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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J YP Jul 06. 2020

영화 #왓칭 이야기

롱리뷰, 스포 있습니다

영화 포스터



왓칭이 대단한 영화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시간 때우기로는 제법 쏠쏠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있었다. 평범한 직장여성이 자신을 노리는 살인마와 벌이는 1:1 대결, 본인이 가진 지적 능력과 회사원으로서는 익숙할 지형의 활약을 영화 속에서 어떤 전개로 흘려보낼지 궁금했다. 하지만 나름 기대치를 조절하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좋은 인상은 받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기본도 제대로 못 한쪽에 가깝다.


이런 사태의 일등공신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각본이다. 윗 문단에 언급한 ‘지적 대결’ 이러단가 ‘지형을 활용한’ 부분은 손톱만큼도 없다. 일단 무대 자체가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고정이다. 또한 대결이라고 할 정도로 머리를 쓰는 모습은 전~~~ 혀 나오지 않는다. 그 시간을 때우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개성도 없는 주변 인물들을 한 명씩 데려와서 마치 아이템 쓰듯이 소모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모자란 나머지 장면들은 사이코패스의 잔혹함을 드러내거나 주인공의 수난을 강조하는 것으로 때운다. (써놓고 보니 잔인함을 과시하는 영화 같지만 그래 봐야 15세다)


그러니까 나쁜데 게으르기까지 한 각본이다. 대도시 한복판 업무지구에서 휴대폰이 불통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부터 그냥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잔다. 더 어이없는 것은 디테일을 무시하고 캐릭터 묘사도 극도로 대충대충이라 무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 이 각본이 뭔가를 이야기하고자 할 때이다. 엿보기 심리와 인터넷의 익명성에 대해 한 소리 하려는 것 같은데 이미 인터넷 범죄를 다룬 매체에서 수도 없이 경고한 부분이라 여기에 대해서 되짚어보고픈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게다가 감독 본인이 장기짝처럼 성의 없이 다룬 캐릭터들을 통해 나오는 메시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도 없고.


각본이 게으르니 연기로도 보여줄 수 있는 게 없다. 제일 문제는 사이코패스 역할을 맡은 청년인데 일단 보기에 선한 인상을 하고 있더라도 드러내야 하는 섬뜩함이 잘 안 느껴진다. 주인공에게 했어여~ 했어여~ 하는 말투도 좀… 집중에 방해가 된다. (구미 위쪽이 고향인 아는 행님이 말하실 때 이런 어미를 쓰셨다) 이게 감독의 의도를 잘 못 살린 건지 아니면 감독이 이 영화의 캐릭터나 이야기가 가진 진부함에 체념하고 ‘이게 b급의 맛이지!’ 같은 오기로 밀어붙인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쪽이던 감독의 방관이 없었으면 이렇게 붕 뜨는 사이코패스가 나올 수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조연 캐릭터들은 더 할 말이 없다. 주인공의 싹수없는 후배는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싹수없음’만을 연기한다. 그리고 틈만 나면 주인공에게 성희롱을 일삼는 상사는 거의 끝까지 ‘쓰레기’를 연기하는데 왜 거의라는 단서를 달았냐면 막판에 ‘메가 쓰레기’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건 주인공과 관객들에게 극한의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에 충실하다.


그래도 강예빈이 분한 주인공은 열심히 연기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직장 다니는 싱글맘의 애환’이라는, 그래도 보기에 정상적인 주제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주제가 온당한 결말을 맞았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일종의 마지노선 역할로, 한 명도 정나미가 안 가서 다 죽던 말던 수준으로까지 영화가 떨어지지는 않게 해 준다.


이렇게 보면 그냥 못 만든 영화 같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분투했다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은 카메라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와 배경으로 본 다면 한 시간 반 동안 관객에게 의미 있는 자극을 뽑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대충대충 설정, 반쯤 체념한 전개, 지하주차장에서 나올 생각을 못하는 배경, 허우적대는 연기…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순전히 이미지의 힘으로 긴장감 비슷한 것을 몇 부분에서는 뽑아낸다. 예를 들어 사이코패스가 처음으로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은 너무나도 귀여워 보이는 배우의 이미지에 했어여~ 하는 말투가 조금 우스꽝스러운 수준까지 가지만 아래쪽에서 살짝 떨림을 주는 카메라의 시점 처리가 그나마 주인공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을 전달해 주었던 것이다. 자동차 플래시가 기둥에 비치고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와중에 저기 오는 사람이 아군일까 적군일까 정체를 모르는 긴장감, 그리고 15세를 어떻게든 넘지 않으면서 잔혹함을 드러내거나 암시하는 부분들. 상기한 제약을 생각해 본다면 그래도 그 안에서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선까지는 뽑아내 준다. 대개는 잘 만든 영화는 전체적으로 좋고 반대는 전체적으로 나쁘게 마련인데 전체적으로 안 좋은 와중에도 영화 내 특정 요소가 눈에 띄었던 점이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그러나 카메라의 분투를 온전히 칭찬하기엔 미심쩍은 마음이 든다. 표면적으로 영화는 싱글맘인 주인공이 영화 속에서 당하는 성희롱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뜻언뜻 그녀의 몸을 비추는 카메라의 의심스러운 구도를 보면 딱히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시선도 영화 속 ‘개저씨’랑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의심이 든다.


결론을 말하자면 난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영화의 내용, 나아가 영화가 속한 장르에 대해 오만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 같은 사람보다야 영화에 대한 지식이 훨씬 많을 테니 자기가 맡은 이야기가 지닌 진부함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그것을 얕잡아 보고 즐긴다 해서 그 감상을 공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기 작품을 소모시켜 버린다면 그것은 진심이 담겨 있었을지 모를 제작진들, 그리고 극장에서 8000원의 만족을 기대했을 관객에게 비겁한 도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즐길 수 있는 진부함을 노린다면 진부함 이전에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먼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글자 느낌>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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