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 고요한 나날들

by 움직이기

타슈켄트, 고요한 나날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곧 한국으로 간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돌아가고 싶었다. 개울의 잎사귀처럼 유유히 떠다니고 싶으면서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땅과 단단히 연결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여행의 막바지에 접어들 때 즈음이면,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어느 정도 정돈이 되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말이다. 단지 헛된 믿음이었나. 나는 여전히 내가 원했던 만큼까지 회복이 된 것 같지도 않고, 아직도 앞으로의 방향도 정리가 안 되었다. 아직도 힘이 덜 차서 버거운 상태 같았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건가, 도대체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도대체 나는 이런 나를 어찌 하면 좋을까.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 거대한 잿빛 벽이 또다시 내 앞을 가로막았다. 무겁게 내리 앉았다.



우즈베키스탄 국립예술박물관에 갔다. 작품들을 보면 이 불안하고 허한 느낌도 채워질 테고, 영감을 받으면 정신도 고양될 것이었다. 지난번에 들렀던 국립역사박물관도,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도 생각보다 내용의 양적, 질적인 면에서 실속은 알차지 못했다. 그래서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내실 있는 내용에 꽤나 만족스러웠다. 총 4층으로 된 박물관은 공간마다 작품들로 거의 빈틈없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예술과 종교, 지리와 환경이 역동적으로, 유기적으로 얽히면서 빚어진 우즈벡만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부터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의 회화와 조각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편에는 작게나마 한국관, 중국관, 일본관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슬람 종교는 우상숭배를 금지했기 때문에 인물 대신 나무나 꽃, 아랍글자, 기하학적인 무늬와 반복적인 패턴을 사용한다. 이것이 아라베스크(아랍식) 양식이다. 아라베스크 문양들은 각종 생활식기에서부터 문, 의복, 카펫, 성곽과 기둥, 마스지드(이슬람성원, 모스크), 메드레쎄(이슬람 신학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 및 응용되었다. 표현의 제약이라는 토양 속에서 독특하게 일구어낸 고유성과 개성이다.

이러한 특수한 제약들이 없었다면 이 표현양식은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은 어찌 보면 당시에 종교적 제약 속에서 자신들만의 표현을 위한 탈출구를 찾고 찾았을 게다.

생각해보면 역사 속에서 인간은 한쪽 문이 닫히는 상황에 처하면 참 끈질기게도 다른 문을 기어코 열어냈다.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제약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빛나는 업적과 진보를 이뤄냈다. 한때 부정적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영원한 긍정과 부정이라는 절대적이고 이분법적인 가치는 없다. 그저 이리저리 모습을 드러내며 변화하는 상대성, 유동성만이 있을 뿐이었다.




밤에는 숙소주변을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걸었다. 주변의 작은 골목들은 어둡고 조용했다. 나는 좀 헛헛했다. 원하고 계획했던 만큼 의미 있는 여행 이었나 곰곰이 곱씹어보았다. 여전히 근본적이고 무거운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한 회복과 전환의 여정이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직은 온전히 정리되지 않아 다소 부산스럽고 혼란스러운 감이 없진 않지만, 이 여정의 총체는 앞으로의 삶 속에서 새로운 방향성과 에너지로 발현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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