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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분노조절 장애

분노조절 장애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빠는 본인의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때 가족들을 향해 분노를 폭발시켰다. 폭력을 행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분노를 폭발하는 상황이 하루에도 수십 번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아빠가 화를 낼 때마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어느 날은 술에 잔뜩 취해서 고마움도 모르는 얘네들은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며 내일부터 학교에 보내지 말라고 했고, 어느 날은 밤새도록 엄마에게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어린 시절 아빠는 공포 그 자체였다. 새벽에 귀가한 아빠가 두려워서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꾹 참으면서 밤을 지내는 날도 있었다. 결국 사람을 두려워하며 성장했기 때문에 소심하면서도 사람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내 문제는 나만의 문제였다. 가족들도 자신들을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기 바빴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불행한 어린 시절은 나에게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미쳤다. 소심한 성격으로 성장한 나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낼 수 없었다. 사람들과 대화가 불편하고 어려웠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그들의 물음에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 나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덕분에 친한 친구 한 명 없지만 완벽하게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이 좋아 독립이지 어떻게 내가 정상인과 같을 수 있겠는가. 사랑받고 살았던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지금도 마음이 공허하고 삶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아빠의 분노조절은 술에 취했을 때 극에 달했다. 이때는 가족들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빠 주위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처음에는 술을 얻어 먹기위해 남아있는 사람들도 하나 둘 씩 아빠 곁을 떠났다. 그러더니 아빠의 수입이 없는 50부터는 주위에 남아 있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결국 아빠는 자식들의 생활비와 엄마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셨다. 허리 디스크 수술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빠의 변명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허리 디스크에도 불구하고 건물 청소일을 계속 하셨다. 오전 일을 마치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와 아빠의 점심을 차려드렸다. 그때마다 아빠는 점심과 함께 반주로 소주 한 두 병을 드셨다. 한 시간이 넘도록 계속되는 점심 시간 동안 아빠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점심 식사가 끝난 이후에도 짜증과 잔소리가 계속되었고 아무도 잔소리에 대꾸를 하지 않으면 본인도 지쳐서 낮잠을 청하셨다. 잠에서 깨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하게 한 두 시간이 흐르고 저녁 식사를 할 때 즈음에는 또 다시 소수 한 두 병을 드셨다. 그때부터 늦은 저녁이 될 때까지 잔소리와 짜증은 끊이지 않는다. 아빠의 우렁찬 목소리는 집안 곳곳에 울려 퍼졌다. 거실에 있는 TV 볼륨을 아무리 크게 높여도 아빠의 목소리를 덮어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런 생활이 매일 반복되었다. 집에서 술을 드시지 않으면 밖에서 술을 드시고 와서는 가족들이 지칠데로 지친 상태가 되어서야 잔소리가 끝났다. 

지옥이었다. 특히 냄새와 소리에 예민한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매일 욕설을 들어야 했고 다른 사람들의 험담을 들어야했다. 집이 좁아서 안 들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일을 하실 때에는 저녁때만 들으면 되었지만, 일을 하지 않았던 아빠 나이 50대부터는 매일 반복되는 악순환이었다. 아빠가 술에 취해 잔소리를 할 때, 아빠는 종종 외롭다고 했다. 자식들이라고 살갑게 구는 것도 아니고 본인을 무시한다고 했다. 

하지만 자식 입장에서 살갑게 행동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자식들은 아빠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 무관심이었다. 부모가 필요할 때 부모의 자리를 지켜주지 않았던 아빠였다. 자식이 성인이 되고, 본인은 돈벌이가 없어서야 자식들이 자식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짜증을 받아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그것이 10년이되고 40년이되면 체념을 하게 된다. 그냥 나의 이번생은 이런 것이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인생이겠구나, 부모와 자식 관계인데 나는 절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아빠는 자식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알았다고 한들 아빠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을까? 아빠는 동생과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본인이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특히 아빠를 더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이 소중하다고 다른 사람들도 본인을 귀하게 대접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타당해 보이지는 않았다. 

인간 관계는 일방적일 수 없다. 한쪽에서 끊임 없이 관심을 가져주더라도 다른 쪽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하물며 양쪽 모두 관심이 없던 세월이 40년이라면 그것이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도 귀에서 아빠의 짜증이 들리는 것 같다. 피곤함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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