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J YP Jul 13. 2020

영화 #로우 이야기

롱리뷰, 스포있으며 자극적인 묘사 있습니다 (청불영화)

영화 포스터


(2019년 개인 SNS에 작성한 리뷰를 옮겨서 올립니다)


CGV에서 딱히 걸어 놓을 아트하우스 신작 영화가 없을 경우(!)에는 특별 기획전 형식으로 주제를 잡아 이전 작품들의 재개봉으로 관을 채우는 것 같다. 이번 테마는 ADULT VACATION으로 앞에 CGV의 C자가 붙어 CAV라는 이름을 붙였다. 상영작들은 그 이름대로 대부분 청불이며 보고 나서 느낀 점이지만 대부분 왜 청불인지 알겠다 싶은, 여러모로 ‘쎈’ 작품들이다. 


오늘은 그 쎈 작품들 중에 하나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자극으로만 본다면야 나에게 있어 트라우마로 남을 ‘감각의 제국 무삭제판’이 단연코 으뜸이고 영화 제목이 가진 유명세로는 ‘양들의 침묵’, ‘오멘’ 같은 영화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을 떠나 지금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는 바로 ‘로우’라는 이름의 작품이다.


극단적인 채식주의자로서 엄격한 규율 아래 남편과 다녔던 수의대에 대를 이어 두 딸자식들까지 진학시킨 어머니. 그러나 이야기의 주인공인 둘째 딸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식인에 눈뜨게 된다. 채식에서 식인으로, 키워드만 보면 타락의 과정처럼 보이고 실제 주인공이 이러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고기 맛에 눈뜨는 과정은 이야기의 끝을 상상하는 긴장감을 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마주하는 감상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규율과 스트레스에 억압받는 환경에서 타고난 핏줄이 외치는 대로 욕망에 이끌리고 그러면서도 주저할 수밖에 없는, 그 떨리는 경계선을 위태롭게 오가는 여정 자체가 스릴을 준다. 


그런 기반 위에서 캐릭터가 벌이는 행동이 주는 자극은 배가 된다. 예를 들어 이 캐릭터는 영화 중반에 남자와 섹스를 하는데 섹스파트너를 레알로 ‘먹으려고’ 하다 보니 두 사람의 살갗이 부딪히는 상황임에도 어쨌든 로맨틱함이라던가 나른함 따위가 지배할 여지는 없는 것이다. 이런 자극은 빠른 움직임이 지배하는 장면에서만 돋보이는 것이 아니다. 사고로 언니의 손가락이 절단되고 ‘의사’로서 접합을 준비해야 하지만 욕망에 이끌려 잘린 손가락을 쪽 빠는 순간 띠용~ (원래 음식 가지고 이런 식으로 묘사하면 개그 분위기가 나오건만) 그 이후는 차마 겁나서 못 쓰겠다. 보던 나도 구역질을 했던 장면이라서.


그런 경계선 안에서도 전체적으로는 자신의 욕망이 향하는 쪽으로 몸을 기우는 주인공의 여정을 억압된 여성의 해방이라는 주제 아래에서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여성주의’를 더 많이 느꼈던 부분은 그녀와 언니와의 관계였다. 사람들로부터 터부시 될 수밖에 없는 기질을 타고난 자매가 서로 갈등을 겪다가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화해하는 이야기.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난 엘사와 안나가 생각났다. 물론 ‘식인 자매’ 이야기니까 그 영화와 비교하면 피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오겠지. 


주인공 자매가 다니는 수의대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잔혹동화 분위기의 좋은 배경이 되어 준다. 신입생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선배들로부터 자행되는 시뻘건 폭력은 이야기로서 사건의 동기도 되어 주지만 하얀 가운 위로 쏟아지는 핏물이라던가 시체 안치실 옆에서 벌이는 파티 같은, 경계선을 연상시키는 이미지 자체가 주는 힘도 강력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참 자극적인, 다만 극한으로 신체를 손상시키는 과정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그런 까발리는 구석이 돋보인다기보다는. 소재 자체가 가진 자극을 통해 관객을 손아귀에 쥐락펴락하는 공력이 대단한 영화다. 물론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허들은 높겠지만 혹시나 이 글을 본 후에 관심이 생긴다면(!) 이 영화를 ‘인상 깊게’ 본 나로서는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는 것이니 좋은 일이다.


여담으로 결말부분은 다소 생뚱맞게 여겨졌다. 왜인지 생각해 봤는데 이 영화의 후반부는 거의 식인 자매의 감정 교류가 주된 내용이고 결말 직전 장면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심지어 난 그 결말같아 보였던 장면에서 둘 다 좋은 쪽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지어졌다고 생각한다. 자신들만의 답을 찾은... 그런데 마지막에 아버지가 고백하는 장면을 보면, 딸 앞에 갑툭튀 한 후에 너도 니 어머니처럼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고 애 낳아서... 이런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사를 하며 영화를 끝내버린다. 이야기의 세계에서 이런 끼어들기는 좀 꼰대 같아 보이지  않나? (물론 이분이 현실 아빠라면 레알 존경받을만한 분이 맞다 자신을 먹으려고 하는 여자와 사랑만으로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며 잘?? 살아왔으니!)



<다섯글자 느낌>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  

작가의 이전글 영화 #너와파도를탈수있다면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