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는 편식을 한다.
딱 입맛에 맞는 음식만 먹는데 주로 육류 위주로 먹고 채소는 잘게 잘라 양념으로 넣은 대파까지도 다 발라내고 먹는다. 어쩌다 대파가 입안에 들어가면 오물오물 젓가락으로 대파만 쏙 발라낸다.
첫째와 셋째는 채소를 넣은 계란말이를 좋아하는데 둘째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계란말이를 먹는다. 좋아하는 것과 먹는 것은 차이가 있다. 좋아한다는 것은 다른 것도 먹을 수 있지만, 먹는다는 것은 그것만 먹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째가 먹을 계란말이를 하고, 다음에 다진 채소를 넣어 두 번째 계란말이를 한다.
둘째는 쌈장 없는 삼겹살에, 소스 없는 스테이크를 먹는다. 간혹 소고기를 구워주면 소금에 찍어먹는 경우는 있지만 주로 고기만 먹을 때가 많다.
소스 없이 고기만 먹으면 무슨 맛이냐고 물으니 제법 깊은 뜻이라도 있는 것처럼, 자기는 고기 본연의 맛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과 나는 그게 무슨 맛일까 싶지만 첫째 아이가 소고기마저 쌈장에 먹는 것처럼 먹는 방법은 다 다른 거니까.
나의 둘째 동생은 완전한 비건은 아니지만 육류를 먹지 않는 그녀를 우리는 비건이라고 부른다.
이번에 이사를 한 동생이 아이들을 초대했는데, 다른 이모가 농담 삼아 "둘째야, 이모는 비건이잖아. 이모집에는 고기가 없어"라고 말을 하니 아이가 실망한 듯 표정이 바뀌어서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육식주의 조카와 채식주의 이모라니. 둘이 적당히 잘 섞였다면 동생이 어렸을 적 엄마도, 지금의 나도 좀 편했을까.
아이가 어릴 때는 먹는 것으로 고민한 적이 없을 만큼 이것저것 잘 먹었는데 자라면서 입맛이 변하는 것인지
한입 먹어보고 입맛에 안 맞으면 안 먹어도 좋다고 이것저것 권해보지만 냄새가 이상하다, 모양이 이상하다, 그냥 먹고 싶지 않다... 등등의 이유로 거부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러면서 매일 오늘 메뉴는 뭐야?
메뉴를 궁금해하고 기다리니 요리에 솜씨가 없는 나는 늘 고민이 많다.
오늘도 메뉴리알소고기 장조림만으로 밥을 먹는 둘째다. 그래도 아이는 배부르다고 하니 정말 배가 부른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점심을 차리기 전, 배고프다는 둘째에게 우선 간단히 된장국에 밥을 말아 줬더니 어느새 숟가락은 내려놓고 밥 한 톨, 국물 한 방울까지 후루룩 남김없이 먹는데 밥이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 정말 알 수 없는 모습이다. 대체 밥그릇이 어디에 가 있는 것인지.
이렇게 이쁜 옷을 입고 이렇게 밥을 먹어도 되는 거니. 아이야.
삼계탕은 먼저 살을 잘 발라 먹은 다음, 진하게 우러나온 국물에 죽을 담아 숟가락이 아니라 마셔줘야 제 맛이지. 살짝 핀 새끼손가락은 아빠를 닮았다.
콩나물국밥마저 후루룩 마시는 둘째.
우리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그릇을 내려놓는데 얼굴에 남은 밥풀은 맛있게 먹은 훈장이다. 그동안 집에서 이렇게 먹지 않았던 건 입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엄마의 요리 실력이 부족함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피곤한 하루 끝에 먹는 치킨의 맛을 알아버린 둘째다.
시크릿주주를 보며 콜라 대신 물과 함께 먹는 치킨의 맛은 제일 맛있지. 아이는 지금도 콜라 대신 물과 함께 치킨을 먹는다. 굳이 권하지는 않지만 가끔 치킨에 콜라, 그 맛을 모르는 아이가 아쉽다.
오빠, 먼저 자!
오늘 치킨은 내가 접수한다.
곧게 편 허리에 아빠 다리를 하고 치킨 한 상 제대로 차지하고 앉은 둘째다.
큰 시누이 시댁에는 감나무가 많이 있다. 시누이의 시부모님께서 연세가 드셔서 감을 딸 수 없으니 시누이는 매년 감을 따러 간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은 우리까지 다 모여 시골로 감을 따러 갔었다.
어른들이 기다란 나뭇가지로 툭툭 치면 감이 하나 둘 떨어지는데 나와 아이들은 이리저리 감을 주우러 다녔다. 제법 크고 단단한 단감으로 빛깔이 고와서 어찌나 맛있게 보이던지.
그런데 나만 맛있어 보인건 아닌가 보다.
갑자기 둘째가 감을 덥석 베어무는 게 아닌가.
아직 감을 먹어보지 않아서 무슨 맛인지 모를 텐데 먹는 것인 줄 알았으니 그냥 한입 베어 문 것 같다.
그런데 단단한 껍질 때문에 속살까지 다 베어 물지 못하고 결국 퉤퉤 뱉어버렸다.
첫째 아이가 유치원 졸업식을 하던 날, 역시 졸업식엔 자장면이라며 다 같이 중국집에 갔었다.
자기 얼굴보다 더 큰 접시에 가득 나온 자장면을 너무나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둘째.
둘째는 자장면을 한가닥 한가닥 먹는다. 옆에서 아빠와 오빠가 자장면 면치기를 해도 절대 따라 하지 않고 조용히 먹는다.
저 자장면을 언제 다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