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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와 고유 Aug 17. 2023

자서전 같았던 전시 [에드워드호퍼:길 위에서]






예전에 아마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아주 우연히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마주쳤다. 그림들을 보는 순간 나는 그대로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멈춘 듯, 혹은 시공간이 뚝 잘려진 듯  단조롭고 적막한 그 느낌이 순식간에 온 몸을 강타하며 밀려들어왔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같은 그 강렬한 고독과 적막. 소리도 없어진 것 같았고 시간조차 없어진 것 같았다. 오직 그 순간만 있었는데, 마치 내가 당시 작가와 함께 있었던 것 마냥, 작가가 포착한 그 순간을 나는 진짜로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다. 홀린듯이 그의 다른 작품들도 쭉 찾아보았다. 망치에 맞은 듯 멍하니 그림들을 바라보면서 덜덜덜 정신을 못 차리고 전율했다. 아니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것을 포착했을까,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거의 탄식마저 했던 것 같다.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가 있어서 다녀왔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2013년 그러니까 내가 서른살때, 서울시립미술관 벽을 배경으로 호주팀과 공연을 했었다. 미술관 정면 외벽에 프로젝션을 쏘고, 줄을 설치했다. 공중에서 줄에 매달리기도 하다가 바닥으로 내려와서 춤도 추도 했던 공연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올 때마다 나는 항상 그때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내가 인터넷으로만 보았던 그 실제 그림들 몇 점을 마침내 보게 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에드워드 호퍼의 정수가 담긴 그의 중후반기 유명한 그림들은 한국으로 오지 않았다. 그의 유명한 작품들 중에서는 1961년 <햇빛 속의 여인> 이 작품만 왔다.  그러나 그 외에 1928<밤의 창문>, 1928<철길의 석양>, 1949 <계단> 등 그의 고유함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나는 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을 실제로 마주해서 좋았다기보다는, 사실 작가를 좀 더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원숙해져가는 그의 여정을 엿볼 수 있던 전시라고나 할까.

그가 실용미술 위주의 뉴욕일러스트레이팅학교에 진학한 뒤 뉴욕예술학교로 편입하면서 예술가의 꿈을 키운 초기 시절의 그림들부터, 상업화가에서 전업 작가로 가는 과도기 그림들이 쭉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화가로 성공하기 전까지 돈을 벌기 위해 뉴욕에서 삽화가로 20여년이나 일하면서 그린 각종 광고삽화, 잡지 표지, 출판물 삽화들도 있었다.

그는 1900년대 초 파리 여행때 자연과 건축물,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당시 여러 화풍에 영감을 받아가며 그림을 그렸다. 1900년대 초 산업화와 도시화가 한창 진행중이던 뉴욕에 살며 호황기 재즈시대를 누리던 그는 아내와 자주 가던 연극 극장을 배경으로 무대를 보며 앉아있는 인물의 뒷모습 등을 고독한 분위기로 묘사했다.

그는 평생 남미, 미국 전역등을 꾸준히 여행했으며,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어 자연, 도시, 일상 풍경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묘사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 화풍을 개척해 나갔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어떻게 해야 하나 고군분투하던 병아리시절을 거쳐 차츰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을 담는 원숙한 예술가로 성장해가는 그의 일생이 그의 평생 그림들 속에 순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그가 삽화가였고, 여행가였다는 사실은 전에 몰랐다. 이 사실은 내게 새롭고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이 사실들은 내게 그가 왜 이런 것들을 포착했는지, 그리고 그의 그림이 왜 이런식으로 표현되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충분히 제공해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예술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자서전이었다.

그리고 그 기나긴 여정을 나는 가치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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