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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연 Jun 15. 2022

죽음을 생각하자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심장이 멎고 마지막 숨을 뱉고 온몸의 힘이 탁 풀려버리는 그 순간 나는 거기서 정말 말 그대로 '끝'인 건가? 세상은 굴러가도 내 두 눈으로 보는 세상은 거기서 심장박동 측정기가 삐-하고 끝나는 것처럼, 영화가 끝났을 때 순간적으로 암전 되는 것처럼 그렇게 끝나는 건가? 죽음 후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세상이 있기는 한 건지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는데 궁금한 건 산더미다. 그리고 그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하다 보면 두려움이 엄습한다. 한평생 살아있었고 무의식 중에도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생각은 흐르는데 그 모든 것의 종말이 온다니. 어제 '나의 해방 일지' 마지막 회에서 염창희가 또 한 명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몇 명 보내봐서 아는데, 가는 순간 편안해진다. 그러니까 형,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편하게 가." 평생 무서울 것 없이 강했던 사람도, 죽음 앞에선 나약해지는 건 아마 그 후엔 어떻게 되는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못했으니까 그렇겠지? 살다 보면 이렇게 하다 보면 어떻게 될지 도통 모르겠는 일들 투성이지만, 죽음이란 건 겪어본 사람이 이 땅에 없는 차원이 다른 길이니까.



  그렇게 아직 닥치지도 않은 죽음이라는 공포가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다가 그다음엔 허망함이 온다. 굳이 그렇게 표현해야 할까 싶으면서도, 사실 냉정하게 보면 모두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다. 그 달려가는 속도는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가속도가 붙어서, 많은 사람들이 잠깐 낮잠 잔 것 같은데 이 나이가 되어있더라라고 한다. 모순적이게도 이렇게 누구도 해소해줄 수 없는 공포감은 지금 내가 갇혀있는 작은 세상에서 해방시켜준다. 뭘 그리 아등바등 사나, 뭘 그리 끙끙 앓나, 뭘 그리 죽일 듯이 미워하나, 뭐가 그리 중요해서 이 유한하고 아까운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있는가. 그게 염세주의로 빠지면 안 되지만, 적절하게 이용하면 인생을 조금은 더 가볍게,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사고를 바꾸면, 갑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하나 사랑스러워진다. 한심해 보였던 일요일 낮 나의 빈둥거림이, 나중엔 그리워하게 될 가족들과 보냈던 평화로운 주말이 되고, 한 때 전부인  것처럼 좋아했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슬픔에 빠져 술과 친구들로 억지로 채웠던 시간들도 나중엔 그 나이 때니까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청춘의 방황(?)이 되어버린다.



  어찌 보면 뻔뻔한 자기 합리화, 자기 위로 같은 이 과정이 삶의 무게가 너무 짓누르는 것 같을 때,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고 스스로에 대한 증오심이 들 때 꽤 유용해진다. 그래서 다시, 죽음을 생각하자. 죽음 앞에 모든 고민은 적어도 한 사이즈 작아져 짧은 내 타임라인 속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어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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