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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J YP Oct 24. 2020

영화 #아무도없다 이야기

숏리뷰, 스포 있습니다


영화 포스터


원래 이 영화에 대해 쓸 생각은 없었다. 깔끔하고 재미있게 잘 봤다 외에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근데 얼마 전 본 ‘언힌지드’가 영 찝찝해서 이와 비교할 영화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무도 없다는 표면적으로 봤을 때 인물에 대한 묘사에 신경을 덜 쓴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아주 건조하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에게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배경이 암시되고 뭐…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녀가 살기 위한 동기로 이어 붙일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외딴곳으로 홀로 그녀를 몰기 위한 기능적인 부분이다.


사이코패스도 ‘왜 살인마인가’ 같은걸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나쁜 놈이고 어차피 세계사에 존재하는 연쇄살인마가 한둘이 아닌데 왜 이 사람은 살인을 해야 했나 같은 이유를 붙일 여유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오로지 두 사람의 대결과 숨바꼭질로만 이루어져 있다. 아주 아슬아슬한 구조? 근데 이렇게 주변 인물을 싹 제거해 버리니까 결국 남는 건 하나다. 저 사람은 날 죽이려 하고 난 살아야 된다. 사실 동기라는 측면에서는 이것보다 완벽한 것이 나올 수 없다. 영화는 챕터 1, 2 식의 영화적 분절로만 쉼표를 찍어 주고 내용을 오로지 두 사람 간의 관계로만 거의 채워 놓았다.


그렇게 구성된 이 영화가 나에게 몰입감을 준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다. 그냥 잘 찍었다. (그래서 딱히 더 할 이야기가 없으니 이야기 안 하려고 했는데…) 일단 둘 다 고립된 산 안에서 그래도 말이 되게 행동한다. 그리고 포식자와 피식자의 처지를 암시하게 만드는 심플하면서도 콱 박히는 대사들이 있다. 두 사람의 대결을 실감 나게 만들기 충분하다. 


즉, 이런 부분은 이야기하고픈 주제를 떠나 일단 각본가가 두 사람 모두에게 이입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결로서 일단 페어플레이 범주 안에 넣는 것이다. 물론 결국엔 주인공이 이겨야 되니 막판에는 무리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대신 주인공 편에서 응원해준 대가로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준다 (마지막 결투 전에 일반적인 살인마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을 어떤 행동을 한다). 그러면 작가가 감정이입을 한 나의 편이라는 생각이 들고 영화가 끝나자 안도감이 든다.


사실 어떻게 이야기를 짜 냈지만 난 지금도 이 영화에 대해 좋았다는 이야기 외에는 할 말이 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언힌지드랑 비교 하기 위해 끌어들인 부분도 있으니 조금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 작가가 이야기를 짤 때 관객의 감정이입 대상을 고려하여 아부를 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전달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이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힌지드에서 각본가가 화자로 내세운 인물들이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온당한 화자인지, 그 영화의 구성이 이에 적합한 형태로 셋업 되었는지는 의심이 간다. 생명은 침범되서는 안 될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 영화가 그 무게에 걸맞은 이야기의 깊이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가치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영화적 동기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거기에 비하면 언힌지드에서 생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가치의 내용과 그 ‘활용방식’에 대한 마인드는 섬뜩하게 느껴진다.



<다섯글자 느낌>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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