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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J YP Jul 28. 2020

영화 에베레스트 이야기

롱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포스터


너무 심하다. 영화 시작한 지 오분만에 주인공이 에베레스트 산에서 무협지 액션을 벌일 때부터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장면은 시작에 불과했다. 영화는 거의 후반부까지 중국 산악인들의 열정과 노고에 대한 찬사를 이야기한다. 물론 위인을 헌신하는 이야기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찬사’만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지치는 거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사회주의 중국의 영웅이고 그를 따라 등반을 하는 수많은 후배들은 그들의 사회주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등반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위해 활용되어야 하는 존재로 설정돼 있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이 명제에 대해 단 한 번도 왜 혹은 고민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물론 이런 부분은 내가 중국 사람이 아니니까 더 박하게 평가하는 부분일 수 있다. 아마도 이 영화가 많이 벤치마킹했을 것 같은 ‘히말라야’도 외국 문화권 사람이 보면 한국 정서상 납득 가능한 부분에서도 의문을 품을 것 같다.


사실 영화가 진짜로 영화 속 주인공에 대한 헌사를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일단 영화의 내레이터 설정부터 핀트가 어긋났다. 영화의 내레이터는 주인공의 여자 친구인 기상학자인데 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면서 정작 본인은 영화의 거의 절반가량을 스크린에서 떨어져 있다. 그 절반 부분이 주인공의 시련과 성장을 이야기해 주어야 할 흐름이었는데 말이다. 


차라리 두 사람만의 러브스토리라고 보면 흐름이 납득 가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여전히 (A급은 아닌) 무협지스러운 감성이긴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나름 복선도 챙기면서 여운도 남겼다. 하지만 영화의 서브 러브라인을 담당하는 커플은 2020년 영화라기엔 너무나 순진맹충하게 들이박는 구성 때문에 도저히 진지하게 봐줄 수 없었다. 너무 어이없게 들이대니까 처음 눈 맞았을 때 효과음으로 ‘띠용~’ 같은 거라도 나올 줄 알았다.


전체적으로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펄펄 끓고 있다. 언제 가스불을 올렸는지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끓는 물 연기로 자욱해서 숨이 턱턱 막힌다. 친구들과의 반주 한잔을 도원결의로 만들어 버리고 체력 훈련은 무공 경연대회가 되었다. 그 와중에 곳곳에서 치고 나오는 국뽕 문구까지 듣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중국 사람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겠지만) 손발이 오그라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영화 절반까지는 진짜로 오그라드는 손을 싹싹 비비면서 봤었다. 어서 빨리 등반 해 버리고(?) 영화가 끝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래도 영화를 최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건 영화의 흐름이다. 적어도 영화는 관객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킬만한 ‘어떤’것을 죽죽 던져준다. 그게 몰입이나 좋은 감흥 같은 부분과는 떨어져 있고 그렇게 일관성 있는 흐름도 아닌 것 같다. 사실 좀 과하게 말하자면 그냥 손에 집히는 것은 아무거나 다 집어던지는 것 같다. 멜로, 액션, 국뽕 등등 적어도 하나의 감정선으로 질질 끌지는 않는다. 그래서 손을 싹싹 비비면서도 한편으로는 낄낄대는 재미(?)라도 챙기면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 등반 이후로는 이야기 자체의 힘도 생긴다. 일단 앞부분에서 바닥 근처까지 기대치를 내렸다 보니까 후반부 전개가 내 예상보다는 좋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면, 설정 상 주인공의 여자 친구가 기상학자니까 난 이 캐릭터의 역할이 단지 주인공에게 ‘예상보다 날씨가 나빠요 절대 올라가면 안돼요!!’ 한 마디 하는데 그칠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내 예상보다는 캐릭터를 더 활용하면서 나름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나간다.


또 영화 자체의 이야기도 ‘국뽕’보다는 더 보편적인 주제로 나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새하얀 눈이 지천으로 덮인 산과 몇 번째 반복되는지 모를 세컨드 스탭이라는 자막이 보일 때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점점 지쳐가는 등반대원들의 심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부분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볼만하다는 감상까지 나올 수 있겠다. 기대치를 낮췄다가(…) 그래도 마지막에 끌어올리는 흐름, 이야기를 진행시킬 때 ‘다 아는 이야기니까 요점만 짚고 시원한 액션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싶은 자기 객관화(?), 이러한 ‘합리적인’ 흐름에 너무 익숙해진다 싶으면 점프컷을 통해 간간히 의외성을 보여주는 성의까지.


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본다면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는 영화인가 하는 궁금증이 남는다. 주인공에게 산이 가지는 의미부터가 그렇다. 일단 주변 인물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어디까지나!) 국뽕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개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물론 그런 뉘앙스가 있다는 거지 영화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기 쉽게 잘 표현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봤을 때 주인공 서사로만 보면 다른 이야기는 몽땅 덤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적당한 타이밍에 관객을 자극시키면 되는 그런… 이런 묘한 배치 때문에 쿠키영상은 주인공 서사에 대한 면피 같아 보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영웅에 대한 찬미일 수도, 불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실패와 성공을 반복해 나가는 집단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아니면 중국 등반 역사의 위대함을 고취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다만 영화에는 그러한 주제들의 흔적만 남아 관객을 자극시키는 떡밥의 배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어디까지가 감독의 예술적 의도였는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업영화의 한계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모습만 이야기하자면, 오로지 잘 통제된 흐름으로만 이루어졌다고 느꼈다.



<다섯글자 느낌>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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