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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J YP Jun 26. 2020

영화 #에이브의쿠킹다이어리 이야기

롱리뷰, 내용 스포 없지만 영화 구성에 대한 언급 있습니다

영화 포스터



검은색과 흰색 사이의 회색. 두 음절로 마무리 지을 수 있지만 책의 모든 내용이 담긴 속지와 같다. 경험이 쌓일수록 아는 색깔은 많아지고 비슷비슷한 색깔을 떠올리며 명도나 채도에 집중하게 된다.


아직 모르는 색깔 투성이인 아이에게 갖가지 원색 물감을 가져다주면 어떤 그림을 그릴까. 에이브가 좋아하는 요리가 소재인 영화이지만 나는 그 소년이 자신에게 닥친 경험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 나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 에이브의 애쓰는 모습을 마냥 아재 혹은 아지매 입장에서 흐뭇~하게 팔짱 끼고 보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다. 주인공에게 닥친 생경한 팔레트는 웬만한 베테랑 어른들도 경험하지 못한 극단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을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에이브를 보면 일견 귀여우면서도 장한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도 그런 똘똘함이 지나쳐 혹시나 작가가 저 소년에게 치트키 가르키 준기 아이가? 싶은 데까지는 가지 않는다. 12살이라면 충분히 좋고 싫음과 옮고 그름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으니까 좋은 의미로 순수하지만 핵심을 생각하게 만드는 행동이 인상 깊었다.


이제 요리 이야기를 해 보자. 요리는 영화의 중요한 소재다. 제목에도 분량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 비중을 의심할 수 없다. 그리고 실제 스토리적으로도 요리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여닫는 자물쇠이자 열쇠이다. 또한 영화의 이야기 진행과는 별개로, ASMR로 통하는 자극의 많은 부분을 전달하면서 관객의 침샘을 고이게 만드는데 크나큰 공을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요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에이브는 요리를 하고 싶어 하고 그런 동기가 영화의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많은 동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에이브의 요리에 대한 고민은 이 이야기 속에서 에이브가 겪는 다른 큰 고민과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분리 시킨다. 따뜻한 교외와 힙한 갬성이 흘러넘치는 공유 주방의 대비되는 이미지처럼. 심지어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 요리는 그저 요리라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그렇다면 영화는 요리라는 소재가 지닌 매력을 배반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따뜻한 집에서건 템포를 뛰게 만드는 공유 주방에서건 요리는 에이브와 관객들을 즐겁게 만든다. 다만 영화는 우선순위를 확실히 할 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에이브의 요리가 아니라 에이브라는 것이다. 팔레트 비유를 다시 끌고 오자면, 요리는 에이브가 영화 속에서 당면한 다른 고민들처럼 매력적인 팔레트의 색깔로 존재한다.


그런 관념은 결말에서 에이브와 소재를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 꽉짜인 메시지로 맺어진다. 그 메시지는 문구만 보면 조금 뻔할 수 있지만 장하고 귀여운 에이브가 나름 애쓰며 그려낸 그림을 바라본 입장에서 안도감을 준다. 어떤 메시지인지 여기서 밝히지 않으려고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암시하는 문구까지는 막지 못했다.


12살 소년이기에 어린이니까~ 싶은 설탕 팍팍 애교도 넣을 법했을 것이다. 하지만 쉬워 보이는 길에 빠지지 않는 장인의 마음으로 끝까지 에이브를 주인공으로 존중해주는 감독의 뚝심이랄까 그런 단단함이 느껴진다. 심지어 더 ‘깊은’ 주제를 넣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건데… 예를 들자면 영화에서 요리하는 사람과 요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이 주제가 다뤄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뭔가 더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적당한 선에서 자제한 것처럼 보였다.


결과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연출의 내공과 이야기의 전개 모든 면에서 감독의 주인공에 대한 이해와 작품에 대한 통제가 빛나는 한편이라고 생각한다.


여담, 이야기를 끼워 넣을 타이밍을 못 잡아서 추가로 말하는데 작품이 에이브를 존중한다고 느낀 부분에 하나 더하자면 영화 속에서 그의 SNS를 다루는 방식을 꼽고 싶다. 많은 경우 SNS는 작가들의 치트키 혹은 증오(…)의 대상으로 이야기 전개의 ‘소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작가의 ‘사관’이랄까 그런 부분도 엿보게 되고. 하지만 여기서 SNS는 온전히 에이브가 누릴 수 있는 수단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영화 막판에 그가 SNS를 활용한 방식에 대해 참 그답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다섯글자 느낌>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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