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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왓피 Jun 01. 2021

02. 드라마와는 다른 현실판 산부인과 체험기

나는 건강한 편이라 사실 35세 이후에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회사 정기검진을 빼면 산부인과를 찾은 건 처음이다.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 뭐 이리 처음이 많은지..


임신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한 후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처음 한일은 동네에 산부인과를 찾는 일이었다. 검색의 달인인 신랑을 시켜 맘 카페에서 추천하는 가까운 산부인과를 찾아냈다.


신랑을 대동하고 검색한 산부인과로 갔다. 접수를 하는데, 어떤 일로 오셨냐고 물었다.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했는데 임신으로 보여서 확인차 방문했다고 말했다. 저희 병원 처음이신가요?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생각하고 오신 선생님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차차.. 병원만 정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도 추천받아왔어야 하는 거구나. 그러고 나서 보니 산부인과에 10명도 넘는 선생님이 계셨다. 오랜 시간 기다리는 게 싫어, ‘대기가 많지 않은 선생님 중에 여자 선생님으로 아무 선생님 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나는 늘 선택에 기로에 섰을 때 이런 식이다. 적당히 큰 카테고리를 결정한 다음부터 세밀한 선택이 필요한 부분은 대충 한다. 대게는 이런 식의 선택이 나쁜 방향인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부분이 앞으로의 나의 출산과 육아방식에서도 크게 달라지진 않으리라. ‘복세편살’이란 말처럼 이 넓고 넓은 복잡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산부인과 선생님을 맞닥드렸으나 이번 현실은 대충이 조금 안 먹혔나 보다.


임신과 관련된 내가 아는 상식의 대부분은 드라마를 통해  얻은 것이었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드라마에서는 ‘우욱’하는 장면이 나오면 임신을 의심한다. 다음 장면은 임테기의 두줄을 확인한다. 그런 다음 병원에 찾아가면 배 위에 초음파를 하면서 선생님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축하합니다. 임신 5주 차입니다’라는 말로 드라마 속 여주를 슬프게 하거나 기쁘게 한다.


나 역시 이런 시나리오를 기대하며 병원에 찾아갔지만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선생님을 마주하였는데, 임신 여부를 확인하러 왔다고 했더니 안쪽에 들어가셔서 속옷을 다 벗고 치마로 갈아입고 나오라는 것이었다. 이 나이에 산부인과 방문이 처음인 건 다른 사람 앞에서 맨몸으로 다리를 벌리고 앉아야 하는 사실이 싫어서인 이유가 가장 크다. ‘드라마에서는 질초음파가 아닌 배 초음파로 확인하던데.. 아니었어?’ 라는 생각을 하며 부끄러운 질 초음파 검사를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의 대충의 선택지에 여자 선생님으로 진료예약을 부탁한 사실이었다.


질초음파로 자궁을 둘러본 선생님의 반응 역시 드라마와는 달랐다. ‘아직 아기집은 없네요.’ 그 말인즉슨 임신이 아니란거다. 실망한 마음을 속으로 챙기고 나서 옷을 다시 차려입은 후, 신랑과 같이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그 이후 선생님의 추궁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생리가 언제였는지? 마지막 관계가 언제였는지?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못하는 나를 선생님이 약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왜 임신이라고 생각했냐고 물었다.


내가 꼼꼼한 성격은 못돼서 그런 시시콜콜한 내용을 다 메모해두고 살지 않아 기억을 잘 못하긴하지만 저런 눈빛을 받아야 할 정도로 한심한 일인가? 대부분의 여자들이 다 나 같은 거 아닌가? 라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몰라 아침에 검사한 두줄 표시 임테기를 내밀면서 ‘이게 이렇게 나와서요! ‘라며 당당히 내밀었다. 그제야 선생님과 진지한 얘기가 가능해졌다.


처음 안 사실이지만 임신 초기에는 아기가 아니라 점이나 세포 수준이기에 배로 초음파를 해서 확인하기 어려워 한동안은 질 초음파로 임신상태를 확인한다고 한다.


또, 임테기로 확인하고 나서도 아기집이 바로 생기는 건 아니란다. 대부분은 임테기 사용 후, 일주일 정도 지나서 병원에 와야 아기집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임신의 주수는 아기집이 생긴 일을 1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 생리일을 기준으로 주수를 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 아기집을 보게 되면 5주 차가 되는 것이라 선생님이 그토록 나에게 마지막 생리 날짜를 추궁한 것이었다.


임신과 출산한 여자들이 주변에 그렇게 많은데 이런 상식적인 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우면서도 잘못된 시나리오를 각인시킨 건 드라마의 문제도 있는 게 아닌가 싶다는 어처구니 없는 원망을 해본다.  사실 내가 보는 멜로드라마가 다큐는 아니니 이런 사실까지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았겠지만... 쩝...

무지한 나를 탓하며 다음 주에 다시 오라는 선생님 말을 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빠 현실은 드라마랑은 많이 다르네’라고 웃으며, 설레발쳐서 다른 사람한테 말안하길 잘했다고 서로를 칭찬했다.


그래서 임신이었냐?

다행히 한주 지나 방문한 병원에서는 질초음파로 점처럼 찍힌 세포 덩어리 아기집을 발견하였다. 그후 드디아  ‘축하드려요. 임신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아기집이 찍힌 초음파 사진이 있는 산모수첩을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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