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돌아가는 날, 그래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서 앞으로 할 것들을 정리하고 천천히 다시 세워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석연찮고 불분명하지만, 그동안 바로 이 곳, 우즈벡에서의 무수한 걷기와 사색의 시간이 충분히 내 힘이 되어줄 터이다. 그래도 이곳을 떠나는 마음은 아쉽고 애틋했다. 타슈켄트는 무심하도록 그저 평온하고 고요할 뿐이었다.
우즈베키스탄 여행은 그야말로 여행자체를 목적으로 한 나의 첫 번째 여행이었다.
예전에 나는 공연을 하며 여러 나라와 여러 도시에 머물렀었다. 공연으로 온몸의 에너지를 소진하면 나는 하얗게 타고 남은 잿더미가 된 것 같았다. 공연은 마치 종교의식이나 정화의식처럼 내 전체를 다 바쳐서 비워지고 새로워지고 확장되는 통로였다. 공연이 끝나면 허하고 텅 빈 속을 달래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혼자 이곳저곳 여행을 했다. 여행 자체의 감흥과 감상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 시기 나에게 중요한 건 오직 춤뿐이었기에, 인생에서 춤 말고는 정말로 다른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던 시기였기에 여행을 하면서도 늘 춤 생각을 했다. 여행 속으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의심과 불만족에서 벗어나고픈 욕구, 타인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어찌하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확보하며 안정감을 얻고자 하던 욕구 등을 춤을 통해 약간은 강박적으로 실현시키고자 했던 것 같다. 춤이 좋으면서도 지치고 힘이 많이 들었다. 춤을 계속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외부의 기준에 들기 위해서 발버둥 치며 노력한 것이 일정부분 나를 성장시킨 것도 있었지만, 나는 문드러졌다. 나는 왜 이리 부족한가,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뼈를 갈아 넣어야 할까, 언제쯤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될까, 언제쯤 이 필사적이고 처절한 고군분투가 끝날 수 있을까 등등 당시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 이후로 시간은 꽤 흘렀다. 여러 자연스럽고도 의지적인 선택들로 삶에서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우즈벡 여행은 예전처럼 공연이라든지 춤이라든지 하는 것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온전히 여정에 나를 내던지고 푹 잠기는 여행이었다.
다시 찾은 하즈라티 이맘 광장은 여전히 아득하고 고요한 정취에 휩싸여 있었다. 신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저쪽에 견학을 왔는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우즈벡 학생들의 무리가 있었다.
"어디서 왔어요?"
당차보이는 한 여학생이 내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내가 한국이라고 말하는 순간, 모든 여학생들이 꺅꺅 소리를 지르고 발을 동동 구르거나 점프를 하면서 세상 난리법석을 떠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슨 참새떼마냥 우르르 나에게 몰려들었다. 어느새 학생들은 벽처럼 진을 치고 내 앞에 서 있었다.
한국말 인사를 하는 학생들도 제법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쎄븐틴과 BTS를 아느냐고 연신 물어대었다.
“포토 포토 포토!" 한 여학생을 필두로 한명씩 혹은 두세 명씩 그렇게 학급 전체 학생들과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하고도 같이 사진 한 방 찍고, 반 전체 기념사진도 떡하니 같이 찍었다. 다들 이 한국인 여자와 사진을 찍으려고 그렇게도 안달이 난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융숭한 스타대접도 받는다.
그래, 나는야 마흔 살 슈퍼스타!
대대적인 기념사진촬영을 마친 뒤, 나는 미나렛이 보이는 조용한 곳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따금씩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나는 고요한 평화 속에 있었다.
여행 초기에 3주라는 시간동안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많지 않다고, 어떤 내적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그런 충분한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여행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이 시간의 두께와 밀도감은 내 처음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물론 어찌 된 게 이러나저러나 명쾌한 답 같은 건 떡하고 나오지 않았다. 그 어디에도 없었다.
여행의 끝자락, 여전히 나는 답 없는 모호함을 잔뜩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 흙탕물의 소요가 가라앉고 맑은 물이 서서히 떠오를 것임을 나는 믿게 되었다.
작은 창문에 비치는 타슈켄트 공항정경을 바라보았다.
이 땅을 이제 기약 없이 떠난다는 사실, 이 땅의 경이롭고 놀라웠던 경험과 시간들을 이제 마음 한 구석에 접어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애틋하고 아쉬웠다. 언제나 인생에서 이 땅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이제는 작아져서 별처럼 반짝이는 저 우즈베키스탄 땅을 바라보는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죽음을 향해 가는 인생, 그 속에 짧고도 긴 시간들, 확실함과 영원함은 없는 것, 덧없는 일시성과 막막한 불확실성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하고 싶은 마음들.
이제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한국 땅으로 간다. 여행이라는 예외적 시간을 이제 닫을 시간이 된 것이었다. 애틋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후련하기도 했다. 긴 여정동안 충분히 쉬었고, 경이로움과 영감으로 온 몸과 정신을 비우고 또 채웠다. 부표처럼 떠오른 생각과 느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참 많은 시간 혼자 걸으며 그렇게 사색에 잠겼다. 어느 날에는 고독감에 푹 잠겨있기도 했고 또 어느 날에는 황홀감에 떨리듯 전율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비현실적인 가벼움에 젖어있기도 했다.
어쩌면 내게 이번 여행은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물리적인 땅이 주는 감흥, 그러니까 우즈베키스탄 자체에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물리적 장소가 내게 선사해준 것들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어느 곳에 가느냐, 혹은 어느 곳에 있느냐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있든, 우즈벡에 있든, 아프리카 땅에 있든 중요한 건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여행 장소보다 여정의 내용과 과정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여정으로서의 여행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