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은 최상의 교육장이다
요즘 글을 접하다 보면 퇴사에 관한 글이 넘쳐난다. 맘에 맞지 않는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것이 못난 사람들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 분방한 미래를 위해 퇴사가 정답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물론 퇴사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퇴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능열쇠일 수는 없다. 퇴사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 퇴사는 그야말로 최후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생활도 잘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인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섞인 걱정도 많다. 회사가 자기에게 맞지 않아 새로운 길을 선택하게 되면 퇴사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퇴사가 젊은이들의 멋진 일상으로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사관이 처음부터 원하던 직업은 아니었다. 전공과 관련이 있고 일단 직장을 잡아야 할 여건이어서 검찰 공무원을 선택하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꿈꾸었던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버릴 수 없어 직장인이면서 수험생의 이중적인 생활을 하였다. 퇴근을 하면 종로에 있는 학원으로 달려가기 바빴다. 자정이 되어 집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어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 마음을 붙이기가 어려웠고 업무 실적도 좋지 못했다. 한동안 퇴사를 고민하며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고민 끝에 직장을 선택했다. 마음을 정하고 직장 생활에 최선을 다하자 재미도 붙고 자존감도 생기고 업무에 대한 보람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도 3-40대를 돌아보면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억울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도록 하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말도 반납하며 업무에 임했다. 직장에 애정이 많다 보니 회사에서 주최하는 행사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후배들의 수사역량을 높이기 위한 내부강사로 선발되어 강의를 하였고, 직장 동호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많이 배우고 활동했다. 원하는 직업을 가지지 못하였다고 후회만 하고 회사 생활에 열심이지 않았다면 직장에서 주인이 아닌 불평만 하는 주변인으로 지냈을 것이다. 못 이룬 꿈을 접고 현재의 직장 생활에 최선을 다하였기에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배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취업 전에는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도 직장을 잡은 후에는 공부에서 손을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새로운 지식이 쏟아져 나오는 환경에서 배움을 게을리하면 뒤쳐지고 도태되는 건 시간문제이다. 나의 경우 법학을 전공하여 법을 적용하는 검찰직에 임용된 것이 어느 정도 잘한 선택이었지만 수사관의 업무는 조금 다른 분야이기도 하였다. 수사관은 법률가라고 하기보다는 사법경찰관의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이 많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도 있고 수사관으로의 이론적 지식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임용 10년이 지나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다. 박사과정은 아예 경찰행정학을 전공하여 사법경찰관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공부를 하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퇴근 후 매주 두 번씩 대학원 수업에 참여했다. 학부생들과 같이 공부를 한다는 것이 매우 힘들고 어려웠다. 그래도 현업과 직접 관련이 있는 학문이다 보니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고, 재교육을 통한 역량도 강화되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학원 과정을 다니면서 습득한 지식을 업무에 적용하여 성과를 내다보니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 특별 승진도 하였다. 대학원에서의 토론 문화에 익숙해져 역량 평가도 한 번에 통과할 수 있었다. 18학기라는 긴 여정을 통해 경찰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직장생활과 개인생활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직장에 입사하게 되면 직장에 적은 두면서도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곤 한다. 물론 원하지 않는 직장을 계속 다닐 수는 없다. 그렇다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른 직업을 준비하거나 다른 일을 한다면 둘 다 엉망이 될 확률이 높다. 사람은 한 가지를 잘하기도 쉽지 않다. 더군다나 직장이라는 곳이 대충 해서 성과를 내거나 인정을 받을 수도 없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른 것을 준비하면 직장에서도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다른 준비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직장을 포기하든지 다른 일을 포기해야 한다.
자신이 꿈꾸던 삶이 있다면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서 꿈을 키워가면 된다. 직장은 자신이 꿈꾸던 것과 다를 경우가 많아서 자신이 원하지 않던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꿈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 꿈을 이루는 과정은 무수히 많고 다양하다. 직장 내에서 동호회 활동도 하고 재교육도 받고 직업과 관련된 학습도 하면서 직장과 함께 성장하는 길을 택하면 좋겠다. 직장과 내가 서로 상생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관계이어야 한다.
통기타도 직장에서 배웠다. 직장 동호회에 가입하여 처음 통기타를 잡았다. 회원들이 대부문 나보다 나이도 적고 수준도 높았지만 직장 동료들이어서 편하게 잘 가르쳐 주었다. 직장 동호회가 아니었다면 시작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초반에 포기했을 것이다. 50이라는 늦은 나이에 시작하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이제 통기타는 나의 분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스키도 강릉에 근무하면서 처음 타기 시작했다. 직장에 스키 동호회가 있어서 강릉에서 근무하는 동안 배울 수 있었다. 낚시는 제주에 근무하면서 배웠다.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을 직장에서 생활하며 배웠다. 그동안 서울, 강릉, 인천, 청주, 전주, 군산, 남원, 제주에서 근무했다. 다른 지역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도 않았다.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걸 배웠다. 지금 내 모습 자체가 직장에서 모두 배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은 나의 교육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