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베일리 와 #나만없어고양이 영화 두 편 (스포 있습니다)
(2019년 SNS에 올린 글을 옮겨 싣습니다)
난 애견인은 아니다. 애묘인도 아니다. 그래서 처음 두 영화의 설정을 봤을 때는 후자 쪽을 좀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디테일한 내용이 아니라 순전히 형식 때문이었다. 후자는 단편으로서 내 얄팍한 지식으로도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에서 주는 캐릭터 설정이 주는 짧은 재미를 받아들일 수 있을, 정확히는 개중에는 그런 작품도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치를 감안하고서라도 결과적으로는 전자의 패배였다.
일단 오늘 본 안녕 베일리 이야기부터, 여러 번의 환생을 통해 내 곁을 지켜 주는 강아지 이야기는 애견인들에게 로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감동의 대부분은 첫 번째 환생 후 주인을 찾아가서 인생을 보내는 과정에 거의 다 소진된다. 나머지는 여기에 대한 변주인데 당연히 동어반복이면 닳은 감동만 있을 거니까 인간 이야기로 물 타면서 뺑뺑이 돌리려는 티가 난다. 그런데 그 뺑뺑이도 딱히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단 외국인 배우가 태반인 할리우드 제작 영화인데도 놀라울 정도로 캐릭터를 그리는 태도에서 한국식 막장 드라마스러운 부분이 많다. 그나마 감정이입의 여지가 있었던 주인공마저도 강아지의 첫 번째 환생 이후에 성인이 된 이후로는 매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 '강아지가 있어 주었으면'! 싶은 절절함이 안 느껴진다. 참고로 한국인에게 인지도가 높은 가수 ‘헨리’가 거의 남주급 비중으로 나오는데 연기를 잘했는지 판단을 못하겠다. 나혼산 생각이 계속 나서…
게다가 강아지가 영화 속 주인공을 따르는 계기도 이상하다. ‘원래’의 주인인 할아버지가 다음 생애에는 손녀를 지켜주거라~ 해서 그랬다는데 (근데 환생 여러 번 했다믄스 와 그 할배 말에만 충성 충성 하노? 잘해줘서? 본견 입으로 그 할배 이후로도 잘해준 주인이 있었다카는데??) 그러면 시작부터 온전히 손녀와의 관계로 발아된 게 아니지 않은가? 심지어 영화의 마지막에는 이 견공이 몇 번의 생애를 통해 맺은 주인공과의 관계가 아닌 ‘원래의 주인’과 약속을 지켰다는 부분에 더욱 감동을(…) 받는 것 같다. 이와는 별도로 주인공에게도 해피엔딩을 주긴 해야 되니까 새로운 남자 친구에게 ‘사실은 이 강아지가 3번씩이나 환생하며 우리를 맺어줬어!’ 하며 서로 감동(?)받는 부분은 그냥 가관. 강아지가 환생할 때마다 모습과 성별이 바뀌는 부분도 나에겐 좀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뭐랄까… 존재 자체가 ‘강아지’를 초월한 어떤 것으로 느껴져서 모에한 모습이어야 할 강아지의 외면이 좀 껍데기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암컷일 때도 내레이션은 와 수컷 목소리 때 그대로 내보내는 거고?)
물론 이런 투덜거림은 내가 애견인이 아니기에 비롯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물과 인간의 교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감동을 준 영화와 비교했을 때 환생과 반려동물의 설정이 주는 포텐셜을 살리지 못한, 게으른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게 내 생각이다.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
나만 없어 고양이는 안녕 베일리보다는 평균적으로 훨씬 좋았다. 적어도 네 개의 단편 중 1개는 아주 괜찮았고 1개는 제법 괜찮았고 1개는 무난했고 한 개 정도가 별로였다.
첫 번째 단편은 고양이와 커플이라는 소재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이야기다. 보는 내내 '뻔해 뻔해' 생각을 계속했고. 그래도 이게 앞서 이야기 한 베일리보다 났다고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다. 단편이니까. 앞서 베일리 이야기를 하면서 얻은 감동을 첫 환생 때 거의 다 썼다고 했는데 딱 거기까지만 이야기를 하고 빠지는 느낌이다. 또한 형식면에서는 유일하게 고양이의 입장에서 내레이션이 나오는 단편이기도 했다. 이건 나에겐 좀 의외로 여겨졌다. 애묘인이라면 고양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런데 단편 네 개 중에 이쪽을 파고든 게 하나뿐이라니… 난 처음엔 이 단편의 고양이가 내가 알고 있는 고양이치곤 너무 ‘착하게’ 생각한다고 느꼈다. 계속 비교하게 되는 베일리는 오히려 내가 아는 강아지치곤 좀 ‘무례하게’ 생각한다고 느꼈고. 이쪽도 그런 부분 때문에 편하게만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기엔 무례한 쪽 보다는 착한 쪽이 더 나았다.
두 번째는 네 개 중에 제일 별로였다. 일단 반려동물로서 고양이의 비중이 없다. 화면에 별로 안 나오기도 하거니와 주인공의 서사에서 고양이와의 감정적 교류 자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수단으로만 여겨진다. 그러니 애묘인이라면 당연히 실망할 거고. 그런데 그 자리를 차지한 서사도 딱히 재미가 없다. 무엇보다도 군데군데 삽입되는 상상 장면이 최악인데 왜 정리 해고된 기러기 아빠가 달착륙 우주선 선원으로 비유되는지 의미도 모르겠고 생각하려면 생각할 수야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고 영상의 삽입 리듬도 나쁜데 세 번씩이나 등장하며 러닝타임만 잡아먹는다. 게다가 재미를 떠나 (물론 재미도 없음) 이 단편에서 섬뜩하게 여겨진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건 마지막에 정리하면서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세 번째는 가장 좋은 인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이유는 앞의 단편에 안 좋은 말을 한 것과 반대에 있다. 일단 고양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많이 나오고 서사 자체가 오로지 고양이를 위해 헌신하는 내용이니까 애묘인이라면 이미 하트 뿅뿅일지도. 심지어 상상 장면도 훨씬 나은데 처음 상상 장면이 나왔을 때 두 번째 단편에 질리도록 본 기억 때문에 또야? 싶기도 했지만 이쪽에선 등장 이유도 훨씬 이치에 맞고 또 후반부에 복선으로서 알차게 활용되니까 결과적으로 적절한 비중으로 아주 잘 쓴 케이스다. (장면 자체도 정말 예쁘고 귀엽게 나왔다) 주변 인물의 묘사도 사랑스럽다. 베일리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는 거의 막장 일일드라마에서 ‘지 애X도 아닌 X’ 소리를 들을 만한 ‘악녀’로 묘사되는데 이쪽의 주인공 부모 또한 딸아이가 고양이를 기르는 것에 반대한다는 점에선 같지만 그런 와중에도 딸을 생각하는 마음과 서툼이 공존하는 사랑스러운 인물로 그려졌다. 잠깐 나오는 주인공의 친구들까지도.
네 번째는 분위기면에서 다른 단편과는 좀 이질적이다. 주인공 남자에게 몇 가지 미스터리가 주어지고 그것을 풀어헤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 전달되는 주제도 (인간 기준으로는) 가장 깊이 있어 보인다.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후회에 직면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니까… 고양이의 비중은 낮은 편이지만 적어도 핵심적인 ‘수단’으로서는 기능한다. 일단 이야기 자체는 계속해서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예측하기 어렵지는 않지만 주인공이 고양이를 수단으로 인식하는 데에도 논리가 맞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면서 정서적으로도 자극이 되는 이야기다. 다만 고양이 단편 모음의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넣는 건 묘하게 고양이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특히 마지막 대사는. 이 단편의 마지막 대사는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이기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 순위를 매긴다면 3>1, 4>2 정도가 되겠다. 다만 영화의 주요 타깃층을 고려한다면 1>=4 정도로 정리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게 1,3은 여성이 주인공이고 2,4는 남성이 주인공이니 가족오락관으로 치면 남성팀 대패(...)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여성이 주인공인 에피소드 쪽이 남성이 주인공인 에피소드 쪽에 비해 고양이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일단 화면에 많이 나오고 취급도 좋고 고양이와의 감정교류가 서사의 메인이고. 4의 경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럭저럭 설명이 되지만 그래도 타겟층을 좀 배반한 느낌이다는 정도에서 그치는데 반해 2는 그 태도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단편 2의 주인공이 고양이를 생각하는 태도는 생명과의 감정교류 라기보다는 어딘가 ‘행운의 부적’ 같은 물건처럼 여긴달까… 우연히 주운 고양이를 맡았는데 어라? 실직상태에서 면접이 오네? 어라? 기러기 아빠였는데 와이프가 아들 데리고 다시 한국 온다고 하네? 글쎄… 이런 전개를 좋게 좋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기견 유기묘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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