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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un 22. 2021

꽃 꺾는 어른과 분무기 든 아이

햇살 좋다 못해 뜨거웠던 지난 주말. 동네를 걷다가 인근의 공원에 방문했다. 알록달록 꽃들이 즐비했다. 관리하는 이의 정성이 담겨 있 정돈된 모습이었다. 노랑, 주황, 분홍 물감을 진하게 쏟은 듯한 맑고도 선명한 색감에 감탄했다. 더불어 시야를 맑게 해 주는 푸르른 나무와 풀들도 답답한 마음속을 통풍시켜주었다.


급한 성격을 죽인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초 여름의 맑은 색감을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내 앞의 젊은 커플이 노란 꽃을 고민 없이 꺾어버렸다. 그 꽃은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는 셀카 속 액세서리로 활용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꽃을 보고 나와 같은 감탄을 느끼길 바랐는데 속상했다. 동시에 생명을 피워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꽃의 노력을 한순간에 헤친 무심함이 원망스러웠다. 그들만의 행복을 즐기는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찰나의 불쾌함을 마음속에 지닌 채 십 여분 정도 더 걸었을 때였다. 노란색 곰돌이 푸우 티셔츠를 입은 남자아이가 은색 분무기를 든 채 뒤뚱뒤뚱 걷고 있었다. 네다섯 살 정도로 추정됐다.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의 엄마가 느릿하게 옆에서 발걸음 맞춰주고 있었다.


'분무기를 왜 들고 있지? 더워서 그런가?'

의아해하며 아이를 흘깃 바라봤다.


아이는 본인보다 훨씬 큰 나무 앞에 멈춰 섰다. 말랑한 두 손이 분무기 손잡이를 누르기 위해 후들댔다. 나무를 향해 물을 뿌려주는 것이었다. 덩치 큰 나무의 간엔 기별도 안 갈 만큼 적은 양의 물방울들이 곱게 뿌려졌다.


"나무야 덥지?"

작은 양이었지만 물을 뿌리는 데 집중하며 안부 인사를 건네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동화 속에 들어온 듯했다. 마스크 안에 숨겨진  입꼬리가 계속 올라갔다. 뜨거운 햇빛 속에서 잠시라도 시원함을 느끼라는 듯 아이는 나무와 꽃들을 향해 바삐 뒤뚱였다. 고사리 같은 손이 여간 힘을 쓰기 어려운 것인지 연신 흔들렸고 여린 미간에도 힘을 주는 듯했다.


아이의 하얀 도화지 같은 마음이 유통기한 없이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또 분무기를 들진 않더라도 그 마음을 닮은 어른들 많아지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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