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바보? 아니 아빠바라기 꽃
둘째 아이가 네 살이던 여름날이었다. 가족 여행을 갔다가 저녁식사 후 남편이 노래를 부르는데 술 한잔을 마신 뒤라 그 분위기에 꽂히고 흥에 취해 남편은 한껏 분위기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그런 남편의 모습에 둘째가 말릴 새도 없이 푹 빠져버렸다. 만화 속 장면처럼 눈에서 하트가 쏟아져 나왔다.
그날부터 둘째는 온전히 아빠바라기가 되었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따라가듯 아이의 눈은 항상 아빠를 항해 있었다. 둘 사이는 꿀이 뚝뚝 떨어지게 다정했고, 거기에 내가 낄 틈은 없었다.
서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가끔 둘째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놀이 공원에서 아이들끼리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타면서 깔깔 웃음이 터지던 때, 남편과 나란히 서서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주고받던 나는 둘째 아이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그때 둘째의 행동이 순간 나를 멈칫하게 했지만 곧 남편과 마주 보며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가 눈을 크게 뜨고 브이 동작처럼 두 손가락을 펼쳐 자기 눈가에 대더니 휙 돌려 나를 가리키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게 아닌가.
그건 마치 내가 보고 있으니 더 이상 아빠와 가까이하지 말라! 는 아이의 경고 같았다.
한참 웃고 난 남편의 어깨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었다.
놀이기구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는 제 아빠 손을 잡고 휙 걸어가는 게 아닌가. 당황스러웠지만 아빠를 향한 아이의 이쁜 마음을 어찌할 수는 없으니 당분간 내가 참을 수밖에.
그렇게 영원히 활짝 피어있을 줄 알았는데,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아빠바라기 꽃은 조금씩 조금씩 시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아이에게 아쉬워했지만 아이에게 그렇게 깊은 뜻이 있을 리야.
여행을 가거나, 쇼핑을 가거나, 아이들 치과에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잠시 산책을 할 때도 남편은 아직도 늘 둘째 아이 옆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다.
나는 종종 그런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늘 마음 한편에 존재하는 미안함 때문일까, 건강하게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지.
예전에 아이에게 받았던 사랑을 그리워함일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지.
주변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가고 싶은 나를 첫째와 셋째가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남편과 둘째는 늘 저만치 걸어가고 있다.
지금은 때때로 그 모습이 서운하다.
둘째의 따가운 시선이 이제는 없지만, 나의 따가운 시선을 남편은 모르는가 보다.
셋째 아이는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한다.
그런데 때론 내가 지칠 만큼 애정 표현을 넘치게 해서 힘들게도 한다. 어느 날은 다 받아들이다가도 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셋째의 애정 표현이 힘에 부쳐서 강제로 밀어내야만 하는 적도 있다. 아쉬워하며 돌아서는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나도 숨 좀 쉬자.
남편은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달라며 아이에게 조르지만 아이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을 한다.
문득 임신을 했을 때 내가 미처 다 주지 못한 사랑이 고파서 이러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어 다시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햇살이 좋은 가을날 남편과 셋째가 잔디밭 디딤돌을 나란히 걷고 있다.
남편 허벅지정도에 키가 차는 아이는 아직도 품에 안고 다녀야 할 것처럼 작고 여린데 발걸음은 씩씩하다.
저만치 앞에 으깨진 감 부스러기가 있어 아이가 안전하게 건너가도록 남편은 손을 잡아주고 싶은데 그런 마음을 모르는 아이는 아빠의 손을 빼버린다. 혼자서 나무다리를 건너는 아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은 가을 햇살에 왜 아련하게 보이는 것인지.
둘째 아이였다면 진즉 아빠 품에 안겨 편하게 지나갔을 것이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은 이른 아침부터 펑펑 눈이 내렸다. 아이 졸업식을 위해 하루 휴가를 냈는데 이렇게 내리는 눈을 차분히 감상할 수 있다니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셋째 아이는 감기 기운이 있어서 반에서 진행하는 방학식에는 가지 못했고, 대신 오빠 졸업식에 같이 가기로 했다.
아이의 졸업식은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아이들은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표정과 행동은 진심으로 졸업을 즐기는 듯했다.
마지막에는 아이들이 직접 찍은 졸업 영상이 상영되었는데 반마다 각기 다른 컨셉으로 찍은 영상 속 아이들이 졸업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어서 보는 나도 즐거웠다.
복도에 선 아이들이 종이로 만든 검정 학사모를 한꺼번에 던지는 장면은 음악에 어우러져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울컥했다. 그 장면 하나로 아이의 졸업식이 실감 났다.
졸업식이 끝나고 나오니 아파트 단지가 하얗게 변했다. 펑펑 내리던 눈은 한송이 한 송이씩 내리고 있었다.
나는 뒤로 빠져서 남편과 셋째가 나란히 걷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남편이 아이에게 무언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고개를 숙이고 걷는 아이는 듣고 있는 건가. 이내 아이는 살짝 몸을 돌려 걷는다.
남편과 아이 둘 사이의 분위기는 모르겠으나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분위기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이쁘다.
졸업식이 끝나고 잠시 셋째 아이의 짐을 챙기러 교실에 들렀다. 담임선생님이 짐을 챙겨야 하니 졸업식이 끝나면 들러도 좋다고 하셨다.
쉬는 시간이라 교실에 들어가니 친구들이 아이를 반겨주었다.
반 배정이 되었을 때 친한 친구들이 한 명도 없다고 걱정하길래 나도 덩달아 걱정했지.
1학년 첫 등교하던 날 선생님이 이름을 물어보는데 쑥스러워서 이름조차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얼마나 걱정했는지.
며칠 동안 친구를 사귀지 못해 한마디도 안 했다고 해서 나는 또 걱정이 되었지.
그런데 이젠 안다.
아이는 늘 내 생각보다 몇 발자국 앞에서 씩씩하게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을, 늘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아이를 위로해 준 친구들 덕분에 아이도 무사히 방학식을 마칠 수 있었다. 친구들 덕분에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잊지 못할 방학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