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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연 Mar 15. 2023

버스기사님과 가벼운 인사


지하철보다 버스를 좋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밖을 보면서 갈 수 있으니까. 적당한 속도감으로 달리다가 잠시 멈춰주기도 하고, 다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덜커덩 출발하는 규칙적인 리듬감에 몸은 나른해지는데, 그렇게 적당히 풀어진 몸으로 바깥 풍경을 보고 있으면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 여행을 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 창밖을 보면 시커멓게 어두운 지하터널을 지날 때가 대부분인 서울 지하철에선 영 그 기분이 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면 순식간에 훅 지나가버리는 한강 다리 위도 조금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다. 푸르딩딩하고 빼곡한 고층 빌딩을 지나 강남에서 강북으로 한강 다리를 건너면 길은 더 재밌어진다. 언덕을 올랐다가 내려가기도 하고, 구불구불한 길에서 좌회전 우회전을 반복하면 직선 도로를 달리는 강남보다 더 다채로운 풍경들을 마주하곤 한다. 옆 사람과 최소한으로 접촉하기 위해 한껏 구겨져 앉아가야하는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만 잘 피해가면 널널한 버스에서 가방에게도 자리 하나를 내어줘 한결 가벼워질 수 있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며 시선에 닿는 곳을 잠시 응시하다가 또 바뀐 장면에 눈을 적응시키다보면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게 된다. 보통은 조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기억 안날 정도로 날가루같이 흩날려 없어지는 시시콜콜한 생각들이다. 보행자길에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 시장 갔다왔나보네, 누구 닮았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여기 예전에 누구랑 왔던 곳인데 하나도 안 변했네, 오늘은 길이 안막히네, 올리브영에서 살 거 있는데 나중에 들려야겠다, 등등. 그러다 하루는 핸들을 쥐고 있는 버스 기사님의 반쪽만 보이는 팔이 시선이 멈췄다. 기사님과 승객들 사이의 얇고 투명한 가림판도 보였다. 버스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대부분 승객이 타는 앞문에서 버스 기사님은 그 가림판을 두고 가까운듯 먼 거리를 유지한다. 그리고 기사님은 투명한 벽으로 사방이 막힌 네모난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신다. 갑갑한듯 아닌듯, 폐쇄된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그 공간에서 하루에도 수십, 몇백명의 이름 모를 승객들을 싣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동선을 쳇바퀴처럼 돌고돈다. 일몰 시간에 주황빛 노을을 가득 머금은 채 한강을 달리면서 이 풍경을 매일 볼 수 있어서 기사님은 좋겠다, 잠시 품었던 마음을 서둘러 숨겨 넣었다. 우리가 매일 보는 노을에도 핸드폰 카메라를 살며시 들듯이, 물론 기사님도 매일 보는 풍경에 덮인 노을에도 매번 미소 지으실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날엔 얄팍한 가림판 하나만이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패라는 사실이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순간, 한번쯤 다른 길로 휙 핸들을 꺾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만 하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겨운 순간, 승객이 기분 나쁘게 해도 그가 내릴 정거장까지 묵묵히 그를 싣고 가야하는 사실이 더 짜증나는 순간 때문에 풍경이고 나발이고 막차 시간만을 기다릴 것이다. 버스를 탈 때 이어폰을 끼고 있어 희미하게 들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기사님의 인사에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숙이는 척 카드를 찍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간 것이 후회됐다. 먼저 건넨 인사가 허공을 가로질러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바닥에 툭 떨어지는 순간이 기사님은 오늘 하루에만 벌써 몇번째일까. 누가 타는지 보는둥마는둥했던 다른 기사님들의 눈빛과 무표정의 이유를 이해할 것도 같았다. 분명 서로 봤지만 바로 잊힐 얼굴들을 하루에 수백번 보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면서도 서로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한 듯 절대 말 걸지 않는 것. 군중 속의 고독, 뭐 그런 것. 그 당연함에서 이따금씩 찾아올 공허함에 기사님의 반쪽만 보이는 팔에 내려앉은 햇살마저 쓸쓸해보였다. 인사가 잘 안들렸어도 그냥 먼저 인사할걸. 눈 맞추면서 안녕하세요, 하는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설사 나를 쳐다도 안보실지언정 나는 안전하게 내 목적지까지 태워주심에 미리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사한 것이니 아무렴 어떤가.






어쩌다보니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나랑 버스기사님 둘뿐이었던 빨간 버스를 탔었을 때, 기사님이 "아가씨 어디서 내려유?" 물어보시며 적막을 깼었다. 핸드폰 지도 어플을 허둥지둥 켜서 내려야하는 버스 정거장 이름을 말씀을 드리니 "어차피 그 전역들은 사람들 거의 안 타니까 내가 거기까지 아주 빨리 도착해줄게요잉? 내가 말해줄테니까 쉬고 있쇼" 하셨다. 버스는 차가 거의 없는 순환고속도로와 한적한 시내길을 전력질주했다. 미친 속도감에 몸을 맡기고 번지듯이 지나가는 바깥을 보다보니 지도 어플이 말한 예상 시간보다 10분 더 일찍 도착했다. 또 어떤 날엔 버스 안에 붙은 노선도에도, 지도 어플에도 종점까진 분명 한 정거장이 더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아가씨 여기 종점이에요!! 내려요!!" 소리쳤던 기사님도 있었다. "아저씨 여기 다음 정류장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여기가 종점이라고 빨리 내려요!!"하며 심지어 정거장도 아닌 한참 더 뒤인 갓길에서 독촉하듯 뒷문을 여셨다. 하는 수 없이 내렸지만,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노선도가 바뀌었다는 안내문도 없었는데, 무슨 설명도 없이 사람을 쫓아내듯 내보내나. 교통비 내고 탄 엄연한 승객인데 이렇게 무례할 수 있나, 부웅 매연을 내뿜으며 야속하게 가버리는 버스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다. 그 날 기분이 안좋으셨을 수도 있겠지. 순간의 불쾌함이 불쑥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또 얼마나 지쳤으면 저러나 싶어 노려보던 눈의 힘을 풀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제 버스를 탈 땐 꼬박 꼬박 나를 보고 계시든 아니든 기사님을 보며 내 몫의 인사를 한 후에 카드를 찍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행동이 만약 저 사람이 겪을 수많은 무응답의 민망함을 덜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엊그제 탔던 버스에서 내가 인사하자 싱긋 웃으며 가볍게 목례했던 기사님과, 그 표정을 보고 마스크 속에서 싱긋 웃었던 나를 생각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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