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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근요정 Feb 27. 2024

첫 캠핑 생존기

나는 캠핑을 반대한다.

캠핑을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

 마케터는 효율적인 것을 가장 좋아한다. 100만 원의 광고비를 썼으면 200만 원을 벌어야 하고,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100만 원으로 250만 원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매일 효율을 입에 달고 살다 보니 나도 원래는 "성격이 느긋하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지만, 마케팅을 하면서 점점 극한의 가성비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런데 캠핑은 효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비논리적인 행동이다! 돈을 내면 그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받는 게 당연한데, 돈은 돈대로 내고 고생은 다 해야 한다니! 거기다 텐트, 침낭 등 용품도 내가 구매해야 하고 21세기에 전기는 콘센트가 없으니까 릴선으로 끌어와서 사용한다고? 이거 딱 돈 내고 조난당하기 체험하는 꼴 아닌가. 차라리 그 돈으로 호캉스를 가거나 글램핑을 가는 게 훨씬 이득 아닐까? "굳이 내가 고생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게 캠핑에 대한 나의 견해다.


고작 하루인데, 뭐가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내 반려라면.

 아뿔싸. 얼마 전부터 아내가 캠핑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아내가 낚시에 재미를 붙일 때도 분명 이런 흐름이었는데. 아내는 영악하게도 내가 반대하는 일을 할 때, 하루종일 유튜브를 찾아보며 '내가 이렇게 관심이 많아'라는 모습을 나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아니나 다를까, "캠핑을 가야겠다"는 아내의 명령어와 함께 작은 소란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나의 반대 의견이 통과되는 경우는 없었기에. 작은 항변 후, 아내를 설득하겠다는 마음은 고이 접어둔 채 첫 캠핑을 준비했다.


 캠핑 처음 가보겠다고 텐트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기본적인 캠핑 용품은 친정에서 빌리기로 하고 꼭 필요한 짐만 챙겼는데도 양이 어마어마하다. 침낭도 당연히 없으니 집에 있던 겨울 이불을 부랴부랴 챙기고, 반년째 꺼내지도 않았던 휴대용 버너와 각종 집기까지. "호캉스는 그냥 몸만 가면 되는데"라고 끝까지 놓지 못한 미련을 품은 채, 구시렁거리며 챙긴 생존 용품은 흡사 피난길을 방불케 했다.


캠핑의 꽃은 역시 먹을 거! 평소에 먹고 싶었던 음식은 다 쓸어 담았다.


관리인 : "텐트 크기가 어떻게 되나요?"

나 : "글쎄요..?"

관리인 : "히터는 가져오셨나요?"

나 : "히터가 필요해요..?"


 인생 첫 캠핑을 앞두고 들뜬 마음으로 캠핑장에 도착. 체크인을 하기 위해 관리인 분과 얘기를 하는데 정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텐트는 빌려와서 꺼내 보지도 않았는데, 크기가 얼마나 큰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겨울 캠핑용 온풍기가 있다는 것도 "히터는 가져오셨어요?"라는 말을 듣고 처음 알았다. 우리는 전기장판을 챙기며 "따뜻하게 입고 전기장판까지 틀면, 밤에 더워서 깨는 거 아니냐"며 키득거렸는데.


 겨울 캠핑 용품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방문한 캠핑장은 새로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 캠핑장이었는데, 아직 유명하지 않아서 한적했고 관리인 내외도 매우 친절했다. 이번이 첫 캠핑이라고 이실직고하니,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시던 아내분과 우리를 딱하게 쳐다보는 남편분의 눈길이 어찌나 측은하던지.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캠핑은 고생이다"라는 가치관 아래 혹한기 병영캠프에 왔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방문했기에 부족한 것들에 대한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친절한 관리인 내외분께 큰 도움을 받았다.


"캠핑은 다음에, 날씨 풀리면 다시 하세요."

 생에 첫 캠핑을 앞두고 들뜬 마음도 잠시, 관리인 내외분께서 찾아와 "오늘 날씨가 너무 추우니, 캠핑은 다음에 날씨 풀리고 하세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설마 쫓겨나는 건가? 고작 캠핑을 한 번도 안 해봤다는 이유로? 오호통재라. 캠핑장의 텃세와 입문자 배척이 이렇게나 심할 줄이야'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오늘 빈자리가 많으니, 캠핑박스에서 주무시는 건 어때요? 너무 걱정돼서 그래요."라며 상품 변경 제안을 해주셨다. 이렇게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내외분을 감히 오해하다니! 우리를 측은하게 바라보시던 남편 분께서 첫 캠핑에 준비한 게 없어서 너무 고생할 거라며, 캠핑박스라는 시설에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 안 그래도 캠핑장에 너무 늦게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쌩쌩 부는 바람에 걱정을 키워가고 있을 때여서 세상에 아직 인의가 살아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우리의 대답은 물을 것도 없이 당연히 OK.


화톳불에 구워먹은 군고구마가 너무나 인상깊었다.


텐트 한 번 꺼내보지 않은 캠핑.

 관리인 내외분의 도움으로 비록 텐트 한 번 펴보지 않았지만, 왜 캠핑하는 사람들이 몇십만 원짜리 화톳불을 구매하는지 충분히 이해했다. 적막한 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 소리, 옷을 파고드는 한기에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요리, 운치가 있으니 평소 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도란도란 나누는 여유로움.


 아, 이런 게 바로 낭만이구나. 원래 산 정상에서 마시는 막걸리가 제일 맛있다는 것처럼, 더 큰 행복을 위해 약간의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거구나. 이런 운치는 돈으로 구매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작은 준비와 번거로움이 더해져 성취감으로 쌓아 올린 것이구나.


 이렇게 첫 캠핑은 나름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아직 귓가에 남겨둔 장작 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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