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지영 Sep 14. 2022

한방향으로 쏠리는 비난

내가 성장하면서 겪었던 작고 사소한 사건, 사고와 불운은 모두 아빠 탓인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아빠가 아빠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을 떠올릴 때면 모든 불운은 분명 아빠의 탓임에 틀림없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동네에 또래 친구가 이사를 왔다. 그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정확히는 공부에 흥미를 느낄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는 돈벌이로 바빴고 나는 어린 동생을 챙겨야했기 때문에 나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내 공부를 챙겨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내가 처한 환경과는 많이 달랐다. 자신의 방이 따로 있었고 그 방에는 동화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독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친구 덕분에 나 역시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이사를 갔고 나는 더 이상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과 멀어졌다. 나도 그 친구처럼 수많은 책들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께 사달라고 조를 수 없었다. 어려운 살림에 책을 사달라는 것은 사치중의 최고의 사치였다. 의식주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책은 사치품이었던 것을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학원 한번 다녀보지 못했지만 책임감이 강했던 나는 시험 준비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인지 중학교까지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부터 학업 진도를 따라가는 것이 버거웠다. 학급 친구들은 영어, 수학 학원을 다니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매꿔 나갔지만 나는 오롯이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더욱 큰 문제는 공부할 환경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서관에 다닐 돈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공부해야 했지만 집에서는 늘 엄마, 아빠의 다툼 소리, 혹은 아빠의 술에 취한 잔소리만이 가득했었다. 엄마는 공부하라는 공허한 말만 계속했지만 도대체 공부를 어디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이러한 환경에서도 귀를 틀어막고 공부를 했어야 했을까? 솔직히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다. 지금 내가 무엇인가를 성취했다면 그것은 200%의 노력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100% 노력해서 얻는 것들도 나의 경우에는 200%를 노력해야 겨우 하나를 이뤄낼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좋지 않다. 그런 내가 고등학교부터 어려워지는 영어, 수학을 따라간다는 것은 무리였다. 

나도 친구들과 같이 학원을 다니고 싶었고, 늦게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고서도 살 돈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진짜 학원 다닐 돈이 없었던 것일까? 아빠가 술을 줄였다면 내가 학원을 다녀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고등학생이라는 것을 고려했다면 아빠는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국 모든 원망은 아빠 단 한사람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의 인생은 어떤 대학을 졸업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즉, 고등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얼마나 공부에 노력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이 고등학생이 되는 순간부터 수험생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함께 겪는다. 자식들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3년이라는 긴 시간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겠지. 그런데 내 아빠는 왜 그런 아빠가 아니었던 것일까? 왜 자식의 학업에, 미래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아빠의 무관심은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었다. 결국 나는 2년제 전문대에 진학했고 10명 미만의 작은 스타트업에 취업했다. 워낙 작은 규모의 기업이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었던 사장님은 가장 쓸모 없는 나부터 해고하셨다. 이후 1년간 취업 활동에 최선을 다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리고 어렵게 취업한 두번째 직장에서도 정리해고를 당했고 이후 2년간 미취업 상태에서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러한 모든 불운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일까? 태어난 것 자체가 불운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내 모든 불운은 내가 만든 결과물인 것일까? 사실 나는 모든 원인을 아빠에게 돌리고 있었다. 

이전 04화 냉정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