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와 불호의 간격 좁히기
따듯한 기미가 보일 때
요즘 들어 김밥이 좋다. 이전에는 무조건 참치김밥만 먹었다면 요즘은 심심한 듯한 야채김밥이 종종 생각난다. 시금치, 단무지, 당근, 오이 등 야채들의 깔끔한 맛과 더불어 달짝지근한 밥알과 참기름을 바른 고소한 김의 조화로운 맛을 느낄 때면 기분이 좋다. 더불어 건강하게 잘 챙겨 먹었다는 자부심에 소화도 더 잘 되는 듯하다.
어릴 때는 김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초등학생 시절엔 소풍에 갈 때면 항상 김밥만 먹어야 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소풍 갈 딸을 위해 김밥을 통통하게 말은 후 숭덩숭덩 고른 크기로 잘라주던 엄마의 정성이 느껴져 도시락 통을 깨끗이 비웠으나, 사실 소풍날 점심의 주메뉴가 '김밥'이어야 하는 점은 늘 아쉬웠다. 지금은 고소한 맛에 자주 찾게 되는 김도 당시에는 질기게 느껴지기만 했을 뿐, 딱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던 맛은 아니었다. 점차 성장해나가면서 엄마표 김밥을 먹게 될 날이 거의 드물어진 지금, 가끔씩 그때의 김밥이 생각난다. 그래서 맛있는 김밥집을 발견해 낸 후에는 '어릴 때 소풍 가서 먹던 김밥 같다.'며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어릴 적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김밥이 현재의 내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음식이 된 셈이다.
살다 보니 음식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개인적 경험에 의해 '호' 혹은 '불호'의 유형을 나누곤 한다. 또 종종 바뀌기도 한다.
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전에는 무조건 허리까지 늘어뜨린 긴 머리카락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면, 현재는 깔끔한 단발머리 혹은 쇄골 정도의 기장의 깔끔한 헤어 스타일을 선호한다. 또한 과거에는 아주 또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인물의 외형에 감탄했다면, 현재는 전체적인 실루엣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더불어 자세가 바른 인물들의 외형에서 더욱 우아한 매력을 느끼곤 한다. 부츠컷 진은 촌스럽다며 스키니 진만 선호하던 내가 요즘 들어서는 종아리 알을 커버해주면서도 체형을 보정해주는 부츠컷 진을 주로 착용하기도 한다.
사람의 성향 측면에서 보자면, 어릴 땐 쿨하단 명목 하에 누구에게나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사람을 선망했다면, 현재는 그러한 이들이 자기의 감정에 충실하느라 무심하게 짓밟는 누군가의 희생들에 더 초점을 맞추다 보니, 말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어른의 자태를 갖춘 멋짐'을 느끼곤 한다.
나는 호불호(好不好)가 아주 강한 사람이다.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주위 인물들도 그렇다고 한다.
"얜 안 그럴 것 같은데 은근 똥고집이야."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거나 회사를 다닐 때, 내가 싫어하는 유형에 속하는 인물이라고 느껴지면 최대한 거리를 두며 배척했다. 예를 들면 무례한 질문을 아무 생각 없이 하거나, 본인의 망언을 인정하지 않거나 사과하지 않고 되려 상대방을 책망하는 이들이 대표적인데 이런 이들과는 여전히 가까이 지낼 의사가 없다.
하지만 불호 유형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못되지 않은' 유형들. 예를 들면 심히 무뚝뚝하고 센스 없거나, 반대로 오지랖이 넓어 종종 귀찮게 참견하는 이들. 또 남 생각만 하며 희생하느라 정작 본인을 챙기지 못하는 답답이들(특히 내가 아끼는 사람이 이런 성향이면 천불이 난다)은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자주 솟구쳐 오르다가도 어느 순간 자꾸 마음이 쓰이곤 한다. 내가 부정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이 이들에게 보여 더욱더 불호의 유형으로 구분해버린 채 거리를 두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꺼려하던 이러한 유형의 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때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감동을 선사해주곤 했다. 무뚝뚝한 성향의 속을 알 수 없던 이가 진심 어린 한마디로 가슴을 뜨겁게 울리기도 했고, 오지랖 성향을 가진 이가 누군가 당한 억울한 일에 발 벗고 나서 대신 싸워주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또 평소 바보같이 착해 답답하게 느껴지던 지인이 본인이 타야 할 열차를 계속 놓쳐가면서도 길을 물어보는 모르는 할머니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는 따듯한 희생을 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답답하거나, 귀찮게 군다고 생각한 이들의 모습 속에서 세상을 따듯하게 만드는 작은 희망들이 느껴졌다.
스스로의 호불호를 정확히 파악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걸러야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행위이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불호에 가까운 사람이더라도, 어느 한구석 따듯함을 지닌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이들에게만큼은 호와 불호의 경계선이 다소 모호하더라도 그 간격을 좁혀보려는 여유를 가져보고자 한다. 내게 불호로 느껴질 수 있는 상대의 성향이 누군가에게는 긍정적인 요소로 다가가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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