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리뷰, 내용 스포 없으나 전개 암시하며 다소간의 성적 묘사 있습니다
어떤 영화는 영화를 보는 과정 자체가 탐험처럼 느껴진다. 하이라이프는 오랜만에 그런 느낌을 준 영화다. 영화 극초반은 비약을 좀 하자면 우주 공간에서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영화는 예상치 못한 장르물로 방향을 틀고 거기서부터는 또 다른 장르적 재미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장르적 규칙을 따라가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다른 자극에 비중을 둔다. 그리고 영화 종반부에서 맞이하고 있는 주인공 들의 운명도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뜻밖으로 여겨졌다.
그러면 이건 다른 색깔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은 누더기일까? 그런데 영화가 툭툭 던져주는 키워드를 띄워 놓고 보다 보면 어떤 전개든 그럴싸하게 여기면서 따라가게 된다. 이런 인식은 과학적으로 여겨지는 디테일이나 연기 같은 부분에서도 느껴지지만 영상물로서의 만듦새, 즉 예상치 못한 전개를 어떤 방식으로 특히 어떤 ‘타이밍’에 던져주는가에서 관객을 끊임없이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 주효한 것 같다. 그래서 서두에 언급한 탐험이라는 키워드를 다시 꺼내고 싶다.
종합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난 이 영화의 흐름에 지배당했고 또 영화가 주는 떡밥의 여운이 있어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래도 청불 영화고 또 청불 영화 중에서도 수위가 높다 싶은 묘사들이 있어서 무조건 보시라고 우기기엔 자신이 없다. 예를 들자면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 격에 해당되는 박사는 근 몇 년간 내가 본 영화를 통틀어 가장 수위가 높은 변태 행각을 벌인다. (당연히 여기선 절대 말 안 할 거다 브런치 작가 잘리고 싶지는 않으니...) 다만 이러한 자극들도 선정적인 의도로 매도할 수는 없다. 앞 문장에 덧붙이자면, 그녀가 벌이는 변태 행위는 정작 지구에 있을 때 한 짓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기에 그녀 안에 맞닿아 있던 극과 극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장르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따라 존재하는 캐릭터는 작가의 의지와 상상력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리고 장르의 소모품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오히려 장르를 품은 우주 그 자체에 대한 존중도 있다. 끝없는 미지의 세계 한가운데에서 인간으로서 변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누구도 거기에 대한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영화가 별들 사이로 수놓은 선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