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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Jun 01. 2019

다시 그 길 위에 서고 싶다(Ⅰ)


  비행기가 몽골 상공을 지나가고 있다. 일 년 전, 아내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리 저기 가볼까?”라고 무심히 던진 말이 우리를 여기에 있게 하였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만 하여도 그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했고, 왜 가보자고 하는지도 몰랐다. 그해는 아이들 수능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아내가 뜻밖의 장기 외출을 하면서 그곳에 대한 기억도 흐려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에게 무척 힘든 일이 일어났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도 심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아내로부터 ‘산티아고’에 대해 들었을 때만 하여도 스페인이 아닌 칠레의 수도로 알아들었으니 나의 무지함도 어지간하였다. 그 후 산티아고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고, 언젠가 산티아고의 순례길 위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왜 산티아고에 가고 싶은 건지도 모른 채 그저 막연하게 순례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처음 만난 어려움은 경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일단 지출하고 후에 변제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산티아고가 아니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생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순례길이라는 숭고한 단어 앞에 다른 모든 것은 한낱 세속적인 것 같고, 회피하기 위한 구차한 변명 같이 여겨졌다. 이번이 아니면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산티아고에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앞뒤 따지지 않고 떠나기로 마음먹고 덜컥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표를 예약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꼭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순례 기간을 정하는 데도 다소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무조건 800킬로를 모두 걷기로 마음먹었으나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여건상 40일의 일정은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고 순례 자체를 미루면 다시 실행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도 같고, 자칫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단 20일의 일정으로 가기로 하였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800킬로 전 구간을 걷는 것은 아니고 12일간 300킬로를 걷는 것이지만 평소 운동을 즐겨하지 않는 우리에게는 다소 버겁기도 하고 살짝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되는 도전이었다. 레옹부터 300킬로를 걷기 위한 체력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 저녁 아내와 같이 체련공원을 한두 시간씩 걷기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를 하며 서로에게 무심했던 부분을 알아가기도 하고, 가끔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걷기만 하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산티아고 길 위에 섰을 때의 모습들을 그리며 우리 둘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며 공유하였다.


  누가 그랬던가? 목표를 이룬 후보다 이루기 위한 과정이 더 행복하고, 여행도 가기 전 준비과정이 더 설레고 행복하다고.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순례길을 가고자 했던 이유들을 조금씩 찾아가며 채워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우리는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복병이 생겼다. 사고가 터진 것이다. 산티아고에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문제를 해결하여 가는 과정이 힘들고 어려웠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새벽을 열며 성전에 앉아 산티아고의 길 위에 세워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일이 조금씩 정리되어 갔다. 


  인터넷을 통해 배낭, 침낭, 스틱, 우의, 수저 등을 구입하고, 매장에서 등산화와 샌들도 구입했다. 아는 형제님이 구급약도 보내주었다. 회사에 연가 신청도 했다.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내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활기찼다. 항공도 예약해야 하고, 숙박도 예약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고 힘들고 짜증도 날 텐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이 마냥 어린아이처럼 싱글벙글한 모습이다. 저녁에 만나면 하루 종일 산티아고를 위해 준비한 내용도 알려주고, 여행에 대한 팁도 알려주며 종달새처럼 즐겁게 노래하는 듯했다. 이처럼 행복하고 밝은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준비 과정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배우고 주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떠나면서 가장 큰 걱정은 집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었다. 물론 잘하리라 믿으면서도 아직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컸던 것이다. 이제 아이들도 다 컸으니 잘하리라 믿고 맡겨야 하는데 아직도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아이들만 두고 가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리기도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시간이 되리라는 기대도 하였다. 그동안 말로만 아이들을 믿는다고 한 것에 대해 실제 아이들을 믿을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도 싶고, 우리가 없는 동안에 아이들이 어떻게 지낼지, 가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낼지도 기대되고 궁금했다. 우리가 없는 동안 아이들도 같이 성장하길 바랐다. 


구름 사이로 떠오른 무지개를 보며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아본다. 남은 우리의 인생도 산티아고 여행과 같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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