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종이학이 날아오르길
친정 아빠 생신이라 가족끼리 모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도 제법 컸으니 할아버지께 드릴 선물을 하나씩 준비하자고 했다. 우리 부부도 용돈으로 대신하고 있지만 부모님 선물 준비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모임 전날 밤 셋째 아이가 할아버지 선물을 준비했다며 나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방문을 닫는다.
언니, 오빠가 보는 게 싫은지 요즘 셋째는 꼭 방문을 닫는다.
그럼 그 문을 살짝 열어 내다보는 언니와 오빠.
눈이 마주쳐도 모른척하며 셋째에게 집중한다.
짜잔. 셋째가 할아버지 선물이라며 내밀었다.
앗! 당황스러웠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이라며 내게 내민 것은 종이로 만든 초록색 병이었다.
친절하게 "술"이라고 적지 않아도 색깔만 봐도 알 수 있다.
할아버지와 아빠가 만나는 날은 이 병을 마시는 걸 자주 봤으니 셋째는 할아버지가 좋아한다고 생각을 했나 보다. 그 모습을 기억하고 선물로 만들었다니 잘했다고 해야 하는지, 거기에 빨간 하트는 보너스다.
술병만 있었다면 허전했을 텐데 아이의 센스로 빨간 하트가 더해지니 나름 선물 같았다.
종이 안쪽에는 솜을 살짝 넣어서 납작하지 않고 도톰하게 만들었다.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친정 아빠는 셋째에게 고맙다며 허허허... 그냥 웃으셨다.
둘째는 작년 생일에 첫째와 셋째가 직접 만든 명품 가방을 선물로 받았다.
비록 종이로 만들었으나 꼼꼼한 디테일까지 챙겨서 제법 잘 만들었다. 무려 둘째 이름이 새겨진 24년 가을 시즌 한정판 가방이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셋째가 삐뚤삐뚤한 솜씨로 제법 영어를 잘 그렸고, 노란 얼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라서 웃게 만든다.
하지만 둘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럴만하다고 생각은 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이만한 선물도 없는 것 같다.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하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종이에 그리고 색칠을 한 다음, 조심조심 가위로 오려내어 풀과 테이프를 이용하여 모양대로 붙이고 손잡이는 다른 쇼핑백에서 떼어온 줄을 이용하거나 두꺼운 종이를 이용하여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온갖 정성이 들어간 선물이 또 어디있나.
나는 두 아이의 선물에 감탄을 했다.
한 번씩 아이들 방을 정리하며 싹 비우기를 하는데 이 가방은 버리지 못하고 둘째 아이 책상옆에 걸어두었다.
올해 9월 둘째 아이 생일에 첫째 아이는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서 아쉽게도 저녁을 같이 하지 못했다.
그래서 둘째에게 선물을 주지 않았는데 둘째의 생일이 지나고 2주 뒤가 첫째 아이 생일이었다.
오빠 생일 선물을 준비하자고 했더니 둘째는 자기도 선물을 못 받았으니 준비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빠는 수학여행을 가서 집에 없었잖아,라고 했더니 안 한다고 했잖아!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고, 끝내 둘째는 생일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다.
첫째는 수학여행을 가서 할 수가 없었다고 몹시 서운해했지만 사실 마음이 있었다면 미리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을 것이다. 아무튼 둘째는 오빠 앞에서도 단호했다.
이러다 내년까지 이어져 서로 작년 생일에 못 받았으니 이번에도 선물 없다고 하지 않을까 선물 전쟁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괜한 걱정이 든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데 이 사이에서 오빠, 언니 생일을 꼬박 챙긴 셋째는 선물 걱정이 없어 좋겠다.
생일 선물을 고민하는 셋째에게 며칠 뒤면 오빠가 중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중간고사 시험을 보는 날이니 시험을 잘 보라는 의미로 컴퓨터용 사인펜과 오빠가 갖고 싶어 하던 지우개를 선물하자고 했다.
선물의 의미를 말해주니 첫째도 마음에 들어 했고, 그 덕분일까 시험도 제법 잘 봤다.
시험기간 첫째의 책상에 하얀 약봉투가 있었다.
뭐지? 병원 다녀온 적이 없는데.
약봉투를 확인해 보니, 응원의 문구가 적힌 봉투 안에는 초콜릿이랑 사탕 그리고 작은 스낵과자가 들어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나눠주신 것 같은데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아쉬웠다.
첫 시험을 앞두고 긴장했을 아이들의 마음을 이렇게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달콤하게 달래주시다니.
기말고사가 2주일 정도 남았는데 이번엔 나도 아이에게 긴장을 덜어주고 힘을 줄 수 있는 선물을 준비해 봐야겠다.
그렇게 첫째 아이 생일이 지나면 10월 초에는 남편의 생일이다.
9월과 10월은 거의 2주 간격으로 두 아이와 남편의 생일이 이어져 있다.
이번 남편의 생일은 추석연휴 끝이라서 바로 엊그제 명절 음식을 준비했는데 이번엔 남편 생일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거하게 준비하는 것은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음식을 최대한 하려고 했다.
우선 남편이 먹고 싶다는 한우 갈비찜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일찍 찾아간 마트에는 한우 갈비가 없었고, 자주 가는 고깃집에도 하필 한우 갈비는 없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메뉴를 변경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근처 고깃집을 들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 한우는 비쌀 텐데? 우리 다섯 가족이 먹으려면 얼마나 사야 하지? 현실적인 고민이 되었다.
결국 나는 호주산을 샀고, 가게 문을 나서면서 한우를 사야 했나 잠시 짧은 후회가 들었다.
맛있다며 밥 한 그릇을 다 먹은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결국 말하지 못했다.
맛있게 먹었으니 남편에게 살이 되고 뼈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엔 정말 맛있는 한우 갈비찜을 해야겠다.
둘째 아이가 아빠에게 선물한 초록색 학 두 마리는 언젠가 날아오를까.
고등학교 때 학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많이 접기도 했지. 그때는 무슨 소원을 이루고 싶었을까. 지금은?
지금은 천 마리는 어림도 없다. 오천 마리쯤은 접어야곘지. 1인당 소원 하나씩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