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취학 아동에 해당하는 친구의 딸이나 조카들을 보면 항상 곁에 토끼 인형 혹은 공룡인형 등을 품에 꼭 안고 있다. 바로 그 애들의 '애착 인형'인 셈이다. 귀여운 애가 귀여운 솜뭉치들을 껴안고 다니면 엄청난 귀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얘들은 귀엽기라도 하지. 좀처럼 귀엽지 않은 서른이 넘은 나에게도 이처럼 애착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내가 갖추지 못한 똑똑함을 극강으로 갖춘 스마트폰 이겠다.
나의 어린 시절, 내 곁엔 애착 인형 똘똘이가 있었다. 이 똘똘이는 모형 우유병과 함께 세트로 내 품에 안겼었는데 4~5살 정도였던 작은 나는 똘똘이의 배가 한껏 부르고 부르도록 그 모형 우유병을 똘똘이의 작은 입안에 쑤셔 넣어주며 사랑을 베풀었다. 잘못된 과한 사랑을 베풀기도 했는데 머리카락을 잘라주겠다며 가위로 머리카락을 듬성듬성 잘라 마치 토이스토리의 빅 베이비와 같은 형상을 만들어 놓거나(똘똘이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나지 않았다.) 화장을 해주겠다며 주황색 형광펜으로 눈두덩이를 칠해주고, 빨간 매직으로 입술을 발라주었다. 그렇게 나의 과한 사랑을 받아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똘똘이는 어느 순간 내 곁을 떠났다. 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이미 다른 곳으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에 똘똘이라는 존재가 사라진 것에 대해 큰 슬픔을 느끼진 못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아주 자연스러운 이별을 경험 한 셈이다.
똘똘이를 항상 품에 껴안고 다니던 아가였던 나는 아주 많이 자라 현재 진짜 화장품을 직접 내 얼굴에 바를 수 있게 되었고, 커피랑 술도 마실 줄 알며 화나면 가끔 욕도 씨부렁대는 어른이 되었다. 그런 어른이 된 현재의 내 품에는 '애착 인형' 대신 '애착 기기' 그러니까 '애착 스마트폰' 이 들려있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휴대폰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해 앞을 보지 않고 동시에 주위도 살피지 않는 이들을 많이 본다. 가끔 골목길에서 차가 튀어나와 위험한 상황을 겪었음에도 그들은 네모난 화면 속에 빠져 크게 개의치 않는다. 바쁜 출근길 지하철 속의 사람들 또한 모두 한 손에 네모난 기기를 쥐고 영화를 보거나, 뉴스를 보거나, SNS를 하는 등 무언갈 하고 있다. 오히려 휴대폰을 보지 않고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나 또한 항상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다닌다. 잠시 외출을 할 때 지갑은 챙기지 않더라도 휴대폰은 꼭 챙긴다. 그것으로 결제를 할 수도 있고, 계좌 이체도 할 수 있다. 사진 및 동영상도 고 퀄리티로 찍을 수 있으니 지갑보다 휴대폰을 챙기는 것이 더 이치에 맞겠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거나 양치를 할 때도 휴대폰은 꼭 챙겨가고 화면을 의미 없이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눈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곤 한다.
얼마 전 휴대폰을 교체했다. 이전 사용하던 기기를 3년 정도 쓴 상태였는데 기기 속도가 꽤 느려지고 사진 화질이 좋지 않아 졌다는 핑계를 삼아 최신 기기로 바꾸게 된 것이다. 휴대폰을 새로 개통한 시간은 저녁쯤이었고 새 기기에서 기존 사용하던 앱 등의 계정 로그인이 필요했는데 집에 있는 태블릿 PC에서 일부 인증이 필요했다. 퇴근 후 바로 기기를 바꾸러 방문했기에 배가 많이 고팠다. 가입 시 부가 서비스 등이 불필요하게 가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온갖 오감을 다 동원하여 휴대폰 판매원의 말에 집중하였더니 더 허기졌다. '일단 밥부터 먹고 집에 가서 새 휴대폰을 살피자.'라고 생각하며 새 기기의 전원을 그대로 꺼버려 가방에 넣었다.
그리곤 함께 휴대폰을 구매하러 간 남편 및 지인과 짬뽕을 먹으러 식당에 방문했다. 늘 손에 쥐어져 있던 휴대폰이 없으니 살짝 불안했지만 이내 적응했다. 휴대폰 속 시계를 보거나 SNS 속 피드들을 의미 없이 넘겨 보며 같이 있는 지인들과의 대화를 흘려듣는 적이 많았는데 이 날은 식사를 하는 지금이 몇 시인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음식의 맛과 남편과 지인의 대화에만 집중하며 느긋한 식사를 했다.
집에 도착해 기존 기기의 데이터들을 옮기는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내 할 일을 했다. 시간이 꽤 늦었기에 바로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양치를 할 때 늘 한 손에 휴대폰을 쥐고 인스타 그램이나, 블로그, 혹은 브런치 앱 등을 훑어보곤 했는데 이 날은 멍하니 양치를 하며 거울 속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눈두덩이 밑에 선명해진 다크서클이 보였고, 신경 쓰이는 일들에 인상을 자주 찌푸렸던지 미간 주름이 생긴 것이 눈에 보였다. 동시에 잔머리들이 그새 송송 자라나 앞머리를 앙증맞게 메꾸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고, 며칠 전 이마에 올라왔던 뾰루지가 쏙 들어가 깔끔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간 살피지 못했던 내 얼굴 속 미세한 변화들을 살필 수 있었다.
새 휴대폰 데이터 이동 및 인증 절차를 모두 마친 후 기능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카카오톡 테마를 바캉스 느낌으로 바꾸며 여행 못 가는 현실에 대리만족을 하기도 했고, 카메라 화질을 체크해 보겠다며 내 얼굴을 이리저리 찍어보곤 "아 화질이 너무 선명해서 모공이 다 보여!" 라며 낄낄 대기도 했다. 그렇게 휴대폰의 이 기능 저기능을 살피느라 네모난 세상에 빠지고 나니 벌써 1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상태였다. 잘 시간이 한참 지나버렸다. 휴대폰을 오래 본 여느 때처럼 정신이 혼미했다. 자기 전 휴대폰 화면을 오래 봐서인지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생물학적 나이로 어른인 나에게 휴대폰은 아이들의 애착 인형 같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항상 내 품에 끼고 있어야 하고 없으면 불안하다. 하지만 그 불안함은 대부분 형체 없고 불필요한 감정들이다. 동시에 휴대폰이 내 근처에 없을 때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내 행위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내 사람들과의 표정, 말투 등을 더 사려 깊게 살필 수 있다.
몇 년 전 여행지에서였다. 깜빡 잊고 휴대폰을 숙소에 두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도 길을 찾아야 할 일이 크게 없던 휴양지였기에 그 날 하루는 휴대폰과 떨어져 지냈다. 초반에는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불안했으나 이내 여행지 그 자체의 온도, 습도, 공기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냄새 등에 집중할 수 있었다. 휴대폰 속 담긴 사진보다 당시의 오감으로 느꼈던 감정이 더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다.
어린 시절 애착 인형 똘똘이와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것처럼 휴대폰 자체를 아예 멀리하기엔 현실상 어렵다. 휴대폰이 일상 속 필수품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 소통하는 수단으로 필요하기도 하고, 음악을 듣고, 사진 등을 촬영해야 한다. 당장 작성하고 있는 이 브런치만 해도 휴대폰을 통해 종종 수정 작업을 하거나 여러 글들을 접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녀석에게 모든 걸 의존하고 싶진 않다. 내가 스마트 폰처럼 똑똑하진 않지만 자립적인 인간임에는 틀림없으니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때, 자연을 느껴야 할 때, 나의 내 외면을 살피며 하루를 마무리할 때만큼은 휴대폰을 저 멀리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루 중 일부 시간을 휴대폰 속 방대한 정보를 접하며 쾌감과 단기적 안정감을 느끼는 것보다 현재의 나를 둘러싼 실체에 집중한다면 당장은 다소 불안할 지라도 장기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양치할 때 휴대폰 바라보지 않고 거울 속의 내 모습에 집중하기. 길을 걸을 때 휴대폰은 주머니 속에 넣고 주위 공기를 느끼고 하늘 바라보기. 취침 최소 1시간 전 휴대폰 화면이 아닌 종이 냄새 가득한 책 읽기. 이 소소한 태도들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에 의존하던 내 애착의 감정을 적당하게 조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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