더 다니고 때가 되면 바로 퇴사할 거라는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늘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경기가 좋지 않아 바깥세상이 계속 춥고, 나한테 기대고 있는 대가족이 있다는 현실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어서 퇴사 계획을 잠시 접어두었고 새 직군으로 근무한 지 어느새 또 1년반쯤 되었다. 전에 어떤 동료가 나에게 말했는데 리프레시 휴가가 생기고 바로 쓰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감정이 폭발되어 바로 떠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때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내 감정을 스스로 잘 컨트롤하고 있다고 자만했었거든. 근데 1년 반 더 일해보니까 욱한 심정이 점점 커졌더라고. 매일 일어나서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만 있고, 일에 대한 재미를 느껴지지 못했다. 아 항상 그런 상태가 아니지만, 대부분 그랬었다. 그러다가 올해 초부터 팀리더와의 면담 때 11월에 리프레시 휴가를 꼭 쓰겠다고, 안 보내주면 그냥 관두겠다고 협박을 약간 섞어서 말씀을 드렸다. 협박의 효과인가 내 꼴이 불쌍히 여겨서 그런가 내 리프레시 휴가 계획을 허락해 주셨다 (예전에 그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요즘은 마음대로 리프레시 휴가를 못 쓴다고 그렇더라).
사실 작년 말부터 리프레시 계획을 조금씩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했다. 1달 동안 쉴 수 있으니까 대부분 유럽 여행을 많이 가는데 나는 일단 베트남 집에도 가야 하니까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간이 딱 2주 정도 생각했었다. 유럽 여행은 좋긴 하지만, 딱 가보고 싶은 나라는 바티칸밖에 없었고, 유럽 혼자 여행, 그리고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많이 들은 데다 여행 비자 신청하기가 너무 번거롭고 귀찮아서 (베트남 사람이라 유럽 여행 시 비자 발급받아야 함) 결국 아시아향으로 계획을 세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2주 동안 어떻게 놀아야 재밌게 놀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계속 검색했다. 일단 일본 비자가 있으니 일본이 첫 목적지로 택했고, 지난번에 보지 못한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지브리파크를 꼭 찍어야 하고... 최근에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히로시마평화공원도 가보고 싶고, 그러고 나서 태국의 연등 축제도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고, 또 베트남의 다낭 - 후에 여행 기차도 타보고 싶고... 2주 동안 과연 이 목적지들을 다 찍을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고민 끝에 드디어 2주짜리 여행 계획은 완성! 한국 - 히로시마 - 오사카 - 나고야 - 나리타 - 다낭 - 후에 - 하노이 - 치앙마이 - 호찌민 이렇게 아주 힘든 일정을 잡았다! 신난다 정말! 주변 사람들이 내 계획을 듣고 절레절레하는데... 너무 힘들지 않겠냐고 여행은 그렇게 힘들게 다녀야 하냐고 하는데 나는 괜찮다! 휴양 여행이 나한테 안 맞거든!
리프레시 휴가, 벌써 설레고 기대된다! 그게 그 당시의 내 마음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