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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ul 06. 2021

글 쓰는 일 하실 것 같아요

2회 필라테스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구석구석 전해지는 고통들을 견뎌내 순간은 괴롭지만 그것을 마친 뒤에 느낄 수 있는 상쾌한 기분 중독성 있는 매력이다. 보통 4명 함께 듣는 수업이지만 오늘은 나머지 회원들이 결석하는 바람에 강사에게 1:1 수업을 받게 되었다. 뜻밖의 행운이다.


여러 명의 회원함께 경우엔 강사와 의례적인 인사말을 주고받을 뿐이지만 오늘은 혼자였던 탓에 강사는 근처에 사시냐, 평소 운동 난이도는 어떠시냐 등의 조금 더 깊 안부를 건넸다. 짧은 대화 끝에 강사가 한마디 덧붙였다.


"회원님 왠지 글 쓰는 일 하실 것 같아요."

그 말에 순간 흠칫하며 강사를 쳐다봤다.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평소 알록달록 꾸미는 것을 좋아해서 '옷'관련된 일을 할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듣곤 했는데 요즘 들어 선크림만 바른 채 수수한 모습으로 다녀서 그런가 하는 외면의 편견에서 비롯된 단순한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취미로 해요. 글 쓰는 거요."

사실은 엄청난 노력을 들여 쓰면서 쿨한 척, 취미라며, 수줍 버무려 버렸다. 내 대답에 강사는 입술 위에 얹어진 마스크에 손을 살포시 올리며 눈이 똥그졌다.


"와 신기하네요! 회원님이 운동할 때 차분하게 집중을 잘하셔서 뭔가 그런 쪽 일을 잘하실 것 같았어요."


더 이상의 깊어지는 대화는 강사와 회원 사에서 유쾌한 점만 있 수는 없었기에 중단되었다.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리포머 위에서 여러 동작을 따라 하며 땀을 흠뻑 흘렸다.


수업이 끝난 뒤 강사와 인사를 나누고 센터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햇빛이 체내 열기를 더 돋웠다. 평소보다 흥분되는 기분이 느껴졌다. '글 쓰는 일 하실 것 같다.' 이 한 마디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내가 현재 쓰는 글이란 살면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 미비한 상상력을 최대 발휘하여 적 짧은 소설 정도이다. 직업적으로 행하는 일들은 아니지만 생각과 감정을 정돈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쓰는 것이다.


현재의 글쓰기가 타인의 인정에서 비롯된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론 블로그의 경우 아주 소정의 광고료를 조금씩 얻긴 한다. 치킨 값 정도랄까) 누군가에게 '글 쓰는 일'을 한다고 당당히 말하기엔 부끄럽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 외에는 쓰는 행위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곤 한다.


강사는 내게 글 쓰는 일을  것 같은 이유가 '차분해 보여서'라고 했다. 그 차분함은 사실 낯선 이들 앞에서 나타나는 낯가림 중 하나 가까울 뿐인데.


이전의 내가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가지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상상력이 풍부하며 사리분별을 침착하게 잘할 줄 아는 사람 정도다. 반대 성향의 이가 엄청난 글재주를 뽐내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며 기존의 생각을 철회한  꽤 되었지만 말이다.




브런치라는 앱을 통해 글을 쓴 지 6개월이 흘렀다. 초반엔 브런치 북을 몇십 개라도 만들어 낼 기로 소소한 경험들을 전부 텍스트화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 싸매고 고민했다. 시간이 흐르며 누군가의 감칠맛 나는 글 재능을 내 부족한 글들과 비교하며 질투하기도 했고, 돈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니 너무 영혼을 갈아 넣지는 말자며 조회수가 오르지 않는 일부 글들에 대해 합리화해보기도 했다.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는 것에 기반한 고민들이었다.


'돈'과 '현실'을 좇다 마음이 다쳤을 때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는 행위는 결국 보이려고 쓰는 글이 아닌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 이놈의 글 쓰기는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가 될 때까지 애증의 관계로 함께 가겠구나 하는 생각의 변덕스러움에 웃음이 .


"글 쓰는 일 하실 것 같아요."


자칫 별 의미 없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글을 더 자주 쓰고 싶어 졌다. 더디더라도 끊임없이 행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자발적인 일이자 나를 향한 위로법이니까.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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