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오버 (Lay-over)
내게 비행하는 일은 돈을 벌어주는 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순간들이 많다.
누군가에겐 몇 달, 몇 년을 생각하고 돈을 모으고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탑승하는 공간을 나는 기계처럼 들어설 때면 그들의 눈빛만으로도 감사함을 상기하곤 한다.
비행을 하다 보면 동료들끼리 자주 하게 되는 질문 리스트들이 있다. “다음 비행은 어디로 가세요”, “며칠 쉬다가 오셨어요?” 등등 의 상투적이지만 처음 마주한 동지들끼리 차가운 얼음을 깨기에는 안성맞춤의 물음들이다.
그중에서 가끔 진지한 구석을 보여주는 동료를 마주할 때면 속으로 므흣한 미소를 띤다. 진중한 대화를 좋아하는 내게는 ‘옳지, 대화 재밌겠다’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진지한 구석을 내비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질문들이 있다.
바로 ‘비행하는 일, 계속하실 생각이에요?’ 식의 질문이다.
이 질문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곤 한다. 가령 원래는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 비행하며 고요함 속에서 느끼는 각자들의 생각을 엿보는 작업, 늘 같은 일을 반복하는 직업의 특성상 그 어떤 부가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질문이다.
승무원들에게 ‘레이오버(Lay-over) 간다’의 의미와 승객들의 ‘레이오버(Lay-over)한다 ‘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승무원의 경우에는 다른 나라로 비행을 가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 전까지의 휴식시간을 레이오버 간다라고 관행적으로 표현하고 승객들의 레이오버는 환승을 위해 잠시 거쳐가는 최종 목적지로의 가기 직전의 시간을 레이오버한다라고 표현한다.
승무원의 경우에 레이오버는 복귀를 위한 휴식이다. 나의 집으로, 세상 그 무엇보다 비싼 매트리스보다 편한 내 방구석 한편에 자리 잡은 침대로, 눈을 감고 손 뻗으면 모든 것이 붙잡히는 나의 공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이다.
승객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최종 목적지로 가기 전 체류하게 되는 임시 휴게소 같은 공간이다. 마치 명절날 귀향길로 가는 길에 들러서 그 지역의 특산품을 구경하고 맛보고 기름도 두둑이 채워가는 휴게소 같은 곳이다.
다시 돌아와 비행하는 일을 계속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솔직한 대답은 ‘제게 대답은 레이오버 같은 거예요’라고 추상적으로 말할 것 같다.
창의적인 무언가를 떠올릴 때, 내가 만든 영상, 글, 사진을 만들어내며 느꼈던 만족감을 생각하면 같은 일을 반복하는 나의 직업과 자아실현은 꼭 대치점에 머무르는 것 같다. 수학시간에 배웠던 역, 이, 대우의 개념과 비교하자면 명제가 참이면 대우도 참이다. 와같이 대치점인 대우에 머무르는 명제인 나의 일은 생각지 못한 창의성을 만들어주곤 한다.
예를 들자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다운타운(DTLA) 블루보틀 카페에서 나의 모습이다.
비행하는 일은 여러 나라의 수많은 도시를 레이오버(Lay-over)하며 느끼는 반복과 창의성이 뒤 섞인 만남의 장이다.
비행하는 일은 Lay-over 하듯 계속할 것이다. 당분간은.
복귀를 위해 가는 Lay-over가 될 수도
최종 목적지로 가기 위해 하는 Lay-over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은 직업으로서, 가끔은 승객으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