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액자 속 사진

그리고 묻어나는 엄마의 의미

by 쭌쭌이맘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생이 알록달록 색깔이 예쁜 세 개의 액자를 선물해 주었다.

어떤 사진을 담을까 고민하다가 아이의 얼굴이 잘 보이는 초음파 사진을 넣고 아이의 태명을 적어 두었다.

이 작은 아이가 내 뱃속에서 내 목소리를 듣고, 나로 인해 영양분을 섭취하고, 내 보호를 받으며 이만큼 자라나 우리에게 오다니.

남편은 모를 나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힘들기도 했지.

어느 날은 근무 중에 갑자기 엄마의 미역국이 너무 먹고 싶었다. 한번 생각이 나니 참을 수 없어서 결국 시골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임신하고 처음이었다. 딱 하나! 오직 엄마가 끓인 미역국만 필요했다.

엄마도 처음이었다. 임신한 딸이 먹고 싶다고 전화까지 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급하셨을까.

농사일로 바쁜 엄마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미역국을 한솥은 끓이셨을 것이다. 그리고 남동생은 한 시간 거리인 시골에 내려가 미역국을 가지고 나의 저녁 시간에 늦지 않게 오려다 엉뚱한 길로 잘못 빠지는 바람에 한참을 가서 되돌아와야 했다. 서둘러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잘 다니던 길인데도 동생도 긴장이 되었나 보다.

그렇게 귀하게 먹은 미역국은 맛있었다. 엄마 음식이라 몇 끼니를 먹어도 물리지 않았다.

남편은 미역국이 먹고 싶으면 가까이 계신 (자기) 엄마한테 끓여달라고 하지, 라며 서운한듯한 표현을 했다.

아니 잠깐 지금 뭐라고?

남편은 평생 내가 먹은 이 미역국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

[보라색, 주황색, 초록색 알록달록 선명하던 색상이 어느새 바래지고 너덜너덜 해졌다.]

태명도 정말 고민고민하다가 지었지.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뜻이라고 했지.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결국 수술을 하게 되었고, 마취에서 깨어나 아이를 처음 마주한 순간 내가 한 말은 손가락, 발가락이 다 10개씩이냐고 물었다고 했다.



다음 해 9월 둘째가 태어났다. 사랑이공주.

태명부터 아들과 다르다. 말 그대로 사랑이다.

내 뱃속에서부터 아팠던 아이.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고 마치 그날처럼 기억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날 초음파를 보던 의사 선생님의 모습, 그 시선을 따라 나도 뚫어져라 화면만 들여다봤지.

불안한 마음은 틀리지 않았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계속 나를 자책했지.

누구도 원망할 수 없어서 나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언제든 사랑이에게 내 신장을 나눠줄 것이다.

그럴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줄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이렇게 나란히 두 개의 액자만 채워질 줄 알았다. 한 개의 액자는 비워진 채로 서랍 속에 놓아두었다.



셋째 아이는 축복이다. 너무 뜻밖에 찾아온 셋째를 처음엔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미안하게도, 내가 다 주지 못한 사랑과 축복을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받으라는 뜻으로 축복이라고 태명을 지었다.

어느 날 셋째 아이는 왜 언니는 사랑이 인데 자기는 축복이냐고 물었다.

모든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고 축복한다는 의미야.

내 진심에 아이도 만족한 듯싶었다.

이렇게 이쁜 아이를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셋째는 3월의 어느 봄날에 태어났다.

산후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본 활짝 핀 벚꽃을 기억한다. 내가 병원에 입원한 사이 계절은 완연한 봄이 되어 있었다.

아이가 있어 창문을 열지는 못했지만 분명 달콤한 봄내음이 가득했으리라.

햇빛에 반짝이는 꽃들이 내 마음을 한껏 부풀게 했다.


하지만 3월의 시골은 한창 일 년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로 바쁘다. 엄마는 저녁까지 일을 마치고 남동생과 함께 병원으로 왔다.

한 번도 산후조리를 못해줬다면서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 한 번이라도 해주고 싶다며 서둘러 오늘 일을 끝내려는 아빠와 말다툼 끝에 엄마는 늦게 오셨다.

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첫째부터 셋째까지 모두 세 번의 수술을 했는데, 이번엔 나이가 있어선지 내 몸이 힘들어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을 뒤척이기만 해도 아직 아물지 않은 수술 상처 때문에 너무 아팠다.

엄마는 그런 나를 돌봐주었다.



10년이 훌쩍 넘은 액자들은 색깔이 바래지고 너덜너덜해지며 아이들이 자란 만큼 시간을 먹었다.

그래도 버릴 수 없는 건 사진 속, 아직 태어나긴 전 내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들이 떠올라 잠시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 같다.

엄마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도는.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눈물보다는 생각하면 웃을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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