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 뭔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거라는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현저한 삶의 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어떡하든지 간에 여행지에서의 경험과 시간이 내 존재 기저로 들어올 것임을, 삶의 확장과 가능성의 연료가 될 것임을 어렴풋이 믿는 구석은 있었다.
여행을 다 마친 뒤,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여행을 마치고서 막상 밑을 들췄을 때, 여전히 혼란스럽고 답답한 채 덩그러니 있는 나를 보았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과 다름없이 암담했다.
흙탕물의 소요가 가라앉으리라고, 맑은 물이 떠오르리라고, 이 시간을 또 묵묵히 지내다보면 손가락 사이로 조금씩 걸러질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내 자신에게 되뇌었다. 동시에 나는 이 처절한 늪 같은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인생이 정말 이렇게 끝날 것만 같아서 매우 두려웠다.
머릿속 끊임없는 질문,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꾸역꾸역 시간을 좀 보냈다. 알게 모르게 어수선한 것들이 내 안에서 차츰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몇 가지 자연스럽고도 의지적인 선택들을 하게 되었다.
삶이 아주 조금씩 정돈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삶은 알쏭달쏭하다. 그저 나를 들여다보고 세워가려는 생각을 멈추지는 않겠다고 되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