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맨 #감쪽같은 그녀 (모두 스포일러 있습니다)
(2019년 SNS에 올린 글을 옮겨 싣습니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상물이 일년에 두자리수 정도는 나오는 것 같다. 영화판 <82년생 김지영>에서처럼 조연으로 등장하는 경우까지 합한다면 사실상 일년 내도록 경남 사투리를 스크린에서 들을 기회가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지금의 부산 경남 지역 특정세대의 이미지를 이끌어낸 <친구>같은 케이스도 있고 드라마 <골든타임>에서 시도된 것처럼 서울이 당연시되던 배경을 심플하게 치환한 것만으로 색다른 관점을 보여준 사례도 있었다. 나 역시 부산 로케 영상물을 접하고 있는 부산 사람으로서 적어도 2019년이 끝나가는 지금 시점에서는 부산이 배경인 영상물이면 일단 신기해서 좋다! 는 단계는 지난지 오래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익숙한 지역이 배경으로 사용되면 일단 뭐라도 더 파고들 여지가 생기니까 흥미를 먹고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이런 흥미가 꼭 영화를 평가하는데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앞 문단에서 짐작했겠지만, 사실 제목에 언급된 두 영화 모두 개인적으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싶지는 않은 작품들이다. 깔 거리야 생각 해 보면 많겠지만 여기서는 이 영화에서 표현된 부산이 현지인 입장에서 너무 얄팍하게 사용되었다는 공통점에서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마치 ‘언터쳐블’의 번안판 같지만 라이센싱 영화는 아니라는 <퍼펙트맨>에서 붓산은 ‘마 쏴라있네! 이기 제이에 도시 아이가!’ 소리가 나오는 쇼케이스 전시장이다. 감천마을 이후 부산의 시그니쳐로 떠오른 산동네에서 푸른바다와 대비되는 유릿빛 마천루, 한켠으로는 고요한 자연에 은둔하고 있는 초호화 빌라. 대충 내용은 이렇다. 붓산에서 태어나 스울가스 잘나가는 검사가 된 설경구는 ‘금의환향’ 하여 고향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지만 사고로 불구가 된다 한편 기업화되는 조폭 조진웅은 으리가 쏴라늠치는 직이는(!) 친구 진선규와 흉계를 꾸민다.
영화 초중반에 조진웅이 돈을 목적으로 설경구를 보좌해주는 장면중 포차에서 술을 먹는 신이 있다. 흔히들 보여주는 남자들의 회포 풀기… 그런데 카메라가 점점 뒤로 가더니 마린시티 아파트들이 전경에 들어오고 그 아파트들이 물에 비친 ‘믓진’장면을 연출하는데… 그러니까 이 영화에 사용된 붓산이 거진 이런 식이다. 조진웅이 설경구의 휠체어를 이끌고 레인보우빛 다리를 질주하는 장면은 작년에 완공된 부산항대교의 쇼케이스 같고 아니나다를까 조진웅의 꼴빠를 인증한 야구장 장면은 너무 민망해서 오글거림으로 부들대는 손을 꼭 쥐고 봐야 했다.
영화에서 붓산의 믓진 모습이 나오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도 예쁜 그림 모음에 불과하면 너무 티나가꼬 쪽팔린다 아이가. 두 사람이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감정의 전달이 중요한 영화인데 믓진붓산이 전면에 나와서 될 일이가? 게다가 영화는 할 이야기가 또 있다. 조진웅의 느무느무느무 (진짜 억수로 좋다는 말밖에 안나옴 영화보면) 좋은, 방언연기도 생각보다 잘해서 호감인 진선규와의 브로맨스 조폭 개과천선 이야기가 애매하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 각각으로 보면 기본적인 재미는 있다. 어쨌든 설경구가 ‘고마 내 직이뿌라’ 하는데 조진웅이 ‘아이다 니를 어케 직이노?’ 이런 대사를 주고받으면 기대되는 감정의 고조가 있지 않은가 (본지 몇 달되서 정확한 대사는 까묵음) 하지만 그런 장면에서도 믓진 부산이 튀어 나와 버린다면 글쎄 붓산 자랑은 그냥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테니 영화는 영화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잘 써주면 일단은 된거다. 그리고 이미 몇 년전에 선보인 <보안관>에서 그런 목표는 거의 완벽하게 달성되었었다. 역시나 화려한 마린시티와 광안리 풍경이 나오지만 거기선 그런 배경이 등장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보안관> 이라는 매우 우수한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쇼케이스 수준으로 부산을 활용한 <퍼펙트맨>은 부산 입장에서도 조진웅 입장에서도 (심지어 조진웅도 보안관의 주역이었으니!) 퇴보처럼 여겨졌다.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
<퍼펙트맨>에서 나타난 부산이 낮뜨거움의 연속이었다면 오늘 본 <감쪽 같은 여자>에서의 부산은 뻔하고 얄팍해서 시시한 느낌이었다. 시작부터 2000년의 부산이라는 로고를 박고 시작하는 이 이야기의 톤은 ‘도시화의 한켠에서 진행되는 빈민 이야기인데 옛날 정서를 주고 싶지만 시계를 너무 돌리면 주 관객층에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떨어지고 지역 특성을 주면 좀 더 옛날 이야기 같으니까 2000년의 부산으로 설정하자’는 그림이 투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끝도없이 산동네 샷을 펼치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일어났던 이야기의 실감이 이상할 정도로 결여되어 있었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일단 두가지 같은데 먼저 이 영화에서 사용된 방언 연기가 개인적으로 올해 본 영상물 중에서 최악이었다는 점을 들고 싶다. 딱봐도 경북쪽 억양을 쓰고 있는데 일단 주인공 아이와 할머니가 그런 어투를 쓰는 것은 이치에 맞다 아이는 경북 청송에서 왔다고 하고 할머니도 그쪽 출신이라고 하면 이해는 간다 근데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 어투가 그러면 그건 이상하지 않나? (그렇다는 것은 방언 연기 디렉팅은 받았다는 것 같은데…) 근데 또 어휘는 부산 경남쪽 어휘다 이 무슨 혼종인고?
두 번째는 영화의 근본적인 문제인데 영화는 아이와 할머니가 서로를 가족처럼 아끼는 이야기인데도 희한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 발전 과정을 드러내는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 처음부터 두 사람은 서로를 아끼게 되었다 치고 기계적으로 나열되는 에피소드들은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도구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부분은 두 사람중에서 좀 더 감정이입이 되어야 할 소녀를 관객이 좋아하는데 방해가 되는데 예를 들면 이 영화에서 소녀는 반 친구의 지갑을 도둑질한다. 윤리적으로 해선 안될 행동이고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동기와 그 과정에서 아이가 느낄 괴로움,어떻게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할머니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건지… 전개는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드러나는 동기는 그냥 ‘가난하고 돈이없어서’ 아홉 음절수준으로 건성으로 넘겨 버리고 문제 해결은 어떠한 본인의 심경변화와도 상관없는 짝사랑 남의 개입으로 끝나 버린다. 그럼 그냥 손버릇 나쁘고 영악한 꼬마에 불과한거다. 게다가 이 꼬마가 병원에서 벌인 짓은 그냥 변명의 여지가 없는 진상이고. 심지어 꼬마가 진짜로 드러내고 치유받아야 할 아픔은 어이없이 소모되버리는데 더 경악스러운 것은 그 부분을 대놓고 제목에 썼다는 점이다. (올해 한국 영화 제목 중 최대 미스터리)
그나마 마지막에 아이의 눈물에 슬픈 감정이 드는 것은 순전히 주인공 보정(…)과 나문희와의 연기 콜라보일 뿐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퍼펙트맨>에서 한 것 같은데 나문희가 ‘니 누꼬?’ 하는데 꼬마가 ‘할매요 내 손녀아잉교 왜 기억몬하는교 흑흑흑’ 뭐 이런 식이면 없던 감정도 치솟아 오르니까…
그래서 두 여성 연기자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진짜로 두 사람의 이야기에 파고들지 못한 것은 감독의 시선이 두사람을 보살피는 사회복지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회복지사는 영화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천우희씨가 연기한) 꼬마의 여자 담임선생님한테 들이대는 장면으로 비중을 잡아먹는데 감독의 페르소나 캐로 설정되어 그런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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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두 영화 다 기본적인 재미만 챙긴 영화고 부산을 배경으로 사용한 방식 또한 실망스럽게 여겨졌다. 뻔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단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고 그 배경에 부산이 도움이 되어야 좋은 의미로 남는다는 점이다. 부산 사람으로서 부산이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토양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보안관> 맨치만 해 바라 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