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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Dec 27. 2022

특별함 보다 평온함  

특별한 날들로 채워야 할 것 같은 연말. 평소보다 화려한 귀걸이를 하고 옷장에 고이 모셔두던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반짝이는 힐을 신은 채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홀짝이며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실제로 연말이면 한껏 차려입은 채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한 순수한 노력을 넘어 '이 날 만큼은 꼭 특별하고 행복한 하루여야 해'라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순간 조바심이 나서 그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경험을 자주 했다. 계획이 조금만 틀어져도 화가 났고 계획대로 모든 일정을 근사하게 마쳤더라도 허무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행복이란 존재를 일상에 허용할 수 없다는 듯 쫓기듯 살다가 어떤 하루만을 콕 집어 행복을 몰아 사 듯 추구한 것의 부작용이라고나 해야 할까.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은 스스로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지난주 크리스마스 당일.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집에서 편히 쉬기로 했음에도 막상 당일이 되니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번쩍번쩍 화려한 대형 쇼핑몰로 향했다. 예상대로 차는 막혔고, 평소보다 더 오래 걸려 도착한 그곳에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할 틈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없이 치다. 식당과 카페의 앉을자리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한참만에 겨우 찾아낸 테이블에 앉아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주문해 받은 햄버거를 쫓기 듯 먹었다. 정신이 혼미해져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차라리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했더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또 다른 크기의 즐거움을 탐내며 아쉬워했다. 웃지 않는 나 자신이 미워 화가 나다가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엔 아쉬움이 남아 동네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렀다.


늘 손님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는데 이 날은 유독 여유로웠다. 시끌벅적하던 대형 쇼핑몰의 분위기와 상반되어 더욱 고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는 모녀, 서로의 손을 잡고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어린 연인, 혼자서 여유를 즐기며 노트북으로 무언가에 열중한 몇몇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핫초코를 마셨다. 따듯하고 달았다. 한껏 찌푸려져 있던 미간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특별함과 행복함에 대한 강박을 갖고 있을 땐 얻지 못했던 편안한 즐거움을 느껴볼 수 있었다.


해마다 비슷한 경험들을 반복하게 되면서 기념일이나 연말을 어떤 방식으로 보냈을 때 가장 마음이 편안하고, 풍족한 행복을 누렸는가 생각해 본다. 화려하고 북적이는 공간에서 시끌벅적한 순간을 보냈을 때 보다 은은한 조명이 어울리는 조용한 공간에서 내 온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과 따듯한 음식을 즐기며 솔직한 대화를 나눌 때 가장 풍요로움을 느끼곤 했다. 혹은 집에서 따듯한 식사를 즐기고 동네 공원을 산책을 하며 돌아오는 길에 사 마시는 커피 한잔에 잔잔하게 입꼬리가 올라기도 하고. 진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선 우선 내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저 남들이 즐거워하는 방법을 따라 하려다가 되려 스트레스만 받았던 것이다.


특별하지 않더라도 평온한 나날들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며 남은 연말은 익숙한 일상 속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틈틈이 챙겨보며 조금씩 자주 웃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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