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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절대적 미움과 상대적 안쓰러움

절대적 미움과 상대적 안쓰러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초등학교때 한 동네 살던 친구 중 한 명은 그녀의 아빠와 꽤 가깝게 지냈다. 어린 마음에 부러우면서도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라고 생각하곤 했다. 어린 시절 단 한순간도 아빠와 무엇을 해본 기억이 없다. 외식을 하거나, 놀이공원에 가거나, 어린이날 혹은 생일날에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전혀 없다. 그 결과 나는 성장하는 내내 아빠에게 고민을 얘기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위해 함께 의논하는 일이 없었다. 중요한 순간 주위를 둘러봐도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런 내 행동이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것이라고 질책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평생을 거리를 두고 살아온 내가 갑자기 아빠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이 가식처럼 느껴졌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성장하는 내내 아빠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순간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물론 경제적으로 의지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의지의 대상도 주로 엄마였다는 것을 밝혀 두고 싶다. 아빠는 생활력이 강한 편은 아니다. 생활력은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라기 보다는 부양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아빠가 가족들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면서 사셨는지 모르겠지만 자식인 나에게 그 노력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엄마는 내 나이 스무 살 때까지 새 옷을 사주지 못했다. 먹는 것도 해결하기 어려운 처지에 입는 것을 챙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내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입었던 옷을 주워 다가 입히곤 하셨다. 하지만 아빠의 삶은 달랐다. 늘 술에 취해 있었고 새벽이 되어서야 택시를 타고 귀가하셨다. 나는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밥 값이 없어서 굶거나 떡볶이로 점심을 해결해야했을 때 아빠는 친구들을 위해 술을 사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택시를 타고 귀가하셨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해서 먹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같이 학원에 가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보고 싶었으나 우리집이 다른 집에 비해 가난하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실제로 어렸을 때 그림 그리는 것과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었다) 참고서가 필요할 때마다 수백번은 고민하고 어렵에 입을 떼야 했다. 엄마는 분명 안된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요구를 들어 주기 위해 엄마는 힘든 육체 노동을 감수해야했다. 이러한 상황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입을 닫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집이 싫었다. 가족 구성원들 간의 빈부 격차가 싫었고, 어려서부터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삶도 싫었다. 무엇보다도 아빠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도 집에서는 엄마에게 늘 짜증을 내는 것이 싫었다. 특히 술을 마신 날에는 새벽까지 짜증과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것이 아빠의 일상이었다. 자식들의 공부에도 딱히 관심이 없었고, 자식들이 무엇을 먹고 살고 있는지, 고민은 없는지.. 그런것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 나는 아빠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 한 집에 살았어도 타인보다 못한 아빠와 나의 관계에서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감정적 유대 관계를 가졌던 것은 엄마 뿐이었다. 그래서 나의 시선에서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가해자와 피해자였다. 매 순간 엄마를 향해 짜증내고 화내는 아빠는 가해자였고, 아무말 없이 듣고만 있던 엄마는 피해자였다. 술을 좋아하는 아빠가 술값이 제외하고 남은 돈을 생활비로 내놓을 때 엄마는 자식들을 위해 부족한 돈을 매꿔야 했다.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밭일을 하면서 일일 품삯을 받으며 동생과 나의 교육비를 충당하셨다. 그래서인지 현재 엄마의 허리는 많이 굽어 있다. 그런 엄마를 볼때마다 분노의 화살은 아빠를 향했다. 나에게 끔찍한 가난의 기억만 남긴 아빠는 원망의 대상이면서 어두운 과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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