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J YP Feb 10. 2020

영화 #1917 이야기

롱리뷰, 스포일러 없습니다

영화 포스터

 오늘 뉴스는 오전 10시부터 진행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이 몇 개의 상을 받을 수 있을 지로 채워질 것 같다. 내심 최고 권위로 일컬어지는 ‘작품상’의 수상 가능성도 점쳐지는 가운데 현시점에서는 이 작품이 기생충의 ‘로열로드’를 막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취급되는 것 같다.


 두 병사가 전쟁터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1인칭 시점에 가까운 구도로 펼쳐내는 영화는 얼핏 ‘콜 오브 듀티’를 위시한 게임 플레이를 엿보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카메라는 게임 중계방송과는 다른 결을 간다. 1인칭 게임에서 유저의 시야는 철저히 게임 플레이 목적에 종속되어 있다. 캐릭터는 대개 유저의 아바타로서만 의미를 가지고.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 주변에 머무는 카메라는 관객과 주인공을 연결하는 매개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관객과 주인공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조절하는 쪽에 가깝다. 주인공을 내세워 화면을 가려 버리는 바람에 관객에게 보이는 정보를 제한한다 거나 이와는 반대로 관객에게 보이는 정보로부터 주인공을 소외시키기도 한다. 관객과 주인공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거리감은 와이드스크린의 넓은 화면을 통해 영화 내내 체감된다.


 그 거리감을 영화가 진행되면서 긴장감으로 달구어 주는 것이 바로 각본이다. 왼쪽으로 간다 싶으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간다 싶으면 왼쪽으로 찔러 버리는 얄미운 AI의 농간 같아 보이기도 하고. 스크린 속의 가냘픈 인간이 비집고 들어가기 버거운 촘촘한 장애물을 엮어 던지는 솜씨가 아크로바틱 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부분들을 통틀어 촬영과 각본의 ‘테크닉’만으로 인위적인 긴장감을 조장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도 보기에 이야기의 흐름이 인위적이라고 여겨진 부분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기술적인 수준이 높기에 사짜 같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내 기준에선 억울한 비판 같다. 중요한 것은 영화의 의도가 무엇인가, 그리고 영화가 선택한 테크닉이 일관성을 가지고 이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아닐까.


 사실 이 영화의 목적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선악으로 재단되지 않는데 깊이를 부여받았다기보다는 마치 불타는 나무나 성당 건물 같은 오브젝트와 동급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하긴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고민은 인간의 생기마저 느낄 겨를이 없는 원초적인 부분일 테니까. 그런 점에서 영화가 높은 수준에 다다른 기술적 완성도는 오롯이 두 시간 동안 인간의 몸으로 극한 상황을 해체 나가는 연속적인 상황을, 그에 따른 정서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 끝까지 부합한다. 이것은 기승전결을 따르는 이야기를 짓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고 그 성취 자체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하다.


 게다가 이런 높은 기술적 성취는 편견과 달리 영화가 진행될수록 주인공 일행에 대해 감정적으로 파고들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자비 없는 각본, 달리는 말과 우아한 발레를 오가는 빈틈없는 카메라 웍은 그 자체로 주인공을 가지고 노는 신의 시련 같은 느낌이 든다. 이야기의 급류에 러닝터임 내내 휩쓸리는 주인공을 바라보다 보면 마지막 단계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부디 주인공에게 평안이 주어지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것이 여타 전쟁 영화였다면 결말 30분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 뻔한 내용일지라도 말이다.


 그런 소망은 주인공이 가장 고통받는 순간마저도 카메라가 제공하는 시각적 자극에 매료되면서 함께 주어지는 죄책감이 원동력일 수도. 거의 마지막까지 인물과의 거리를 조절하는, 카메라가 조장해내는 교활해 보이기까지 한 이 공간에 감정을 채워 넣음으로써 주인공에게 닿기를 소망하게 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대단한 점은 이러한 관객의 진심을 어떤 타이밍에 터뜨릴지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영화의 모든 기술적 요소가 후반부 구간의 폭발에 맞춰서 재단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심지어 폭발시킨 감정이 휘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마저도 더욱 스크린 안으로 끌어당겨 흡수시킨다는 점에서 작정하고 만들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장면과 마지막 대사(?)도 따지고 보면 전쟁영화에서 수도 없이 반복된 것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하는 순간 울컥 치밀어 오른다.


 그러면 이 영화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중간에 이야기했듯 이 영화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체험 그 자체가 우선인 것 같다. 절대적 존재 앞에서 순수에 가깝게 드러난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는 순간. 그 순간을 위해 2시간짜리 신이 되고야 만 이 영화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여전히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선방하길 바라지만 이 영화가 설사 ‘작품상’을 탄다고 해도 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다섯글자 느낌>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

작가의 이전글 영화 #레드슈즈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