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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와 고유 Jun 03. 2023

[무용이야기] 제자의 공연


23년 6월 2일 저녁 7시 30분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코튼홀 제자의 공연에 초대를 받아 갔다. 동덕여대 박사과정 학생들의 업작품에 유일한 병아리 학부생으로 출연하는 우리 사랑하는 제자. 무용과에서 선보이는 공연에 서는 것은 과 학생이라고 그냥 다 설 수 있는게 아니다. 학과 내 선배들과 교수님들의 눈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학과 공연에 서려면 학과 내 학생의 평소 성실성과 평판이 중요하다. 실력과 발전가능성까지 고려된다. 평소 학과 헌신도와 기여도가 높지 않거나 불성실하면 선배들이나 교수님들의 눈안에 절대 들 수 없는 법이며, 공연에 선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제 아무리 실력이 좋을지라도 말이다. 일단 학과에서 선배들과 교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면 학과 내에서 내 자리는 없다. 올라 갈 수가 없다. 여느 다른 사회 조직처럼 학과 내 복잡한 관계들과 힘의 논리가 있다.




우리 제자는 그 많은 눈들을 통과했다는 게다. 석박사 선배들과 함께 할 수 있을 정도의 성실함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게다. 그 작업 안에서 우리 제자가 어떤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겪었는지는 나는 알 길이 없다. 아마 일단은 "석박사 언니들" 사이에서 춤 실력으로 좀 깨지기도 했을테고, 그래서 스스로 의심하고 자책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작업상황에서 같이 하는 석박사 언니들의 위로와 도움을 받았을 수도,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한 관계 속에서 오는 다양하고 미묘한 상황들에 맞부닥뜨렸을 것이다. 아니면 또 생각보다 다소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수도 있다. 어찌됐든 제자는 박사 대학원생의 공연에 유일한 학부생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공연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밟았다. 그리고 끝까지 해냈다.




오랜만에 혜화로 향하는 내 마음은 왠지모를 벅찬감정에 휩싸여서 약간 떠있었다.  내 제자의 공연에 가게 되다니 참 생각할 수록 감회가 새로운 것이었다. 내 머릿속 시간을 오래 전으로 돌렸다. 나는 아마도 27살때 처음으로 내가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을 공연에 처음으로 초대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20대 초중반 내내 선생님, 스승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을 만나지 못했었다. 물론 춤추러 여기저기 다니면서 "선생님"들은 많이 만났지만, 내게 진정한 관심과 지지를 보여주고 나를 세워주고 도와주는 진정한 스승님은 만나지 못했다. 외부 선생님들과 혹은 학과 내 교수님들과 인간적인 깊은 교류가 없었다. 당시 나름대로의 경험이 쌓여서 형성된 나의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나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춤을 어떻게 바라보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실력향상을 위해서 어떤 지속적인 노력들이 필요할지, 춤추며 산다는게 어떤건지 혹은 공연을 비롯한 여러가지 다양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나갈 수 있는지라든가 등등 춤의 세계와 그 실제 삶의 다양한 부분들에 대한 지식과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매우 감사하게도, 20대 중반에 처음으로 내가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을 만났다. 국립극장에서 했던 무용단 공연이었는데, 선생님이 나를 보러 기꺼이 와주셨다. 공연 끝나고 무대 뒤에서 선생님이 나를 보며 활짝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아주 생생하다.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문장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때 선생님의 목소리와 얼굴이 마치 현실처럼 또렷하게 저장되어 있다. 선생님이 내 공연에 와주시다니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뇌리에 저장되어 있다.       







공연을 좀 보려고 했는데, 좌석에 앉은 내 마음은 오매불망 제자가 언제 나오나였다. 아 진짜 ㅎㅎㅎ 왜 이리 안나오는거니. 두번째 공연에 제자가 짠하고 출연했다. 아... 시력이 안좋다보니 고개를 앞으로 쭉 빼고 미간을 찌뿌리고 초집중해서 제자를 찾아야 했다. 하! 저기 있구나. 공연을 봐야 하는데, 제자가 나오는 순간부터 끝까지 말그대도 제자만 눈으로 부단히 따라다녔다;; 아... 이것이 지인의 폐혜다. 공연내용은 안보고 진짜 사람만 본다 ㅎㅎ 제자가 솔로로 하는 부분, 듀엣 컨택 하는 부분, 계속되는 군무들, 그리고 동선을 맞춰주고 공간을 채워주는 순간들, 호흡을 맞추고 눈치를 보고 서로간 의식적 무의식적 싸인에 반응하는 순간들을 지켜봤다. 공연은 약 20분간 이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춤으로 꼭꼭 채워진 공연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내용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그게 나한테 엄청나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무대공간의 몇몇 이미지, 청바지와 흰색 남방의 의상과 운동화, 그리고 전체적인 춤 스타일만 남았다.   







커튼콜에 제자가 머리숙여 인사할때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다. 아나 정말 청승맞게 또...;; 뭔가 불분명한 감정이 벅차게 차올랐고 이게 뭔지 정확히 속에서 포착할 수가 없었다. 극장이 곧 다시 환해질테니 눈물을 얼른 수습해야 했다. 좀 팔리니까. 공연끝나면 무대도 정리해야 하고 의상도 정리해야 하며, 공연에 온 지인들을 살뜰하게 맞이해야 해서 참 분주하다. 그래서 그냥 가고 다음에 볼까 했지만 그래도 얼굴은 잠깐이라도 보고 싶었다.


"선생님!"


어머나! 어머님과 아버님이셨다. 아버님은 처음 뵈었고 어머님 정말 오래간만에 뵈는 거였다. 먼저 만난 부모님과 함께 제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갓 공연을 마치고서는 환하고 수줍은 미소를 띄고 나를 보는 제자. 제자를 꼭 안아주는 순간 눈물이 또 빵하고 터졌다................하.... 진짜 안도와준다..........연신 흐르는 눈물......아 어쩜 이렇게 폼이 안사냐 정말....;;;  나를 바라보시는 어머님의 깊은 눈빛으로부터 애처로움과 고마움 같은 느껴지고 있었다.




귀한 보배같이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제자. 제자의 공연에 오다니 나는 아주 세상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쑥쓰럽지만 스스로 좀 멋있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ㅎㅎㅎ 극장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내 등과 어깨는 이만치 올라가 있었다. 아주 그냥 세상을 다 품을 기세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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