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의 별이 될 수 있도록
몇 해 전 끝난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효리의 민박'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밤하늘 별을 보다가 이효리가 이상순에게 "오빠, 별은 계속 보고 있으면 더 많이 보이고 더 반짝이지? 나도 오빠가 계속 봐주면 더 반짝인다"라고 말한다. 우와 별 많다, 별 예쁘다 감탄사만 뱉어내는 나에게 그런 별 감상평은 꽤 신선한 충격이었고 너무 사랑스러웠다. 인간은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게 되는 칭찬을 먹고사는 동물이다. 사랑에 빠지면 예뻐진다는 말도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으로 빚어지는 도자기 같은 존재들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내 주변엔 유독 활달하고 씩씩한 친구들이 많았다. 나쁘게 말하면 기 센 친구들이라고나 할까. 어렸을 때 난 지금보다도 더 해야 할 말을 똑바로 못 해 우물우물거리고 속으로 앓았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였고, 홀수로 다니면 늘 혼자 남는 그런 아이였다. 또래보다 항상 키가 컸었던 탓에, 그땐 괜히 친구들 뒤에서 끼지 못하고 멀대같이 서 있는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서 쓸데없이 큰 신장을 원망하기도 했다. 중학교 입학 후, 모두가 같이 다닐 친구들을 매의 눈으로 탐색하는 혼란의 3월을 나는 유독 순탄하게 보내지 못했다. 겨우 어떤 무리에 들어갔더니 어느 순간부터 한 친구는 나를 쳐다보며 다른 친구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 귓속말을 들은 친구 역시 나를 보면서 히히덕 웃었다. 내가 다가오거나 말을 걸려고 하면 그 기분 나쁜 행동은 반복됐다. 이미 어느 정도 무리들이 형성되고 있을 시점이라, 혼자 다닐지언정 그 친구들과는 더 이상 어울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보니 그 귓속말은 아무 내용이 없었고 그저 나를 따돌리고 싶어서 한 행동이었으며, 그 친구는 나 이후에도 독창적인 방법들로 한 명을 따돌리곤 했다.
급식실 갈 때 같이 가는 것이 우리가 같은 무리라는 증표로 느껴지던 그 시절, 점심을 같이 먹자 했던 친구들은 나와 한 친구가 화장실 간 사이에 도망치듯이 급식실로 뛰어갔다. 그전부터 낌새가 묘하게 이상했음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어서 우린 알았다. 그들은 우리를 떼어놓으려고 말도 없이 갔고, 우리가 따라올까 봐 부리나케 뛰어갔다는 것을. 뛰면서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난 이미 화장실에서 들어버렸다. 나와 남겨친 한 친구와 매점에서 빵을 사 와 모두가 떠난 교실에서 점심을 때웠고 그들이 돌아왔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은 문드러졌다.
물론 내가 왕따를 당했던 것도 아니고, 내 학창 시절이 힘들었던 것도 아니다. 난 결국에는 나와 맞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학교가 끝나면 30분이면 갈 하굣길을 친구들과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엎어질 정도로 웃느라 1시간을 걸려 집에 왔다.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친구들이 있는 것처럼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은 더 많았다. 지금도 학창 시절은 나에게 너무 그립고 좋은 추억이다. 그저, 본인들의 결속력을 위한, 혹은 그저 화풀이할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들의 눈에 띄어 몇 번 표적이 되었을 뿐이다. 어린 그들의 눈에도 나는 어리바리하고 기가 약해 보였 나보다. 이제 와서 그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뭐가 그리 마음에 미움에 가득 차서 그랬을까, 안쓰럽고 애잔할 뿐이다.
요즘 들어 나는 누구를 만나도 굉장히 활발하고 친화력 있는, 소위 인싸라고 불린다. 이유는 정말 알 수 없다. 나는 아직도 낯을 엄청 가리고 상대의 미세한 표정 변화에도 피부 융털 하나까지 반응을 하는 소심한 사람인데,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나는 낱낱이 볼 수 있으니 그런 외부 평은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초중등학교 시절엔 친구를 사귀는 게 그리 자연스럽고 쉬운 과정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너 친구 되게 많잖아"소리를 듣는다. 여전히 '내가?'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나를 그렇게 편하고 좋게 봐주니 어떨 땐 성격이 정말 바뀐 건가 싶다. 재밌다 재밌다 해주니 재밌는 사람이 된 것 같고, 좋은 친구라고 해주니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 내 안의 그런 면들이 조금씩 땅을 파주니 그 모습을 들어내 준 건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주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바뀐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밤하늘을 계속 보고 있으면 별이 하나하나씩 눈에 들어와 많이 보이듯이,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반짝이게 한다. 무엇을 해도 넌 뚝심 있으니 잘할 거라는 격려부터 해주는 가족들 덕분, 씻지도 않고 안경을 쓰고 데이트를 나와도 변함없이 제일 예쁘 다해 주는 남자 친구 덕분, 이렇다 할 애정표현은 굳이 하지 않아도 나를 찾아주고 생각해주는 친구들 덕분이다.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가만히, 천천히, 오래 봐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가 서로의 별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