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 준비를 해보아요 (음식 편)

겨울에는 겨울만의 맛과 낭만을

by 재연




127781_3092612_1763429042531362425.png 2025 국화빵 첫 개시!


01. 겨울 간식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점들이 눈에 띈다는 건,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는 뜻이다. 내가 사는 동네 사거리에서는 온갖 겨울 간식을 구할 수 있다. 붕세권을 뛰어넘어 국화빵, 호떡, 계란빵, 와플, 호두과자, 땅콩과자.. 찾는 건 다 있는 곳.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뜨거운 김 사이로 느껴지는 옅은 풀빵 굽는 냄새를 맡으며 삶의 질이란 이런 것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


며칠 전에 국화빵으로 첫 개시를 했다. 안에 든 팥앙금이 비칠 정도로 가득 차 있는 꽃 모양의 동그란 그것이 얼마나 맛있어 보이던지. 사실 몇 주 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정말 추운 날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진정한 미식가란, 식탐이 비집고 나오려 해도 최고의 맛을 느끼기 위해 참아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니까요.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읏추추..' 다니다가, 받자마자 입에 문 국화빵으로 올겨울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마트에 가니까 이제 삼립호빵도 전면에 진열되어 있다. 아주 어렸을 땐 붕어빵보다도 호빵으로 먼저 겨울이 왔음을 감지했던 것 같다. 엄마가 하얀색 호빵 4개가 들어가 있는 한 봉을 까서 찜기에 넣으면, 나는 땀 삐질삐질 흘리는 호빵을 찜기 뚜껑 사이로 요리조리 관찰했던 기억. 아기 궁둥이 같아 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해지는 호빵이 다 쪄지면 바닥에 흐물거리는 종이면을 조심조심 떼어내고 한 입 앙 물기도 하고, 얇은 빵피를 벗겨내서 포슬포슬한 빵 표면을 물기도 하고. (이거 저만 해 본 거 아니죠?)




127781_3092612_1763429666270458984.png 보글보글 추위에 떨며 집에 온 남편과 어묵탕,


02. 포장마차


꼬치어묵과 말랑말랑한 물떡 팍팍 넣은 어묵탕으로 퇴근한 남편을 극진히 맞이한 날. 포장마차 어묵꼬치란, 겨울이라고 해서 생각이 바로 나진 않아도 보이면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종이컵에 국물도 꼭 받아야 하고, 어묵은 자고로 좀 팅팅 불어있어야 한다. 포장마차는 이제 예전처럼 흔하지 않아 집에서라도 포장마차 느낌을 내려 버너를 꺼내고 끓였다.


물떡은 사실 꼬치에 가래떡 끼워 넣은 거라 그 자체는 특별한 메뉴는 아니지만, 원래 오래전에는 부산, 경남 지역에서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내 첫 물떡에 대한 기억도 부산 깡통시장이었는데, 어묵보다 더 맛있어서 그 자리에서 서서 몇 개를 갈아치웠었다지.


김치랑 가락국수까지 야무지게 세팅해 두고, 남은 국물로 김치가락국수를 만들었다. 후식으로 투다리 김치가락국수를 카피할 생각한 나, 진짜 너무 천재잖아 - 뿌듯함에 어깨도 한껏 올라간다. 투다리 김치가락국수는 예전에도 도전한 적이 있는데 그땐 실패했었다. 아무래도 가쓰오 국물이 핵심인 것 같다. 그냥 육수 내는 걸로는 흉내 낼 수 없음. 남은 어묵탕 국물에 다진 마늘, 참치액, 국간장 살짝씩만 넣고 김치 쫑쫑 썰어 가락국수면이랑 한 번에 투하해 주세요. 소주를 부르는 기가 막힌 맛입니다요.





127781_3092612_1763430944431173139.png 사진 속 스타벅스는 광교SK뷰레이크 41F점


03. 따뜻한 라테와 핫초코


카페 춘추전국시대인 요즘, 스타벅스는 맛으로 간다기보단 눈에 보여서 또는 기프티콘을 쓰러 가게 되는 곳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맘때쯤에는 꼭 크리스마스 신메뉴는 뭐가 나왔나 - 괜히 기웃거리게 된다. 이름부터 겨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윈터 스카치 바닐라 라테' 신메뉴를 주문해 마셨다. 바닐라 라테에 버터 스카치 특유의 풍미를 살짝 가미한 그런 음료다.


뷰 좋고 햇살 좋은 곳에서 당 충전까지 하니까 기분이 따-블로 좋아졌다. 카페를 고를 때 메뉴보단 공간에 머무르는 측면을 더 생각하는 편이라 이왕이면 같은 스타벅스여도 조금 더 좋은 매장을 가자 주의다. 그래서 집 앞 스타벅스를 내버려두고 굳이 굳이 차를 끌고 광교까지 왔답니다. 땅에 붙어 앞만 보고 다니는 게 일상이니, 종종 이렇게 고층에 시야도 트인 곳을 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른하고 따뜻한, 라테 같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최근에는 귀여운 월동 준비 아이템도 구매했다. 핫초코와 코코아밤! 담요 두르고 좋아하는 머그잔에 타 먹는 핫초코, 진짜 별거 아닌데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낭만적인 겨울의 장면이다. 코코아밤은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퐁당 떨어트려 먹는 건데, 노브랜드에서 귀여운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 나는 폴라베어로 골랐는데 이번에 새로 나온 신상이 펭귄이라고 하더이다. 내가 갔을 땐 펭귄이 없었는데.. 아무튼 펭귄이 아주 귀여우니까 또 구하러 가야지.




127781_3092612_1763433040393131249.png 더 맛있어질 일만 남았다니! 행복해라


04. 방어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친구들과 방어를 먹고 왔다. 그 유명하다는 강남 자매수산. 6년 전에 (이걸 기억하고 있다니) 또 다른 유명한 마포구의 방어 맛집 '바다회사랑'에서 방어와 첫 만남을 하고, 첫 입에 홀딱 반해버렸었다. 추울수록 방어는 더 맛있어진다는 사실이 참 요망 지다. 손끝, 귀끝, 끝이란 끝은 다 동상 걸릴 것처럼 시린 한겨울이 되면 "겨울도 좋아한다는 말 취소할게" 이런 말을 서슴없이 뱉게 된다. 그런데 그럴수록 방어 하나만큼은 더 맛있다니, 한 줄기의 빛 같은 존재랄까.


일단 예고편으로 먹고 왔으니 올해는 방어의 대미를 장식하러 어디로 나가볼까, 벌써 신이 난다. 12월에 다시 보자 방어야 -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영화를 꼽자면 너무나 유명한 <러브 액츄얼리>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양한 가족과 연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랑의 다양한 모양을 보여주면서 하나같이 다 사랑스럽다. 그다음으로 또 좋아하는 영화는 <세렌디피티>. 서사 자체는 굉장히 단순한데, 또 말이 안 되는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는 관용구가 있으니 겨우 고개를 끄덕이게 될 정도로 운명적인 이야기다. 이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참 좋아하는데, 영화 전반의 색감과 톤도 좋고 무엇보다 뉴욕의 크리스마스를 정말 예쁘게 담았다. 주인공 배우들도 너무 매력적이고. 그리고 영화명 자체가 발음부터 예뻐서 제가 좋아하는 영단어라 또 좋아하고.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뜻밖의 기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뜻밖의 기쁨 - 하니까 로또부터 생각나버리는데, 어쨌든 예상치 못한 행복, 그러니까 행운이라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힘 안 들이고 공짜로 얻은 것 같은 느낌이라 더 신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 다음 계절에서 좋아하는 것들이 저마다 꼭 하나씩은 있으니 그것부터 떠올리게 된다. 붕어빵 언제 개시하지, 좋아하는 니트 입어야지, 스키장 갈까, 뭐 이런 것들. 분류하자면 이런 것들은 예상 가능한 행복들이다. 작년에도 했고, 올해도 틀림없이 내가 하게 될 것들.


내 힘 밖의 세렌디피티를 언제나 두 손 모아 바라지만, 이렇게 매년 해도 질리지 않고 좋아하는 것들이 단단하게 자리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일상에서도 여전히 설렐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러니 내가 확실히 얻을 수 있는 행복들을 더 발견해서 그 가짓수를 늘려가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올겨울에 발견할 또 다른 겨울의 낭만과 맛을 기대하며. 겨울아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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