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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연 Jun 20. 2022

기록

기록의 시대



  기록의 시대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브런치, 유튜브, 그리고 내가 아직까지도 모르는 플랫폼들까지 수많은 기록의 수단들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반려견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서 '우리 강아지가 이렇게나 귀여워요'를 뽐내고, 누군가는 본인의 일상을 영상으로 담아 익명의 사람들에게 매주 보여주며 내적 친밀감을 갖게 한다. 이런 디지털 시대 전, 역사라는 것은 주로 글로, 책으로 쓰이고 남겨졌다. '어느 왕 시대에 백성들은 이렇게나 궁핍했다', '어느 왕 시대에는 어떤 민족이 쳐들어와 전쟁을 시작했다' 모두 글과 유형물들로. 역사박물관에 가면 있는 누런 종이에 알 수 없는 한자들로 빼곡히 쓰여있는 책들, 어쩌다 발굴된 유물들로 천년 전의 일들의 극히 일부분들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지금은, 그 수단들이 모여 현시대의 사료들이 되고 있는 것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또 천년 후의 사람들은 아마 요즘 유튜브 브이로그들을 보면서 "음 이때 사람들은 이런 옷을 입고, 이런 음식이 유행했군" 하겠지? 이런 식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는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 시대를 향유하고 있는 인간이 된 것 같아 꽤 흥미롭다.



  나도 기록하는 것이 좋아서, 이렇게 블로그라는 공간을 통해 그날 있었던 일, 아주 짧은 찰나에 든 생각을 붙잡고 글로 다듬어 올리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그 심정으로 기록하는 걸까. 남들에게 말로 하기에는 이상한 혼자만의 사유들을 배출하고 싶어서 하는 걸까.  이유야 무엇이든 기록을 하고 있고, 기록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단순히 옛날 sns처럼 내가 이렇게나 행복하다를 과시하려는 용도가 아니라 정말로 내가 이걸 느꼈고, 저걸 좋아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그리고 그걸 공유하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좋아하는 작가님은 실제로 하루하루의 소소한 행복들을 수집하여 책을 출판하셨고, 그 작업이 이어져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카카오톡으로 그날 있었던 각자의 행복을 공유하는 '리추얼'을 진행하신다. 좋아하는 마케터 한 분은 본인이 길을 걷다가, 핸드폰을 하다가 영감을 준 것들을 인스타그램으로 공유해서 소개해주시고 그걸 나뿐만이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영감으로 흡수하고 있다. 얼굴도 이름도 어디서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취향과 일상을 엿보는 것이 정확히 어떤 심리학적 이유로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일까? 아무리 친한 사람이어도 그 사람의 취향을 내가 속속들이 알 수 없고, 무엇을 하는지 일거수일투족 따라다닐 수 없는데, 한 사람의 표현물들을 보면서 당신은 이렇게 살고 있구나, 당신은 이런 사람이구나를 알아가면서 충족되는 호기심과 내적 친밀감이 한 이유 아닐까 싶다. 또, 옛날에 어디서 본 이름 모를 연구에서, 사람들 웃게 하는 가장 큰 포인트는 '공감'이라고 했다.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사람들이 웃는 포인트는 대부분 나도 뭔지 알 것 같은, 나도 어디서 본 것 같은 그런 부분을 긁을 때다.  생각해보니 낯선 사람의 기록에서 내가 공감을 하게 될 때, 신기하게도 묘한 쾌감을 느끼는 걸 보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당신도 나와 비슷하구나, 하면서.



이유야 무엇이 됐든,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합니다'와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들도 서로 공유하면서 행복해하는 인간의 귀여운 문화가 더 확산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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