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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연 Mar 08. 2023

퇴사도 한 마당에 나를 믿어야한다


퇴사 후 스스로 짜본 일주일의 일정 중 가장 힐링되는 시간 중 하나는 단연코 사진 수업이다. 화요일 오전, 카메라와 공책, 필기도구를 가방에 쏙 담아 양재시민의숲역으로 간다. 신분당선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한차례 빠지고 난 후라 지하철은 한산하고 사람들의 표정도 한껏 여유 있어보인다. 고정된 출근지나 출근 시간이 없는 사람들의 얼굴 톤은 기분 탓인진 몰라도 대체로 콩나물 시루같은 인파에 떠밀려 출근하는 이들보다 조금씩 더 밝다. 그 안에서 카메라를 쥐고 걸음을 옮기고 있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하고 싶은 걸 하고있다는 비현실적인 감사함에 한번 더 짜릿함을 느끼곤 한다. 역에서 걸어나와 한적한 주택가 사이로 들어가면 내가 수업을 듣는 사진 스튜디오가 나온다.


보통은 수업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해 여기저기 꽂혀있는 사진집들을 구경한다. 하루는 별생각없이 후루룩 들춰보니 사진이 꽤 마음에 들 것 같아 책상에 가져와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류준열 사진작가의 '아파트 숲'. 사실 배우 류준열의 사진집으로 오해해서 득달같이 사왔다가 나중에서야 아닌 걸 알았다는 선생님의 해명(?)을 들으며 한 장씩 넘기는데 배우 류준열이든 사진작가 류준열이든 상관없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개발되어 청약이니 분양이니 떠들석한 둔춘주공아파트의 옛 모습과 이미 많이 베어 지금은 볼 수 없는 울창한 나무숲을 사계절 동안 담은 사진집이었다. 잎이 싹트는 봄부터 시작해 녹음이 짙어지는 여름에 아파트 외벽을 뒤덮은 담장과 꽤 고층까지 시원하게 뻗어있는 숱 많은 나무들을, 불타는 빨간 단풍과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의 아파트 전경을, 그리고 눈이 나뭇가지 위에 소복하게 내린 겨울까지. 멋없이 네모 반듯한, 낡고 여기 저기 까여있는 옛날 아파트와 발에 채는 흔한 나무들을 이렇게 아름답게, 한편으론 먹먹하게 표현하다니. 카메라를 못에 건 채 몇시간을 걸어도 쉽사리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던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특별하고 예쁘다고 여기는 것만이 예술이라고 생각했나. 내가 가진 것을 예술로 만들고 싶어하면서 정작 내가 가지지 않은,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우선 '요즘 감성'인 것 같으니 찍고보는 겉핡기만 하고 있다.



일주일 중 좋아하는 또 다른 시간은 바로 아침이다. 아침마다 책을 한 권씩 읽고 있다. 꾸준히 하려면 초반의 성취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우선은 술술 읽히는 에세이들을 위주로 읽고 있다. 아침 새벽에 일어나 간단하게 몸을 잠에서 깨우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아침 식사를 할 때쯤 한 권을 다 읽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 아직은 해가 그리 빨리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창가를 옆에 두고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 지 찬찬히 골라본다. 어떤 날은 제목이 끌려서, 어떤 날은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이라 덥석 첫 장부터 넘기고 본다. 며칠 전엔 좋아하는 작가님이 추천해주신 책 중 한 권을 읽었다. 김달님 작가님의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괜찮았냐고 물으신다면 그 날 오후 집 근처 서점으로 달려가 작가님의 신작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까지 다 읽어버렸다고 대답하겠다.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는 사실 글의 소재부터 눈물을 안흘릴 수 없는 소재지만, 책 읽는 내내 언젠가 봤던 할아버지의 마른 얼굴과 손이 눈 앞에 자꾸 아른거리는 건 분명 작가님의 담담한 문장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린 적은 있어도 책을 읽으면서 한장 넘길 때마다 눈물이 주룩주룩 나는 경험은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땐 너무 많이 울은 탓에 아침부터 혼이 쏙 빠져있었다. 어떻게 뵌 적 없는 분의 지나간 시간이 이토록 눈 앞에 선할 수 있을까. 겪어본 적 없는 일들이 왜 자꾸 언젠가 겪은 일처럼 느껴질까. 글은 분명 한 사람의 1인칭 시점에서 쓰였는데 어떻게 자꾸만 다른 인물들의 마음도 파도처럼 밀려 들어올까. 작가님이 겪어온 시간을, 장면마다 마음을 툭툭 건드렸던 것들을 본인의 속도대로 어떠한 기교나 꾸밈없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내려간 글이었다. 그리고 400페이지 정도의 길지 않은 글 끝에 나는 달님에게, 홍무에게, 희섭에게 온 마음을 다해 평안을 빌고 있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것을 '잘' 표현하는 사람을 흠모한다. 자신만의 시선을 담아내는 사진을,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생각을 녹아낸 글을 존경과 부러움 가득하게 바라본다. 자신이 갖고 있는 걸 스스로 사랑하고 그걸 잘해내는데 더군다나 사람들이 박수까지 쳐주는 인생은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한 평생 잘하는거라곤 '해야돼'라고 되뇌며 스스로에게 시키는 공부를 잘 해내는 것 밖에 없었던 나는, 무엇이 잘하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답이 없는 영역에서 자꾸 움츠러든다. '이 사진은 65점입니다, 이 부분을 좀 더 보완해오세요'와 같은 지시가 없는 영역. '이 글은 70점이니 앞문단의 분량을 늘리고 좀 더 인용을 많이 하시오' 와 같은 피드백도 없는 영역. 누군가는 잘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감흥도 없이 지나칠 것들을 쥐고 표류하고 있는 기분이다. 옳은 것을 고르시오, 옳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라는 문제 앞에 5개의 후보 중 눈치껏 잘 정답을 고르기만 하면 됐는데. 옳은 것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잘 해보시오, 같은 다소 무책임해보이는 문제에 걸려 머리를 싸매고 있다. 그럴 수록 결국 답은 내 안에서 찾아야한다는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알을 깨고 나오는 상투적인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결론에 도달하는데, 내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내 안의 고유한 것이 과연 사람들이 좋아할지 모두 오리무중이다. 내가 나를 알아내는게 이렇게나 힘들다.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서서 아무리 걸어봐도 도무지 무엇을 찍어야할지 모르겠다는 나의 고민에 사진 작가님이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찍을 땐 본능적으로, 이성은 나중에. 내 시선에 자꾸 걸리는 것들을 찍고 내가 왜 이걸 매력적으로 느꼈나, 고민하는 건 나중에 다 찍은 사진들을 한 장씩 보면서 하면 돼요." 경직되어있었나보다. '잘 했네' 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 자꾸 머리로 계산하느라 셔터 누르기를 번번이 놓쳤나보다. 내 시선에 자꾸 걸리는 것들, 가다가도 멈추게 되는 것들에는 무심한 채 자꾸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것들만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잘해서 비로소 내가 잘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걸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잘 되는 가능성엔 아직 믿음이 없나보다. 분명, 나조차도 본인이 갖고 있는 고유의 것을 잘 표현하는 사람을 흠모하면서 말이다.



성공해야 행복하다는 사람과 행복해야 성공이라는 사람은 절대 만날 수 없다고 한다. 머리로는 후자지만 마음은 자꾸 성급하게 전자를 향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그래서 내가 행복한 것들을 밀고 나가는 건 엄청난 자기 믿음이 필요함을 느낀다. 그리고 몇년이 걸릴지언정 그것을 포기하거나 잃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들의 위대함을 어렴풋이나마 느낀다. 나 자신을 믿자. 내가 행복해야 지속할 수 있다. 사람들의 말마따나 정답이 없는 영역이다. 나만의 답을 만들어가면 된다.  


글 쓰고 노트북을 덮으려니 마침 보인 노트북 스티커. 우연이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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