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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연 Jul 12. 2022

봄은 여기 있었어

여행자의 눈


  몇 해 전, 친언니와 파리 여행을 갔었다. 일주일 동안 파리에만 머무르는, 파리를 아주 그냥 정복해버리자는 비장한 두 자매의 여행이었다. 유럽은 언제 가도, 몇 번을 가도 가슴 설레는 곳인데 게다가 파리라니! 센강을 따라 쭉 뻗은 길에 걸터앉아 우리가 한강에서 맥주캔 따듯이 와인잔을 부딪히는 프랑스 사람들 사이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만끽하는 그런 낭만적인 파리로. 아침에 숙소 앞 빵 냄새 폴폴 나는 빵집에서 갓 구운 바게트를 들쳐 매고 가는 그런 파리로. 그렇게 고대하던 파리를 갔는데, 왠지 모르게 나는 여행 내내 한국을 그리워했다. 골목마다 정말 내가 아주 먼 외국으로 왔구나 싶은 풍경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인 온 세상이 금빛으로 물드는 시간에 본 몽생미셸까지, 그런데도 한국에 돌아가는 날에 나는 아쉬움보다 행복함이 더 컸다. 고작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되는 여행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다니 애국심도 이런 애국심이 없다만,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한국에서의 나의 일상은 너무 권태로웠는데, 여행이 너무 필요했는데, 그 일상이 느닷없이 파리에서 소중해진 거다. 또 언제 보게 될지 모르는 에펠탑 앞에서 야속하게도 내 마음은 4평짜리 내 방에 있었다. 내 몸에 꼭 맞는 세상에서 제일 편한 내 침대에서, 눈을 뜨면 모든 게 내가 자기 전에 봤던 그대로고, 가족들과 밥을 먹고, 매일 걷는 동네 산책 코스를 걸으며 나와 똑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지나치는 게 그렇게 소중해졌던 것이다. 갑자기. 파리에서.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돌아와 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있었다고 말한 중국의 한 시인의 마음이 이랬을까.



  그렇게 일주일 만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향수병을 얻고 여행에 돌아왔을 때, 나의 일상은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일상을 살아내는 내 마음이 달라졌다. 권태로워서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내 일상이 여행객의 시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산책길에 이렇게 큰 나무가 있었나, 서울 야경이 이렇게 예뻤나, 자기 전에 불 끄고 누워서 라디오 듣는 거 되게 좋네, 하면서. 그 이후로도 나는 여행객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한다. 지도를 안 봐도 발이 기억하는 길을 핸드폰 화면에 코 박고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모든 것을 눈에 담으려는 여행객처럼. 먼 타국에서 얻은 일상 꿀팁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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