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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냉정함

나만큼 가족에게 냉정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지금도 후회되는 일들이 많다. 

엄마가 찬거리를 사기 위해 장을 보러 가는데 동행한 적이 있다. 주로 전통시장을 애용하는 엄마는 그곳에서 팔지 않는 물품들은 작은 마트를 이용했다. 그날도 마트에 들러 필요한 물품을 집어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나는 주위 이것저것을 살피느라 엄마에게 집중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캐셔가 엄마가 돈을 지불하지 않았음에도 지불했다고 우긴다면서 매니저를 불렀다. 엄마는 이미 돈을 받아 놓고 왜 이러냐며 당황해하셨다. 그러더니 옆에 있던 나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내셨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나도 못 봤어, 나도 몰라’라고 답변했다. 엄마는 억울하다며 CCTV를 보자고 했다. 매니저도 엄마에게 왜 그런 행동을 하냐고 나무라더니 CCTV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20분 후에 매니저는 돌아와서는 미안하다며 엄마에게 사과했다. 캐셔 본인이 돈을 받아 놓고 받지 않았다며 거짓말을 했던 것이었다. 그 순간 엄마 편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딸조차 외면했던 순간, 엄마는 나에게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 가족과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 온 세월은 가족을 온전히 내 편으로 보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바라보게 한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우리 집은 집 지을 당시 측량이 잘못되었는지 윗집 땅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이 사실을 우리도 윗집도 모두 알고 있었지만 큰 충돌 없이 살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윗집이 이사를 가고 새로운 집주인이 이사를 오면서 다툼이 있었다. 자신의 땅을 찾아가겠다며 매일 같이 우리집에 찾아와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일이 잦았었다. 나이도 어린 젊은 사람들이 나이 먹은 엄마 아빠를 상대로 언성을 높이며 밀치는데도 나는 밖으로 나가 엄마 아빠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그 상황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고 남의 땅을 사용하고 있으면 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돌려주자고 했더니, 그렇게 되면 현재 담장의 변경으로 건축물이 변경되어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윗집은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10cm 정도의 자신의 땅을 찾겠다고 떼를 쓰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엄마 아빠는 분명 서운했겠지만 내게 내색하지 않았다. 

이런 비슷한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아빠가 술에 취해 동네 분들과 다툼이 있으면 나는 가족이라고 무조건 아빠 편에 서지 않았다. 당연히 술에 취해 아빠가 실수한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건은 내 예측이 맞았다. 술에 취한 사람이 먼저 실수할 것이라는 것, 술 취한 사람의 말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들을 아빠는 행동으로 충분히 가족들에게 증명해줬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사람들도 나와 같은 행동을 할까? 내 또래의 사람들도 가족들이 어려운 상황일때 앞뒤 전후 상황을 따져서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지 궁금했다. 내가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40년 간의 훈련의 결과일까? 이러한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또 아빠가 미워진다. 왜 나를 이렇게 나쁜 사람으로 만든 것일까? 왜 이런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으로 만든 것일까? 

나는 온전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조건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랑도 모르고, 인생의 즐거움도 모르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내 자신이 안타깝다. 40년 넘게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훈련을 해온 인생이었다. 그래서 더욱 견고하고 단단한 그 기반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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