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우리 집 이야기
"집에서 행복을 느끼는 자가 바로 행복한 사람." 집을 주제로 한 어라운드의 잡지를 읽다 멈춰 섰던 서민범 교수님의 말이다. 자기 공간에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어디에서도 쉽게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에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가, 반론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다 이내 수긍하게 됐다. 밖에서 비바람이 불든, 눈보라가 치든, 나를 에워싼 사면의 벽 안에서 나는 자유롭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도 하루 종일 춤을 춰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으레 침대가 있어야 할 곳에 식탁이 있어도, 화장실에 씻는 것 그 이상의 역할을 부여해도 다 내 마음이다. 두 발 뻗고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는 이 공간에서조차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모른다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바깥세상에선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퇴사를 하면서 매달 따박따박 나오던 월급이 사라지고, 고마운 동시에 미안하게도 남편의 월급으로 2인 가구의 의식주를 모조리 해결하게 되었다. 이때다 싶었는지 동시에 집값은 연일 오르면서 우리가 꿈에 그리던 집은 더 멀리, 더 빨리 달아나는 중이다. 가지기 어렵다면 더 갖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본능일까. 부동산 뉴스를 보면서 나는 점점 더 욕망하게 됐다. 서울에 있는 집. 집인지 호텔일지 모를 온갖 시설을 갖춘 신축 중의 신축.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가면 한강공원이 나오는 그런 집. "왜 꼭 그런 집에 살고 싶어?"라는 질문에 답할 뾰족한 대답은 없다. 그저 흔히 다들 선망하는 집이니까, 집 주소를 알려줄 때 으쓱할 수 있으니까. 한강 야경이 거실에서 보이는 집은 보통 성공의 징표 아닌가? 그러니까 꼭 그런 집이어야만 내가 원하는 어떤 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는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유는 없었다.
모호한 꿈을 좇는 나와 달리 머릿속으로 그린 구체적인 일상을 집구석구석에 새겨놓은 사람들이 있다. 아침에 느긋하게 마시는 커피가 자신의 가장 큰 행복이라 채광 좋고 옆집이 가로막지 않는 탁 트인 풍경에 테라스가 있는 곳을 고집했다는 젊은 부부. 지하철역이랑 너무 멀지 않나? 마트도 주변에 없는 것 같은데. 겨울에 눈 왔다가 얼기라도 하면 저 언덕을 어떻게 걷지. 혹시 모르니까 병원도 가까워야 하지 않나. 집 소개 영상을 보는 내내 주변 인프라부터 생각하고 계산기를 뚜들기는 나를 보고 웃는 듯 부부는 "불편한 점도 있지만 저희는 이런 걸 누려야 행복한 사람들이어서요" 말했다. 책이 좋아 책이 그나마 변질되지 않는 북향집을 고집했다는 사람도 있다. 춥고 건조하지 않나- 또 살며시 고개 드는 오지랖에 "책을 좋아해서 집에 책이 좀 많아요. 그런 저에겐 딱 맞는 집이죠"라고 응수한다. 집은 남향이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공식에 같은 동 같은 층이라도 남향집에는 프리미엄이 붙기 마련이다. 그런 남향을 마다하고 북향집을 택하다니. 그것도 책을 끔찍이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동떨어진 낭만적인 소설을 읽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그런 고집이 생기기까지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얼마나 단단하게 쌓아 올리고 정립했을지 생각한다. 다른 모든 편리함을 제쳐둘 정도로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몇 가지를 남기기 위해 얼마나 일상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나라는 인간을 탐구했을까.
요즘 SNS에 집 관련 계정이 많이 보인다. 독립 후 내 손으로 꾸려나갈 공간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집과 인테리어에 가지게 된 내 관심사를 기가 막히게 반영한 알고리즘 덕이겠다. 알뜰살뜰하게 공간 활용을 한 18평 신혼집 룸투어부터 가구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예사롭지 않은 대형 평수의 집까지. 집 진짜 예쁘네, 얼마 들었을까, 생각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휙휙 스크롤하면 불현듯 엄습하는 기시감. 아까 그 집인가? 이 집이 저 집 같고, 소위 '감성' 있는 집이라면 있어야 할 소품 체크리스트라도 공유하는 듯 비슷한 물건이 여기에도 저기에도 보인다. 신기한 우연으로 내 취향과 딱 맞아떨어진 건지, 아니면 이런 톤과 분위기가 눈에 너무 익어버려서 좋아한다고 느끼는 건지 이제는 모르겠다. 예전에는 미드센츄리 어쩌고가 유행이라더니, 지금은 또 클래식 어쩌고가 유행이란다.
그래서 몇 년 후 거실에서 한강이 보이는 넓은 아파트에서, 그때 유행하는 풍으로 잔뜩 집을 발라놓으면 나는 그 집에서 정말로 행복할까? 네-! 즉답이 나올 정도로 부내가 폴폴 나는 행복이다. SNS에 올릴 우리 집의 주요 포인트들을 찍고 나서 뿌듯하게 잠에 들겠지. 우리 해냈어, 우리 드디어 도착했어. 그 집에선 슬픈 일이 있어도 그렇게 슬플 것 같지 않은 기분. 인터넷에 떠도는 '샤넬백 바닥에 내팽개치면서 엉엉 울고 싶다'는 농담처럼. 그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갈 때면 성공의 맛을 야무지게 다실테니 아침에 꼬박꼬박 챙겨 먹던 영양제도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하루 이틀, 아니지 그 정도면 한 달 이상은 취해있을 것 같다. 쓰면서 자꾸 손이 먼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있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달콤한 꿈인가 보다. 다시 정신 차려. 그 이후엔? 나는 어떤 공간을 꾸리고 싶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해야 행복한 사람인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채 도착한 그곳은 장기투숙하는 호텔처럼 체크아웃하는 날까지 낯가리고 어색한 공간이지 않을까.
코로나 이후였나 갑자기 등산 유행이 시작된 적이 있다. 산 정상에서는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산을 내려오면 있는 두부집, 전골집 같은 등산맛집들에는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들만큼이나 젊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었다. 당시에 유행이라 하니까, 마침 날씨도 선선한 가을이니까, 건강에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것도 없으니까 어영부영 따라갔었던 기억이 난다. 평소 체력은 산을 오르기 적합할 리가 만무하고, 온 김에 정상 등반은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헉헉 헥헥 땅만 보고 올랐다. 그렇게 도착한 산 정상은.. 산 정상이었다. 말 그대로 산의 꼭대기. 탁 트인 풍경과 땀을 식히는 바람은 좋은데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바위 위에 멀뚱히 서있었다. "이러고 그냥 내려가는 거야? 끝이야?" 첫 등산의 기억은 오로지 정상 등반만을 위해 걸었으니 그 매력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운동했다, 딱 그 정도의 상쾌함만 남았었다. 이후로 몇 번의 시도 끝에 깨달았다.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얘기하는 걸 좋아하네, 중간중간에 있는 노점에도 꼭 들러서 먹어주는 걸 좋아하네. 마른 멸치에 고추장 조합이 이렇게 맛있었나. 정상에 도착했을 때 산마다 다른 풍경도 좋다. 나중에 민둥산이랑 간월재는 꼭 가줘야지. 억새 시즌에 완만한 경사로 오르면 정말 예쁘겠다. 이런 생각은 몇 번의 경험 끝에야 얻어지는 것이었다. 남편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언젠가 나와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는 건데, 만약 등산의 매력을 전혀 몰랐을 때 갔다면 얼마나 억울했을지 아찔하다.
지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는 집에서, 슬리퍼를 끌고 나갈 수 있는 동네 활동 반경 안에서 내가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야 한다. 동네 뒷산 같은 지금의 집에서도 나만의 행복을 꾸려나가야 웅장한 백록담 같은 미래의 집에 도착해서도 행복할 수 있겠지. 고백하건대 지금까지 집은 내 공간이라는 애정 외에는 그다지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깨끗하고 편하면 장땡. 즐거움은 바깥에나 있는 것이었다. 회사를 다닐 땐 주말마다 남이 해 주는 맛있는 밥, 남이 지극정성으로 꾸민 공간, 늘 새로운 곳을 다니며 만족을 얻고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익숙한 집에서는 소파에 벌렁 누워 티비를 보다 밤이 되면 잠들었다.
"잠자리가 편하고 먹을 것이 많아요!" 무슨 호텔 후기 같은 설명 이상으로 나는 집에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게 될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한해진 올해. 집에서도 할 게 무궁무진하다는 사람,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저의 일상 브이로그는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구독은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