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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un 18. 2021

잔소리 복수

모녀간 애정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요

엄마는 잔소리가 과하지 않은 편이었다. 누군가 들었던 수많은 잔소리 폭탄 일화들을 듣다 보면 '아, 우리 엄마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춘기 시절 또 정서적으로 방황을 자주 하던 이십 대 시절엔 소소한 잔소리 조차 커다란 폭탄처럼 느껴져 짜증이 났다.


밤 낮이 뒤 바뀌어 새벽 늦게 잠들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까지 자고 있을 때 들려오던 "해가 중천이야! 밤 낮이 바뀌면 힘드니까 노력해서 바꾸려고 해 봐." 라던 말. 불평불만을 쏟아 낼 때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점만 보려고 노력해봐."  지혜로운 이치에 기반한 조언임에도 그 말을 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사람인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더 삐게 행동했다.


"빨래는 빨래통에 잘 담아둬라."

"이 병은 플라스틱이 아니고 유리지!"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며 나는 주로 잔소리를 듣는 입장이고, 엄마는 는 입장이었다.


"제발 잔소리 그만!!!!"

나의 짜증 가득한 외침과 더불어 "널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거야."라는 뻔하디 뻔한 멘트들을 주고받은 뒤 갈등의 상황들은 마무리되곤 했다.




결혼을 하고 독립적인 가정을 꾸려 나가면서 엄마에게 숱하게 들어오던 잔소리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몸소 깨닫는다. 밤 낮이 바뀐 불규칙한 생활은 쉽게 우울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해 주었기에 취침과 기상시간을 정해 놓은 채 패턴을 유지했더니 활력이 돋았다. 불행이 찾아오던 순간, 그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단 1%의 긍정적인 면이라도 떠올리려 하다 보니 어둠의 동굴 속에서 빠르게 빠져나올 방안을 찾아낼 수 있었다. 또 빨래는 종류별로 통에 나눠 두어야 덜 번거로웠고, 분리수거 또한 익숙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의 나는 엄마에게 엄청난 잔소리를 한다.


"엄마 허리를 쭉 피고 다녀야지!"

"나랑 같이 필라테스 다니는 것 어때? 코어 힘이 생겨야 허리가 펴질 것 같은데?"

"오늘 이 스트레칭했어? 어깨 펴지는 스트레칭 꼭 하라니까 왜 자꾸 안 하는 거야?"
"엄마 영양제 요즘 잘 챙겨 먹고 있어?" 등.

대부분 엄마의 건강을 향한 걱정이 반쯤 섞인 오지랖 넓은 말들이다. 작은 아이 었을 때 무릎을 다쳐 엉엉 울며 엄마 등에 업혔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의 엄마는 강하디 강한 원더 우먼 같은 여성이었는데 이젠 나보다 약하고 작아져가니 자꾸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아휴, 할게. 오늘도 산책은 했어."

나의 잔소리 폭탄에 엄마는 멋쩍게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잔소리를 그만 하라던 과거의 나를 잊은 것인지, 어릴 적 들어오던 잔소리들에 대한 복수인 것 인지. 나는 또 한 번 잔소리 폭탄을 던진다.


"걷는 것도 좋은데, 근력 운동을 조금씩이라도 해야 한다니까. 영양제도 꾸준히 먹고."

연속된 훈수에 짜증 날 법도 한데 엄마는 "딸이 제일 무섭네." 라며 전혀 무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잔소리도 애정이 있어야 한다'는 류의 말들을 이전에는 부정했다. 하지만 점차 약해져 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생기는 염려들이 자꾸만 입 밖으로 삐죽 빼죽 새어 나오며 잔소리로 변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보니 꽤 논리적이라는 말이라고 느낀다.


서로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관심과 무관심의 적당한 사이'를 지키는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사랑하는 딸이 보다 더 편리하고 쾌적한 기분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그녀의 다양한 잔소리들은 예민한 시기의 나를 종종 숨 막히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잔소리를 듣는 입장에서 하는 입장이 된 지금. 그 다양한 말들엔 나를 향한 애정이 득 담겨 있었음을 안다.




남과 비교하고, 깎아내리고, 상처 주는 잔소리는 독이다. 듣는 사람의 마음만 아프고, 하는 사람은 속 시원한 종류의 말들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이런 류의 잔소리들은 당장 멈춰야 한다.

하지만 백 마디 하고 싶더라도 듣는 상대가 괴로울 까 봐 핵심만 추려낸, 감정을 배제한 애정이 담긴 소소한 잔소리는 사랑하는 사이에 어느 정도 허용해주는 것이 어떨까. 물론 듣는 상대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멈추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말이다.


사랑담긴 엄마의 잔소리들을 듣고 자란 나는, 예전보다 더 자주 약해 보이는 엄마에게 그 잔소리들을 되돌려주고 있다. 다행히도 매번 짜증만 내던 나와 달리 엄마는 웃으며 그 잔소리들을 유쾌하게 받아다. 2절까지 늘어지던 엄마를 향한 나의 잔소리들을 1절로 줄여봐야겠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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