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도 어떤 날은 영감을 받아 감정적으로 한껏 고양 되어 신명나게 춤을 춘다. 또 어떤 날에는 춤에 대한 영감과 동력이 희미해져서 무덤덤해지기도 한다, 왜 이리 힘든 것인지 힘에 부쳐 버둥대며 춤추는 날도 있다. 과연 내가 좋아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안 나는 날도 있다. 몸이나 정신이 축 쳐져서 도무지 춤을 추고 싶지 않은 날도 물론 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몸과 정신이 받쳐줘서 즐겁고 산뜻하게 춤으로 들어가는 날(매우 좋은 하지만 매우 드문 상태)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정말로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고달픈 몸을 이끌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연습실로 터덜터덜 향해 갈 때면 내가 왜 무용을 한다고 했을까, 계속 할 수나 있을까 등등 오만가지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그런 의구심 속에서 일단 몸을 연습실에 던져놓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참 신기하게도 춤이 또 되어지는 것이었고, 시들시들했던 몸과 정신이 다시 세워지는 것이었다. 몸이 탁 제대로 풀려서 신명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방금까지만 해도 무용을 하네 마네까지 갔던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그쯤 되면 나는 어느 샌가 미친 듯이 땀을 쏟고 열정을 토해내며 좋다고 춤을 추고 있었다.
‘하아... 역시 이거지. 이제야 살 것 같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춤을 추면 춤추기 전과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된다. 딱딱하고 무겁고 차가운 몸이 해바라기처럼, 태양처럼 활짝 열려 젖혀진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이 땅에 깊고 단단한 내 존재의 중심이 세워진다. 혼자 춤추는 나만의 시공간, 그 은밀하고도 풍요로운 세계 속에서 나는 깊은 만족감과 충만감에 푹 잠긴다. 나는 돌처럼 진실하게 나 자신이 되고, 새로워지며 무한히 확장된다. 춤도 지속적으로 더 깊어지고 신선해진다. 그럼 나는 드디어 정말 사는 것 같다고, 이제야 숨통이 트여서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표면적인 신체나 정신 상태가 받쳐주지 않아도 그러려니 한다. 상태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일단 시작하면 되어 지고, 또 세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의 반복 속에서 선물 같은 진실을 지속적으로 마주하기 때문이다. 내속 심원한 곳에 우뚝 있었던 진실을. 춤을 추는 것으로써 춤을 좋아하는 마음을 재확인 받는다. 그럼 그렇게 또 계속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겉 표면은 흐르고 지나가지만, 심원한 속은 우뚝 그대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