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학원에 다녔다. 그곳에는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2학년 언니가 있었다. 같은 시간대 자주 마주치던 그 언니를 종종 응시했다. 의도치 않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당시의 내가 이상적으로 바라던 '미의 기준'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뽀얀 피부에 어깨까지 오는 검정 생머리, 걸음걸이마저 시원시원해 보이던 길고 가늘던 팔과 다리. 진한 눈썹과 맑고 커다란 눈동자. 학원 화장실 혹은 복도에서 그 언니를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찰랑대는 머릿결과 곧 TV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이목구비를 자꾸만 응시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건물 밖을 나서고 있었다. 그 언니가 내게 가만히 다가왔다. 살짝 짜증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같은 교복을 입고 있긴 했으나 외적인 아우라와 더불어 2학년을 표시하는 파란색 명찰 마크에 살짝 기가 죽었다.
"왜 자꾸 날 쳐다봐?"
아, 내가 너무 대놓고 쳐다봤나. 나름 눈치 채지 않을 정도로 흘깃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하얬으면 좋겠다', '저 언니는 아무거나 입어도 예쁘네' 라며 부러워했을 뿐이었는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공격적인 어투로 물어보니 억울했다.
"그냥. 예뻐서요."
억울하다는 표정을 담아 솔직한 이유를 말했다.
"아... 째려보는 줄 알고 오해했잖아. 어쨌든 예쁘다고 해줘서 고마워!"
그 예쁜 언니는, 그래서 자꾸 흘깃 바라보게 만들던 그 언니는 성격까지 쿨했다. 이후 종종 마주칠 때마다 서로 손인사를 하며 반가움을 표현하기도 하며 쌓였던 오해를 찬찬히 덜어갔다.
타인을 응시하는 눈빛을 쉽사리 거두지 않는 이들을 종종 마주친다. 상대가 불편해할 수 있음에도 빤한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단지 '예뻐서' 누군가를 여러 번 빤히 쳐다본 행동이 상대에게는 오해와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경험을 한 뒤 '나만의 시선 법'을 구체화했다. '모르는 타인을 향한 시선 최소 3초 안에 거두기'.
옷차림이 독특한 사람, 옷을 세련되게 입은 사람, 외모가 예쁘고 멋진 사람, 걸음걸이가 매력적인 사람, 사고 싶었던 가방을 든 사람, 신고 싶었던 운동화를 신은 사람 등. 자연스레 시선이 가게 되는 이들을 종종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응시하게 되는 그 눈빛을 상대가 느끼기 전인 최소 3초 안에는 거두기로 한 것이다.
타인을 지나치게 빤-히 쳐다보던 지인이 있었다. 걔가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는 이유는 다양했다. 말라서, 뚱뚱해서, 키가 너무 커서, 키가 너무 작아서, 걸음걸이가 웃겨서, 머리스타일이 이상해서 등. 빤히 쳐다보고 싶어서 이유를 만들어낸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동시에 본인 생각의 틀에 갇힌 주관적인 평가 멘트를 덧붙이곤 했다. 걔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원치 않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불편한 순간들로 다가왔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누군가를 지나치게 빤히 쳐다보던 걔를 툭 치며 "왜 그렇게 사람을 빤히 봐? 저 사람 입장에서 기분 나쁠 수 있잖아." 라며 참아왔던 불만을 터뜨렸다. "뭐 어때? 내 눈으로 내가 보고 싶은 거 본다는데 다른 사람들이 뭔 상관인데?" 이기적인 태도가 다분한 그 대답을 들은 것을 끝으로 걔와 멀어졌다. 본인의 이기심을 함부로 휘두르던 사람과 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내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는 자유. 물론 있다. 하지만 그 자유를 위해서 타인에게 불편한 감정을 던질 자격은 없다. 내 딴에는 긍정적인 사유로 상대를 빤히 쳐다봤다 할지라도 그 빤한 시선을 받는 상대는 신경이 쓰인다. 그 누구라도 자신을 지속적으로 응시하는 시선에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은행에 방문했다. 한 여성이 나를 위아래로 여러 번 노골적으로 훑었다. 곧 그 시선은 내가 입고 있는 '초록색 체크무늬 바지'에 꽂혔다. 간접적으로나마 날 훑는 시선의 원인이 '내가 입고 있는 바지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으나 곧 거둬질 것이라 생각한 시선이 몇 분간 거둬지지 않자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다. 다른 오해의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사랑스러운 아기와 젊은 엄마를 보았다. 환한 햇살이 드리우는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아기에게 잔잔하게 설명해주는 엄마의 모습과 조그마한 손으로 손뼉 치며 꺄르륵 웃는 아기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그들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잠시 뒤 아기는 칭얼대며 울기 시작했다. 칭얼대는 그 모습도 귀여워서 아기를 흘깃흘깃 쳐다보았는데 아기 엄마가 갑작스레 나를 바라보며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동시에 아기를 안으며 "울면 안 되지 떽!" 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저 아기가 귀여워서 바라본 것이었는데 그 시선이 꽤나 길어지다 보니 아기 엄마의 입장에선 '아기가 시끄러워서' 쳐다본다고 오해한 것이었다.
이처럼 최근에도 '빤한 시선이 주는 불편한 순간'들을 종종 겪은 뒤 '모르는 타인을 향한 시선 3초 안에 거두기' 규칙을 다시 맘 속에 되새겼다. 간혹 위급해 보이는 누군가를 '돕기 위한' 시선을 쉽게 거두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예외 상황을 제외하곤 타인을 노골적으로 빤히 응시하는 행위는 상대에게 심적인 부담과 더 나아가 불쾌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시선의 자유는 존중받아야지만 그 시선을 받는 대상이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 감정 또한 함께 존중받고 배려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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