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구운 빵이야 뭔들 안 맛있겠냐마는, 그중에서도 방금 구워 나온 식빵과 페이스트리빵을 꼽고 싶다. 갓 구운 식빵은 이따금씩 먹는 용이 아닌 순전히 즐거움을 위한 용도로 마음껏 만지고 찔러보고 주무르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쭉 손으로 반을 가르면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그 산뜻하고 쿰쿰한 냄새가 훅 퍼지는데, 버터가 많이 들어간 식빵일수록 은은한 버터향까지 올라와 코를 박고 싶게끔 만든다. 촉촉한 식빵과 반대로 콰작콰작한 페이스트리는 또 다른 매력이다. 바삭함이 가장 최상의 상태인 오븐에서 막 나온 때. 크루아상은 말할 것도 없고, 에그타르트도 단단한 타르트 느낌의 홍콩식 에그타르트보다 한 입 베어물 때 파사삭- 소리가 나는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가 좋다. 마찬가지로 손으로, 한 겹씩 조심조심 떼어 야금야금 먹는 것이 페이스트리빵만의 매력. 얇은 겹을 한 장 떼고 나면 아직 일일이 세기도 어렵게 많은 겹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물론 그렇게 한 장 두 장 먹다 보면 금방 바닥이 보이게 되지만.
유치원 때 소방관 아저씨들이 왔던 날이 기억난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굵고 무거운 지렁이 같은 소화전 호스 양 옆으로 호스와 크게 덩치 차이가 나지 않는 작은 아이들이 따닥따닥 붙어 서있던 모습. 아마도 불이 났을 때 소방관 아저씨들이 이렇게 불을 끈다는 걸 배우는 체험이었겠지만 아이들은 때아닌 물놀이에 신이 났었다. "내일은 다들 집에 있는 수영복 챙겨 오는 거예요" 전날 말씀해 주신 선생님의 말에 더욱이나 특별한 물놀이 날로 기대하고 있었겠지. 또래보다 늘 키가 컸던 나였지만 그날은 키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를 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알록달록 형형색색 앙증맞은 수영복을 입고 깔깔 거리는 아이들 사이에 혼자 우두커니 반팔 반바지를 입고 서 있는 애가 바로 나였으니까. 눈에 띄고 싶지 않아 옷 색도 검은색 비슷한 네이비 색으로 입고 갔지만 애석하게도 TPO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자가 언제나 가장 튀어 보이는 법. 요란한 수영복이 다수였던 그날 나는 묻히기는커녕 가장 돋보이는 아이가 됐다.
수영복을 입기 싫었다. 삼각은 속옷으로나 입는 거지 또래 친구들 앞에서 삼각 수영복을 입고 싶진 않았다. 당시엔 수영복 디자인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아서 유치원 아이에게 삼각 수영복가 유일한 선택지였다. 엉밑살이 삐죽 나오고 몸의 윤곽이 다 드러나게 딱 붙는 수영복은 정말이지 싫었다.
"그 어린애가 뭘 그런 걸 부끄러워했어? 대체 누가 본다고.. 너도 참 별났었어." 그때 찍힌 사진을 보면서 엄마는 두고두고 말했다. 고집은 또 어찌나 센지 엄마는 나를 혼내도 보고 타일러도 봤지만 수영복을 거부하는 나를 설득할 순 없었다. 나는 수줍음인지 부끄러움인지 수치심인지 아무튼 그런 남들 앞에서 드는 멋쩍은 감정이 어렸을 때부터 많았다. 그땐 모두가 항상 나를 주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학예회 무대에서도 혼자 겸언쩍게 몸을 베베 꽜다. 관객이라곤 저마다 자기 아이 찾기에 여념이 없는 학부모들뿐이었는데. 어린아이에게 이런 말을 붙이는 게 조금 너무한가 싶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흔히들 말하는 '자의식 과잉' 상태였던 것 같다.
며칠 전 유튜브를 보다가 민음사 채널에서 마침 자의식이라는 주제를 다룬 1시간짜리 독서클럽 영상을 봤다. 김민경 편집자는 자신이야말로 자의식 과잉에 시달리고 있어 너무 힘들다고 유쾌하게 고백했다. "너무 사랑받고 싶어요, 너무 관심받고 싶어요" "근데 그걸 또 솔직하게 말하는 게 민경님의 장점 같아요" "그것까지 솔직하게 말한 나까지 멋있어서 하는 거예요" ".. 페이스트리죠 겹겹이"
'페이스트리'. 갑자기 나온 그 맛있는 단어에 저항 없이 터졌다. 한 겹을 떼면 또 한 겹이, 또 있지롱 놀리는 것 같은 페이스트리. 갑자기 버터향이 훅 나는 것 같아 킁킁거리다가 그 의미가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메모장에 얼른 적었다. '페이스트리 같은 인간'.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듯한 인간. 사랑에 물불 가리지 않는 나. 그런 내가 너무 무모하고 멋진 나. 상처받을 것이 뻔해도 몸을 던지는 나. "상처 안 받는 건 상처 안 받을만한 일만 선택해서 그런 거지. 넌 용기 낸 거잖아" 위로하는 친구의 카톡을 캡처하고 두고두고 음미하는 나. 그렇지, 하면서 내가 너무 가련하고 낭만적인 나. 눈물 흘리는 나. 그러다 우는 날 거울로 보면서 갑자기 이거 지금 찍으면 진짜 연기대상급 메서드 연기인데-생각하는 나. 슬픔에 푹 젖는 나. 푹 젖었다가도 반드시 극복해 낼 거라고 다짐하는 나. 섣부르게 그때의 나를 상상하며 '그래 살면서 이런 시기도 겪어야 다채로운 삶이지' 생각하는 나. 내가 만들고 내가 주연인 이 드라마에 완전히 과몰입해버린 나. 이 정도면 자의식 과잉 중증이다. 중증을 쿨하게 인정하고 이렇게 글까지 쓰는 나. "끝이 없는 진자운동 같은 이 상태를 히스테리라고 명명해요." 이런 나의 쿨함에 한껏 도취됐다가 히스테리라는 단어를 들으니 순간 마뜩잖다. 이렇게 멋지게 꼬여있는 나를 표현하는 단어로는 조금 공격적인걸. 티슈브레드보다도 더 겹겹이 쌓인 이런 미친 페이스트리 인간.
어쩌면 이 중증은 평생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이란 동물 자체가 남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 동물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그 사람과 함께할 때의 내가 마음에 들어서, 그 사람이 사랑해 주는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남에게 투영된 내가 너무 어여뻐서 사랑한다. 비슷한 결핍을 가진 사람을 사랑할 때면 내가 나의 약한 면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아서 좋고, 결핍을 채워주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완전해지는 듯한 기분 때문에 좋다. 사랑할 때도 나나나. 그러니까 인간이 자신을 완전히 떼놓고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평생 동안 이루지 못할 수도 있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 몸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이 몸을 벗어날 수가 없다. 언제나 1인칭으로 사는 것이다. 역지사지라는 좋은 말을 가슴에 새기고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 해도 결국은 슬금슬금 다시 나로 돌아온다. 결국 자의식이라는 건 염증 수치처럼, 잘 관리하면 적정선을 유지하다가 또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오르기도 하는 것 아닐까. 몸에 안 좋을 만한 걸 최근에 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는 나에게 원래 염증이라는 건 이유 없이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고 무심하게 대답하는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결국 관리의 영역이지 완전히 뗄 수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종종 이 모든 것이 트루먼쇼가 아닐까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절묘해서 마치 짜인 각본 같을 때, 복선이었나 싶은 과거의 기억이 떠오를 때, 여기에서 벌어진 일이 갑자기 저기에서 해결될 때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며 경계한다. 이 사람들 아까 내가 집에서 혼자 코 판 것까지 다 본 거 아냐? 조금 더 허리를 곧추세우고 걷는다. 배우님 지금 지나가십니다. 바삭바삭 갓 구운 페이스트리라는 단어가 아무래도 퍽 마음에 든다. '이런 양파 같은 여자, 멋진 걸'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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