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무관님은 아직 어리니까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정 안되면 다시 돌아오면 돼요. 지금은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요."
나랑 고작 이제 한 달 같이 일했고, 내가 나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 바빠지는 동료분이 해주신 말.
"주무관님..저 방금 들었어요.. 너무 아쉬워요 진짜 너무 충격인데.. 가시기 전에 제 사무실로 한번 올라와요 커피 맛있게 타드릴게요."
나랑 한 달에 해봤자 3-4번 마주치는, 일은 같이 해본 적도 없는 다른 부서 직원분이 전화해서 해주신 말.
"주무관님 일을 참 잘해서 덕분에 내가 그동안 편하게 일했는데. 어딜 가도 잘할 거예요. 항상 건강하고 하는 일 모두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요."
1년간 거의 메신저로 '자료 송부드립니다', '결재 났는데 확인 부탁드려요' 등의 업무적인 말들만 오고 갔던 직원 분이 채팅으로 해주신 말.
나가는 사람에게 당연히 덕담만 하지 바깥세상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겁주고 저주하겠냐마는, 적어도 듣는 나로선 말로든 글자로든 상대방의 진심이 충분히 느껴져서 나 사고 안 치고 무사히 끝냈구나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내가 특별히 잘해준 것도 아닌데 이런 따뜻한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의문도 동시에 든다. 내가 먼저 한 거라곤 딱딱한 업무 메시지를 마무리를 할 때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 쓴 것, 감사할 땐 감사하다, 죄송할 땐 죄송하다, 그리고 약간 더 친근한 말투로 대한 것 밖에 없는데. 삭막한 평일엔 그조차도 먼저 내밀어준 손인가? 어쩔 땐 인사치레로, 구색 맞추기로 형식상 한 말들에 영혼이 가득 담긴 답이 돌아올 때면 괜히 스스로가 찔릴 때가 있기도 했다. 표정은 미동도 없이 그저 키보드로만 웃음을 날려준 것뿐인데. 내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훅 들어오는 진심을 느낄 때면 이 마음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싶다.
세 분 모두 내가 나가면 크든 작든 일이 조금씩 더 복잡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나가고 후임자가 올 때까지의 공백도 있고, 후임자가 온다 한들 하루 만에 내 업무를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할 터. 사람이 하나 나가니 분명 모두가 조금씩 불편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나는 저런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을까? 저 사람은 어차피 나가는 사람, 당장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 나는 그만큼 구멍을 메꿔야 한다. 큰 친분도 없었고, 앞으로 만날 사이도 아니다. 정말 나는 진심으로 그 사람을 축하해 줄 수 있을까?
이미 근 한 달간을 고민의 굴레에 빠져 살아서 그런지 오히려 퇴사가 몇일밖에 안남은 지금은 내가 퇴사한다는 사실에 큰 감흥이 없다. 마치 사람의 분노 단계에서 어느 선 이상을 넘어가면 머리가 차갑게 식으면서 무서울 만큼 냉정해지듯이, 그동안 가혹할 정도로 머리를 헤집고 다닌 고민들이 점차 가라앉으면서 평온함이라기보단 '무'에 가까운 정신 상태가 된다. 사직서를 손에 쥐게 될 때까지는 마음에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점점 더 이 조직이 싫었고, 이 공간에 있는 것조차 못 견딜 정도였다. (물론, 여전히 그러함.) 하지만 시원하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참 간사하게도 그 간의 좋은 기억들이 몽글몽글 하나둘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고로 짧지만 특별했던 내 첫 직장생활을 회고해 보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다.
나는 공무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신붓감, 또 누군가에게는 세금 도둑으로 불리는 공무원이었다. 작디작은 사무실에서 나 포함 5명이 근무했는데, 나머지 4명이 50대 아줌마인 상상만 해도 숨 막히는 근무 환경이었다. 발령이 나고 정식 출근 전 인사드리러 간 날, "우리가 엄마 뻘이네~", "나는 엄마까지는 아니고 이모뻘?^^" 호탕하게 웃는 아줌마들 사이로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던 나. 어차피 모두가 다 선배고, 어른인 사회 초년생인 것은 맞지만, 이렇게 동료가 다 50대인 극한의 상황에 놓일 줄이야. 공무원은 그 어떤 곳보다도 상하구조가 뚜렷한 조직인데, 이 정도면 거의 수발을 드는 수준을 넘어서 업고 모셔야 하는 건가? 이제 돈을 벌 수 있고, 부모님 돈으로 먹고 자고 싸는 생활은 청산이라 드디어 '내돈내산'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다행히도 아주머니들은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다. (아직도 동료라기보단 그냥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아마 또 다른 어딘가에서 사회생활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본인들의 딸 같아서겠지. 오히려 나이 차이가 말도 안 되게 나버리니까, 실수를 해도 자꾸 질문을 해도 너그러워지는 부분도 있었을 것. 그리고 나는 엄마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그 아주머니들과 동년배인 친구가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나이대 사람들과 은근히 잘 노는 능력이 길러졌는지 아주머니들과 은근히 대화가 불편하지 않고, 은근히 나도 그 대화를 재밌어하고 있었다. 수상할 정도로 은근히 적응해가고 있는 나였다. 1년간 작은 공간에서 복작복작 같이 일하면서 분석해 본 결과, 아주머니들은 감탄사 표현도 참 다양하게 구사하시고, 세상에 궁금한 게 유치원생만큼이나 많으며, 본인이 말했던 걸 아주 자주 기억하지 못하고(심지어 듣는 사람도 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함), 뒤에서 흉을 보다가도 잘해주면 "그래 사람 자체가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렇지?" 하며 누구보다 쉽게 넘어간다. 점심을 먹고 한 바퀴 산책을 할 때면, 늘 같은 코스로 도는데도 무엇이 그리 늘 새로운지, "이건 무슨 열매인가?" "어머 그새 이렇게 자랐네 아유 기특해 신통해라" 하신다. 세상에 갓 나온 아이처럼 모든 걸 궁금해하고 신기해하고 '신통'해하는 아주머니들이었다. 가끔 이해가 안 돼 웃기기도 했지만, 덕분에 함께 일한 1년이 나에게도 그 어느 때보다 사계절을 찬찬히 보고 맡고 느끼는 시간이었다. 잎이 하루 사이에 이렇게 더 물들었구나, 엊그제만 해도 싹이 이제 막 텄었는데 벌써 꽃봉오리가 나오는구나, 살면서 한 번도 유심히 본 적 없는 것들과 눈을 맞추기도 했다. 그리고 아주머니들의 기억력은 참 한결같이 썩 좋지 않다. 몇 주 전 한 이야기라지만 꽤 충격적이라 일하면서 대충 들은 나도 기억하는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처음인양 말하고 놀래는 걸 보면 마치 콩트 같아서 혼자 피식 웃기도 했다. 다른 부서 '4가지련'이 아주 여우 같다고 흉보다가도, 그 4가지련이 고생이 많으시다며 늘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가면 "사람 자체는 괜찮은데 말을 밉게 해서 괜히 오해를 사~" 하며 사르르 마음의 빗장을 푸시는 일도 종종 있었다. 정을 조금 주면 더 많은 정으로 되갚는 정 많은 아주머니들이었다. 김장 시즌엔 직접 담은 김치를, 주말에 시골 시댁에 다녀올 때면 각종 농산물을 꼭 나까지 포함해서 4개씩 포장해 와 나눠주시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호루라기 무더기를 가져와서는 호신용으로 쓰라며 노나 주시는 (제발..) 정스러움이 있는 곳이었다. 이쯤 되니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건지, 시골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함께 일하는 동안 내가 너무 조용하고 얌전하다고(어떻게 제가 말을 똑같이 많이 할 수 있겠어요..)하시면서 조금 답답해하는 눈치이기도 했지만, 내가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발령나신 다른 근무지에서 바로 전화가 와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걱정하시고, 주무괸님 안 본 지 몇 주 됐다고 벌써 보고 싶네~~라고 난생처음 스위트한 멘트를 날리셔서 괜히 감동을 주시기도 했다. 조용히 일만 묵묵하게 해서 곁을 안 준다고도 생각하셨을 수도 있는데 아줌마 특유의 '네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안 씀' 능력으로 그간 정을 많이 주신 것 같다.
그런 따뜻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바쁘신 와중에도 이제는 같은 곳에서 일하지도 않는데, 어쩌면 인생에서 다시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는 나를 위해 퇴근하고 여기저기서 오셔서 송별회를 해주시는 그 마음은 어디서 만들어지는 걸까. 그간의 정인가. 그럼 어떨 땐 한없이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동물이 계산기를 두들기지 않고 행동하게 해주는 그 정은 대체 무엇일까. 공허한 말만 떠들어대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따뜻함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을 주지도, 또 만족스럽지 않아 일부로 더 마음을 붙이지 않으려고 한 곳에서 뜻밖에도 따뜻한 마음들을 한 아름 받아간다. 비록 많은 이유들로 그만두게 되었지만, 이렇게 보니 좋은 기억도 꽤 가져갈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